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그랬지]③"너나 가져라"했다는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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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도는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가 "1층 여성 휴게실 파우더룸 쪽 자리에서 잠을 자면 가위에 눌린다"는 것이었다.
여의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회의사당과 증권가지만 사실 여의도 발전을 가장 먼저 이끈 선두주자는 아파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여의도는 동쪽은 증권가, 서쪽은 국회의사당이 있는 돈과 권력의 상징적인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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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국회에 도는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가 “1층 여성 휴게실 파우더룸 쪽 자리에서 잠을 자면 가위에 눌린다”는 것이었다. 이 괴담은 실제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더해지며 해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 이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국회의사당 터가 본래 조선시대 궁녀들의 화장터라 풍수지리적으로 안 좋다”며 “그 귀신은 조선시대 궁녀의 넋”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 여의도가 궁녀들의 화장터였는지는 공식적인 문헌은 없다. 다만 여의도(汝矣島)의 원래 이름이 ‘너(汝)나 가져라’라는 뜻의 너섬이었다는 사실은 이곳이 모래와 바람만이 가득해 아무도 살고 싶지 않았다는 척박한 땅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혹자는 ‘너도 섬이다’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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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증권·금융가로서의 여의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가장 큰 계기는 1979년 명동에 있던 증권거래소를 여의도로 옮긴 것이다. 이후 1982년 대우증권, 1985년 대신증권 등 주요 증권사와 투신·운용사들의 본사가 속속 여의도로 모여들었다. 물론 이 증권사들이 잇달아 본사를 옮기며 증권가로서 여의도의 위상은 많이 약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여의도는 동쪽은 증권가, 서쪽은 국회의사당이 있는 돈과 권력의 상징적인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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