"작품 쓸때 밤새 고심하던 아버지 모습 지금도 생생해요"

박창영 입력 2018. 2. 20. 17:21 수정 2018. 2. 21. 11: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故이영훈 10주기 헌정공연 준비하는 아내 김은옥·아들 이정환씨
지난 14일 서울시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이영훈 작곡가의 아들인 이정환 영훈뮤직 본부장이 아버지 사진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영훈뮤직]
오늘날 10·20대는 K팝 위주의 음원 차트에 익숙하지만 한국 대중 음악계가 자국 가요 중심으로 꾸려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광복 이후 라디오 재생 횟수와 음반 판매에서 우리 노래는 항상 팝송의 그늘 아래 있었다. 판도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1980년대 중후반. '난 아직 모르잖아요' '광화문 연가' '소녀' '붉은 노을' 등 이영훈(1960~2008)이 쓴 노래가 이문세의 목소리를 타고 전국으로 전파되면서 젊은 세대의 귀를 사로잡았고, 급기야 이문세 4집이 285만장 팔려나가며 당시 국내 음반 판매량 역대 기록을 경신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영훈뮤직을 운영하며 이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보존하는 김은옥 대표(54)와 이정환 본부장(30)을 지난 14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그들의 자택에서 만났다. 마침 이날은 고인의 기일로 부인인 김 대표와 아들 이 본부장은 다양한 10주기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출발점은 오는 27일 세종문화회관에 올리는 헌정 공연 '작곡가 이영훈'. 가수 이문세, 한영애, 윤도현, 김범수와 현대무용가 김설진 등 이영훈과 음악 작업을 함께했던 예술가들과 손잡고 고인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다.

아들인 이 본부장이 아버지 관련 행사에서 전면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엔 아버지가 이 작곡가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번 공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 건 2007년 이 작곡가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 "리메이크 앨범 '옛사랑'을 만들던 당시 아버지는 작품에 참여할 가수를 고민하고 계셨죠. 그때 곡 배정이랑 가수 선정을 도와드렸는데 '내 30주년, 40주년 앨범 때 너도 함께 작업하자. 한 곡 불러'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공연 티켓은 고인을 추억하는 사람을 가능한 한 많이 초대하기 위해 전 석을 2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 본부장은 "작년 말쯤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받아온 사랑을 팬분들께 돌려주자며 헌정공연을 무료로 진행하자고 제안하셨어요. 이문세 아저씨랑 제작팀 멤버들이 선뜻 '제작비를 분담하겠다'고 나서주셔서 좌석당 2만원에 전 석을 공개하게 됐어요."

이 작곡가에 대한 추모 열기는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고인의 명곡으로만 구성한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4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대전, 대구, 부산 등 주요 도시로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영훈의 작품 세계를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김 대표는 털어놨다. "처음 상연한 뮤지컬에는 이런저런 탈이 있었고, 저희 음원에 대한 소유를 주장하는 사람도 계속 나와서 마음의 상처가 굉장히 컸어요. 이제 10년이 되면서 그런 어려움은 많이 해결됐어요. 음원도 찾아왔고, 새로 올린 뮤지컬도 많은 팬들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모든 건 아직도 영훈 씨를 기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팬들 덕분이에요."

이영훈 작곡가가 1986년 오선지 위에 펜글씨로 남긴 메모에서 예술 작품의 순수성에 대한 작곡가의 신념이 엿보인다.
이영훈은 사랑 많은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모자가 고인을 '영훈 씨' 또는 '아빠'라고 자주 언급하는 데서 화목하고 따뜻했던 가정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영훈 씨네 집안에서는 오직 그의 어머니만 음악을 지지해줬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좌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나봐요. 저를 만나면서 '이 여자라면 나에게 살아갈 힘을 줄 수 있겠구나. 놓치면 내가 죽겠다'고 생각했대요."

김 대표는 1년 중 300일을 자기 집 앞에서 기다리며 구애했던 이 작곡가를 받아들여 1988년 결혼했다.

따뜻한 아버지였지만 작품에 몰입할 때만큼은 함부로 다가서지 못할 오라를 풍겼다고 이 본부장은 회상했다. "새벽에 깨서 아버지 방 앞으로 가면 불빛이 새어 나왔어요. 찬 공기와 담배 냄새가 문 틈으로 풍기는데 어린 마음에도 분위기가 엄숙하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면 연기가 자욱하더라고요. 그리고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 꽁초, 주황색 연필 끝에서 나온 지우개 가루…. 그런 것에서 아버지가 작품을 쓸 때 고심한 흔적을 발견했죠." 그는 어렸을 적 아버지 방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만든 '작곡가의 방'을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상연되는 극장 한쪽에 전시하고 있다.

'모든 이의 가슴에 숨어 있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이날 이 본부장은 이 작곡가가 남긴 메모를 보여줬다. 펜글씨 교본에 담긴 듯한 정갈한 필체로 적어내린 노트에는 음악의 순수성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었다. "아버지가 지금의 가요를 들으시면 마냥 좋다고만 생각하진 않으실 것 같아요. 예술품이라면 모름지기 아름다워야하고 음악은 듣는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제게 항상 강조하셨거든요."

그래서 두 모자는 고인처럼 순수한 열망을 지닌 작곡가를 올해부터 지원할 예정이다. 곧 제정될 '이영훈 작곡가상'이 대표적 예다. 창작자가 온라인에 가사 또는 곡을 올리면 이영훈재단(가칭)이 수작을 선별해서 시상할 예정이다. 또 현대기독교음악(CCM)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도 시작한다. "이영훈 씨는 하나님에게 여러 가지 영감과 재능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CCM을 하지 않았지만 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꼭 지원하고 싶어했죠."

[박창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