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명절우울증? 내 아내는 그런 거 없대요

이정혁 입력 2018.02.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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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명절②] 모두가 즐거운 우리 집 설 풍경.. 남자들이여, 전 앞으로 전진하라

[오마이뉴스 글:이정혁, 편집: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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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명절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여자의 명절’과 ‘남자의 명절’, ‘부부의 명절’ 기획을 통해 어떻게 하면 보다 성평등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지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설을 앞둔 13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예절교육관에서 누리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세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명절 중에서 설이 제일 좋다. 가을 타는 성격이라 추석은 좀 외롭고, 이가 약한 편이어서 부럼 깨무는 대보름도 별로다. 가장 큰 명절이라는 단오는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기에 십상이고, 팥죽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동짓날도 통과다. 무엇보다 설이 좋은 이유는 바로, 세뱃돈을 받기 때문이다. 참고로 올해 내 나이, 마흔셋이다.

부모님 용돈이며 아이들과 조카들 세뱃돈은 어쩔 테냐?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 계실 것이다. 그건 내 주머니에서 나가지 않는다.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경제구조가 정착된 이후로 그러한 공적자금에는 아내의 생활비가 투입된다. 고로, 설날의 세뱃돈은 10원의 세금도 떼지 않고 온전한 나의 수입이 된다.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명절인가!

어디선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주는 음식 받아먹고 편하게 쉬다 오면 그게 다인 줄 아는 남자들은 제발 입 닫고 있으라고?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줄 아느냐고?

흥분마시라. 명절 증후군, 나도 충분히 들어봤다. 명절 직후에 이혼률이 높아진다는 기사도 본적 있다. 그래서 결혼 10년 차 아내에게 물어본다. 당신 명절 때 일하느라 스트레스받은 적 있어? 대답은 '아니'다.

"당신이 장손이라고 해서 사실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제사도 한 번이고, 첫 추석 이후로는 어머님이 손도 못 대게 하시잖아."

그렇다. 아내는 첫 명절 이후로 임신을 했고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다 보니 2년 내내 배가 불러 있어서 사실 일을 시킬 수도 없었다. 출산 후에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마찬가지였다.

나도 한때는 명절이 싫었다. 차례상을 엎어버리는 술 취한 아버지 때문에 되도록 명절을 피하고 싶어 했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버지 또한 늙어가면서 조금씩 집안의 평화가 찾아왔다. 명절을 며칠 앞두고는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 언제 오냐고 전화가 빗발친다.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명절을 기다린다.

스트레스나 증후군과는 거리가 먼 우리 집의 설 풍경을 공개한다. 뭐, 특별할 것도 없다. 남자들이 움직이면 된다. 식당일을 하시느라 시간이 없던 어머니를 위해, 어릴 적부터 명절이 오면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음식 준비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남동생과 함께 도왔다. 그게 습관적으로 이어져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전을 처음 구웠던 게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식당에 붙어 있는 단칸방에서 생활할 때였다. 명절 전날에도 드문드문 손님이 왔고, 그러면 어머니는 전을 부치다 말고 장사를 하러 나가셨다. 프라이팬 위에서 전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장남이었다. 집안을 일으키기 전에 전을 뒤집어야 했다. 숙명처럼 뒤집개를 잡았다. 전쟁고아였던 아버지에게 친척이란 없는 존재였고, 외가와는 사이가 안 좋아 왕래가 없었다. '비빌 언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숙명처럼 집은 뒤집개가 불러온 행복

 2015년 추석때 찍은 사진
ⓒ 이정혁

요즘도 제수 준비를 위해 어머니 따라 시장에 가면 설탕 묻은 '도나쓰'나 떡볶이 등을 사달라고 조른다. 참고삼아 내 나이, 마흔셋이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서 필요한 재료를 사서 오면 손질부터 집안의 남자들이 총동원된다.

골파 까기부터 동그랑땡 반죽하기, 꼬치전을 만들기 위한 재료 썰기 등등 어지간한 건 남자들의 몫이다. 아내는 아이들 담당이다. 갓난아기 때부터 그렇게 역할이 나뉘었다.

설 전날이면 오전부터 분주하다. 총지휘관인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각자 뒤집개를 하나씩 들고 전투자세에 임한다. 아버지는 부족한 달걀을 까주는 등의 측면 지원을 맡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불이 위험해서 근처에 못 오게 했지만, 이제는 옆에 앉혀 두고 하나씩 가르친다. 녀석들이 컸을 때 제사는 행여 없어지더라도 차례라는 문화는 남아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여기서 잠깐, 이 글을 읽고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 소매를 걷어붙일 남성분들을 위해 몇 가지 노하우를 전수한다. 먼저 두부 부침은 딱 한 번만 뒤집는다. 약한 불로 서서히 익히다가 절반쯤 익었다 싶으면 한번 뒤집는다. 자꾸 뒤집으면 두부가 으스러지기 쉽다. 그리고 기름을 아끼지 말고 둘러라. 기름이 부족하면 타기에 십상이다.

꼬치전을 부칠 때는 양념된 고기가 타지 않게 주의하고, 각각의 재료가 잘 붙어 있도록 달걀옷을 한두 번 다시 입혀준다. 동태전은 달걀옷이 잘 달라붙도록 밀가루를 살짝 묻힌다. 동그랑땡은 너무 두꺼우면 속까지 잘 안 익는 경우가 있으니 가급적 얇게 눌러주는 게 좋다. 버섯전은 느타리버섯을 최대한 잘게 찢어야 먹을 때 식감이 좋다.

음식 준비를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내용으로 너무 아는 체를 했다. 남자들은 오랜만에 모여 회포를 푼답시고 대낮부터 술자리나 화투판을 벌이고, 여자들은 부엌에 모여 벌이라도 서듯 음식을 준비하는 풍경은 이제 옛날 얘기다. 핵가족 시대, 가족이라고 다 모여야 열 명이 채 안 되는 그런 세상에서 차례 준비는 이제 모두의 몫이다. 역할을 분담하면 특별히 스트레스 받을 사람도 없다.

오전에 음식 준비가 다 끝나면 남자들은 음식을 챙겨 성묘를 간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순서지만, 현실적으로 설날 아침에는 차례상 정리하고 처가 가기 바쁘다. 그래서 전날 오후에 여유 있게 다녀온다.

여러분의 설은 과연 안녕들하신지? 물론, 남자들에게도 명절 증후군이 나타난다. 장기간의 운전이나 친지들과의 어쩔 수 없는 술자리 등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온종일 부엌에서 음식 만들고, 설거지하고, '시월드' 식구들 눈치 보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여자들을 생각해보자. 미룰 것도 없이 당장 이번 설부터 실천해보자. 복 많이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