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처벌보다 피해자 회복이 훨씬 중요"

2018. 2.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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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영 회복적생활교육센터장

[한겨레]

박숙영 회복적생활교육센터장이 지난 11일 ‘함께하는 교육’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12월부터 2월 말까지 일정이 꽉 차 있어요. 3월에 뵈면 안 될까요?”

“설 연휴 전에 시간 좀 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주일날 서울 서대문의 한 교회에서 예배 마치면 오후 1시쯤입니다. 그때쯤 오세요.”

사단법인 ‘좋은교사운동’ 산하 박숙영 회복적생활교육센터장을 어렵게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역 부근에서 만났다. 그의 일정이 이렇게 꽉 차 있는 것은 그만큼 교육현장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리라. 그는 지난해 9월 명예퇴직을 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교육현장에 알리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다.

학교폭력 발생 때 가해자 처벌 우선
피해자 회복에 관해선 관심 없어
처벌 위주 교육 방식으로는
폭력과 응보 악순환 끊지 못해
매로 처벌하는 옛날 훈육서 변화 필요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교육적 대응
‘회복적 생활교육’ 교육감들도 큰 관심

“1993년 안산 공단 지역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사 생활 하면서 갈수록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이전과 다르게 무조건 교사의 말을 따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그러다 2010년 ‘회복적 정의’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갈등 상황에서의 정의는 2가지로 나뉜다.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 앞은 분쟁이 생겼을 때 잘잘못을 가려 잘못한 자를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한다. 그러나 이렇게 응보를 가하면 잘못한 자가 진짜 반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처벌받은 학생들은 반성하기보다는 이른바 ‘꼰지른’ 아이를 원망하고 복수심을 품는다.

그러면 회복적 정의는?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박 소장을 인터뷰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의 경우 현재는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열어 가해자가 누구인지 결정하고 봉사 며칠 그리고 관련 기록 남기는 식입니다. 한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누가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가? 피해자는 어떻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더구나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서로 갈등 과정에서 수위가 높아져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기존 학교폭력 해결 방법과 절차가 다르다. 먼저 피해를 확인한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이 있었는지 충분히 이야기할 기회, 공감받을 기회를 준다. 가해자 그리고 공동체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확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걸 경험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가 볼 때 처벌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형제를 봅시다. 사형제 찬성자들의 논리대로라면 흉악범죄는 갈수록 줄어들어야 합니다. 한데 실제로는 안 그렇습니다.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범죄 순간 ‘내가 이러면 사형당할지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합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순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가해자는 없어요. 특히 청소년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본다. ‘저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처벌은 하나 마나다. 가해자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져 있다. 이런 가해자가 바뀌게 해야 하는데 이는 ‘내 행동으로 인해서 타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공감해야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피해자의 고통을 가해자가 듣게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직접 듣게 하는 겁니다. 사실 가해자는 이를 가장 두려워합니다. 내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걸 가해자가 느끼게 하는 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피해자는 자기 고통에 대해서 공감을 받아야 한다. 엄마나 선생님, 친구들한테 공감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한테 직접 공감받는 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계기다.

그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2012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에서 처음 시도했다. 여느 학교처럼 이곳도 학생들끼리 다투면 교사한테 불려가고 그러면 ‘혼나러 가는 것’이었다. 박 소장은 매주 목요일 ‘회복적 서클’ 활동을 진행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분쟁 상황을 함께 겪은 구성원들이 모여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불려온 가해자 아이들이 혼나지 않고, 분쟁 상황을 겪은 학생들 마음이 서로 후련해진다는 게 소문났고 2학기 때부터 박 소장을 많이 찾아왔다. 박 소장은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회복적 생활교육은 처음에는 ‘공감받기’가 쉽지 않았다. 박 소장이 일선 교사를 상대로 초기 강의를 할 때 ‘이론은 그럴듯해도 학교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반론이 나왔다. 특히 나이 지긋한 남자 교사들 가운데는 “그럼 제가 잘못했다는 겁니까? 때려서 가르쳐줬다고 고맙다고 인사 오는 제자들이 있습니다”라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기존의 훈육 방식에 대한 지적을 못 견뎌 하는 거다.

박 소장은 “제가 교사였고, 역시 매를 든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의 반박을 이해한다”며 “그러나 제 주장은 그런 훈육 방식을 비난하기 위한 게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교사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이 회복적 생활교육을 시작한 지 7년째인 지금 분위기는 상당히 바뀌었다. 지금 전국의 모든 교육감이 회복적 생활교육을 말한다. 교육청 문건에서도 회복적 생활교육이 언급되고 있다.

박 소장이 속한 좋은교사운동 등을 비롯해 일부 엔지오들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존의 법은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만 집중하고 피해자 회복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는 학교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는 게 박 소장의 생각이다.

“상과 벌의 한계는 단기적 효과에 그칩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외적 평가와 힘에 순응할 뿐 자발적인 책임감을 배우지 못하고 되레 힘의 지배 논리를 익히게 됩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입니다. 평화는 평화로써 가르치고, 존엄은 존엄으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따라서 피해자 중심주의입니다.”

글·사진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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