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보금 빨아들이는' 트럼프의 세금전쟁..韓 '정치권 눈치만'

세종=전슬기 기자 2018. 2. 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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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감세안, 애플 등 美기업 2.6조달러 해외 유보금 유입 목적한국 정부, 정치권 증세 분위기에 제도 개선 언급도 어려워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이익을 위해 세계를 겨냥해 세금 전쟁을 선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치권 눈치만 보느라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자는 말을 하기가 솔직히 쉽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금 전쟁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하는 동시에 미국 기업들의 해외 자회사가 본국 모회사에 배당금을 지급할 때 내던 법인세를 100% 공제해주는 파격적인 감세안을 시행했다. 최근에는 미국에 들어오는 수입 제품 관세에 대해 다른 국가들이 미국산 제품에 매기는 관세와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호혜세’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도 밝힌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 없는 행보를 보는 정부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말 미국의 움직임과 반대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고, 해외 자회사의 본국 배당금 과세 제도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호혜세에 대해서도 대응 방안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난감한 상태다. 그러나 정부는 정치권에 기업들에 대한 세금 부담을 줄여주자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은 처지다.

미국 세제개편안의 핵심 중 하나는 본국 기업들의 해외 유보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미국 기업은 해외 자회사의 이익을 본국 모회사에 배당하면 해외에서 낸 법인세를 공제받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법인세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라 해외 자회사가 미국 본사로 배당하는 것을 꺼려왔다.

예를 들어 미국(최고세율 35%)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12.5%)에 있는 해외 자회사가 미국 본사로 배당금을 보내면 해당 기업의 세금은 배당금과 본국 이익을 합산해 35%의 세율을 적용한 금액에서 아일랜드에서 낸 세금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계산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기업들은 그동안 법인세 세율이 낮은 나라에 자회사를 세운 후 미국 모회사에 배당하지 않고 유보금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자회사가 있는 나라에서 낮은 세율로 법인세를 내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해외유보금이 2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미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본국으로 배당할 때 법인세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또 해외에 쌓아둔 해외 유보금을 미국 내 본사 등으로 이동하면 특별 할인 세율(8~15.5%)로 1회만 세금을 내는 ‘송환세’도 시행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은 즉각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미국 주요 기업 중 해외 유보금이 가장 많은 것으로 유명했던 애플은 지난 1월 2523억 달러(약 270조872억)에 달하는 해외 유보금을 미국으로 이동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는 "마이크로소프트·구글·시스코 등도 해외 조세회피처에 세금 회피를 목적으로 보관했던 현금을 몇 달 내에 미국으로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나라도 기존 미국 제도와 같은 해외 자회사의 본사 배당금 과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법인세 최고세율(22%)이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 아니고, 미국 처럼 해외 자회사를 거느리는 다국적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해외 자회사의 본사 배당금 과세 제도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조선일보DB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법인세 인하 행렬에 나서면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법인세 최고세율(25%)이 높은 나라가 된 상황이다. 한국 기업이 과거 미국 기업 처럼 법인세 세율이 낮은 나라에 해외 자회사를 두고 유보금을 쌓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법인세는 시행 후 1년이 지나야 제대로 된 세수 효과가 나타난다. 내년 이후 법인세 인상에 대한 기업들의 변화된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낸 '해외유보소득 국내환류를 위한 과세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의 순이익은 지난 2010년 크게 증가한 후 100억 달러를 꾸준히 웃돌았지만, 이에 반해 해외 현지 진출기업의 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율은 최근 5년간 평균 30% 수준으로 나타났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인투자기업의 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율이 60%를 넘어서는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우리나라의 해외진출기업은 소득이 증가해도 배당을 늘리기보다 현지에 유보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과세 방법을 바꾼 것은 자국내로 미국 기업의 해외 유보금을 송금하게 하는 동시에 미국 내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 해외 유보 소득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며 “우리나라도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려면 관련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해외 유보금이 쌓일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출범 후 초대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 강화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내 초대기업들이 법인세 세율 인상으로 해외에 돈을 묶어 놓을 수는 있지만, 규모가 미국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다”며 “정치권이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계속 이야기하는 상황이라 아직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이전 정권에서는 해외 자회사의 본국 배당금 과세 제도에 대해 개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연구 문의가 오기도 했는데, 이번 정권 들어서는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다”고 전했다.

정부는 호혜세에 대해서도 아직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호혜세 같은 관세 제도가 운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일단 미국의 움직임을 더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호혜세가 정확이 어떤 제도인지 미국 내에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며 “세계적으로 그러한 관세 제도가 운영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일단 미국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대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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