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몰라의 IT이야기]'팔방미인형' PC에 주목한 AMD

이재운 입력 2018. 2. 1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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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벤치마크팀 닥터몰라] AMD는 한국시각 기준 지난 월요일 오후 11시, 2종의 새로운 데스크탑 CPU 라이젠 5 2400G와 3 2200G를 일제히 출시했습니다. 작년 한 해 재기의 원동력이 된 Zen 아키텍처를 사용한 첫 번째 APU, ‘레이븐 릿지’를 공개한 것입니다. 이들은 기존의 라이젠 5와 마찬가지로 4코어를 탑재하고 있으며, 상위 모델인 라이젠 5 2400G의 경우 코어당 2개씩의 스레드를 동시에 다중처리할 수 있는 기술인 ‘SMT’를 지원하여 총 8개의 스레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APU답게 이들은 최신 베가(Vega) 아키텍처 기반의 GPU를 탑재해 별도의 그래픽카드 구입 없이 멀티미디어 환경은 물론, 가벼운 3D 게임까지 구동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한 가정용 HTPC 시장, 별도의 그래픽카드를 잘 구매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사무용 PC 시장 등을 겨냥해 출시한 AMD의 야심작입니다. 라이젠 5 2400G의 내장 GPU 성능은 10만원 초반대에 구입할 수 있는 지포스 GT 1030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2011년, GPU 통합 추세의 시작

2011년 이후로 인텔과 AMD 양 사의 주류 CPU는 너나할 것 없이 GPU를 통합하는 추세였습니다. 인텔의 2세대 코어 CPU인 샌디브릿지는 CPU와 GPU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한 패키지에 놓인 것을 넘어 진정한 ‘원 칩’으로 구현된 역사상 첫 번째 사례입니다. 다만 내장 GPU의 성능 면에서는 뒤이어 등장할 AMD의 라노보다 크게 떨어졌습니다. 같은 해 출시된 AMD의 라노 APU는 당시 주력 GPU 아키텍처보다 한 세대 뒤처진 VLIW-5 기반의 GPU를 탑재하고 있었으나, 그렇더라도 당대의 그래픽 통합 솔루션 가운데 독보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보인 바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인텔과 AMD 양 사의 APU (그래픽 통합 CPU) 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고성능 CPU 설계에 자신감을 가진 인텔은 ‘그래픽 통합’을 통해 단지 그래픽카드를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낼 (그리하여 저가형 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목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요.

그러나 AMD는 CPU보다 이미 일부 연산을 더욱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GPU가 궁극적으로는 CPU의 기능을 분점하게 될 것으로 보았고, 이를 APU라는 형태로 구현함으로써 CPU 자체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기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샌디브릿지의 칩 전체 대비 내장 GPU의 면적 비율은 단 16%에 불과했던 반면 라노는 37%에 달했습니다.

인텔 제품 변화. 닥터몰라 제공
이후 인텔 역시 과거처럼 급속한 CPU 성능 개선이 한계에 부딪히며 내장 GPU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전환하게 됩니다. 이들이 샌디브릿지 이후 아이비브릿지, 하스웰, 스카이레이크/카비레이크 등의 세대교체를 거치는 동안, 칩 전체 대비 내장 GPU의 면적은 16%, 25%, 30%, 35%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으며 내장 GPU 자체의 연산성능도 250 기가플롭스에서 450 기가플롭스로 1.8배 가량 성장한 것이 그 예입니다. 같은 기간 동안 데스크탑 CPU의 코어 수는 변함없이 4개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입니다.

AMD 역시 내장 GPU를 개선하는 흐름은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APU에 당대의 주류 GPU보다 한 세대 뒤떨어진 아키텍처를 탑재한 것과 달리, 레이븐 릿지는 오늘날 최신 아키텍처인 Vega를 그대로 탑재한 것이 좋은 예시입니다. 같은 기간 동안 AMD 내장 GPU의 연산 성능은 480 기가플롭스에서 1.76 테라플롭스로 무려 3.7배 성장하여 인텔보다도 그 폭이 큽니다. 데스크탑 CPU 중에서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이밍 콘솔 XBOX ONE이 그나마 비슷한 연산성능을 갖습니다.

◇답은 저가형 PC 시장에

왜 양대 제조사는 모두 내장 GPU의 성능 개선에 사활을 거는 것일까요? 일견 ‘잘 하는 것을 더욱 잘 하게’라는 컴퓨터과학의 공리, 선택과 집중 논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데 말이죠. 이미 고성능의 GPU가 별도로 구매 가능한 상황에 CPU 제조사들은 CPU 자체에만 관심을 두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요?

특정 자극에 대한 인간의 인지는 로그함수를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비유하자면, 성능이 일관적으로 증가하더라도 인간이 이를 체감할 때에는 점차 성능향상폭이 둔화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즉 일정 수준 이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성능 차이를 우리가 구분하기란 쉽지 않지만, 반대로 일정 수준 이하의 영역에서는 그보다 훨씬 작은 성능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우리는 훨씬 선명하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그래픽카드를 구입하지 않는 저가형 PC 시장에서, CPU의 연산 성능은 사용되는 어플리케이션의 요구량에 비춰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반면 내장 GPU의 성능은 단 한번도 예의 포화상태에 도달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 3D 게임 분야가 PC 업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발전속도가 빠른 분야라는 점도 이에 한몫합니다. 따라서 CPU 성능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것보다, 같은 노력을 내장 GPU의 개선에 쏟을 때 사용자들이 체감하는 PC의 성능향상폭이 훨씬 커지게 됩니다.

닥터몰라 제공
최고의 게이밍 PC에 APU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워크스테이션에도 아마 APU가 정답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최고의 가격 대 성능비, 최고의 ‘팔방미인형’ 가정용 PC, 최소 비용으로 구축할 수 있는 사무용 PC를 구상하는 이들에게 APU는 대단히 매력적인 옵션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PC를 통틀어, 별도의 그래픽카드가 탑재된 비중이 30% 선에 머무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여전히 시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격 대 성능비’ 시장에서의 승부가 결국 CPU 시장의 패권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AMD는 Zen 아키텍처가 공개된 지 꼭 1년 만에, 이를 사용한 첫 APU를 선보이며 드디어 저가 시장까지의 모든 라인업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최상위 라인업을 선 공개하며 사용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데 톡톡히 성공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 의미 있는 실적을 기록하려면 저가 시장에서의 승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쩌면 진검승부는 이제부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재운 (jw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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