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떡살 대충 찍는 게 아닙니다, 무늬 마다 숨은 의미

이돈삼 입력 2018.02.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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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양에 현대 염원 담아 재창작하는 목공예명장 담양 김규석씨

[오마이뉴스 글:이돈삼, 편집:최은경]

 김규석 명인이 깎은 떡살.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기구다.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찍어주는 역할을 한다.
ⓒ 이돈삼
"문양만 예쁘게 새긴다고, 좋은 떡살이 아니에요. 문양 안쪽의 각도가 45도 정도로 비스듬하게 깎여야죠. 그래야 떡살을 떼어낼 때 떡이 잘 빠지고 문양도 깔끔하게 나와요. 긴 장방형의 떡살을 만들 때 바닥을 약간 휘어지게 만드는 것도 그런 연유죠. 떡살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힘을 골고루 줘야 무늬가 선명하게 찍힐 것 아닙니까."

목공예 명장 김규석(59·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씨의 말이다. 그는 조각인생 40년 가운데 30년 동안 떡살을 깎아 온 떡살 제작 기능전승자다.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을 가리킨다. 무심한 흰떡에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는데 쓰인다. 떡살의 재료는 감나무를 비롯 대추나무, 박달나무 등 재질이 강한 것을 주로 쓴다.
 김규석 명인이 전통 떡살 하나를 들고 떡살 문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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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석 명장이 만든 떡살.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지만, 문양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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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석 명장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문양의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옛 문양의 역사는 물론 풍수, 음양오행, 사주까지 두루 익힌 이유다.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떡 중의 떡은 절편이라고 하잖아요. 절편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하는 얘기에요.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고요. 우리 조상들은 그만큼 떡에 정성을 들였어요.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비는 뜻도 문양에 새겼고요."
 김규석 명장이 만든 떡살. 문양마다 음양의 이치가 모두 담겨 있다는 게 김 명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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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석 명장이 만든 떡살. 문양에는 만물의 근원인 음양의 이치까지 들어있다는 게 김 명장의 말이다. 하여, 떡살 문양도 용도에 맞게 찍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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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다 같은 문양 같지만, 그 안에는 천태만상이 담겨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떡살 무늬는 크게 수(壽), 복(福), 다남(多男)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화무늬는 장수를, 포도무늬는 자손의 번영과 부귀를, 석류무늬는 다산을 의미한다. 문양에 만물의 근원인 음양의 이치가 들어있고, 문양도 용도에 맞게 찍었다고.

"대충 찍은 게 아니에요. 문양마다 의미가 있죠. 떡에 어떤 무늬를 찍느냐에 따라 제사용이 되기도 하고, 이바지용이 되기도 해요. 지금은 그게 완전히 무너졌어요. 국적 불명의 외국산이 점령한 탓이죠. 우리 고유의 무늬도 아니고, 어떤 뜻도 염원도 없는."

그가 들려주는 떡살 문양에 얽힌 사연이 흥미진진하다.
 김규석 명장이 떡살 문양을 깎고 있다. 조각칼을 잡은 그의 손끝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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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석 명장이 깎은 전통 떡살. 김 명장은 목공예와 떡살, 다식판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은 지 40년 됐지만, 전통 떡살에 대해 익히고, 깎을수록 그 세계가 넓고 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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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주철 선생한테 목공예를 배우고, 남도음식 연구가 이연채 선생한테서 떡살 문양 기법을 전수받았다. 당시엔 떡살이 전통공예라기 보다 여자들의 살림도구 쯤으로 취급받던 때였다. 이연채 선생으로부터 떡살 전승자가 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내가 겨우 떡살이나 만들자고 조각을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도전 정신이 발동했다. 스승의 권유가 강력한 데다 떡살을 연구하는 사람이 드문, 미개척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공예와 떡살, 다식판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은 게 벌써 40년 됐다. 전통 떡살에 대해 익히고, 깎을수록 그 세계가 넓고 깊었다.

김씨는 단순히 전통 떡살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옛 문헌을 뒤적이며 거기에 얽힌 의미까지도 꿰뚫었다. 옛 문양을 토대로 현대의 염원을 담아 재창작해낸 것이다. 전통의 볼륨감 있는 떡살에다 세련된 문양이 더해졌다.
 전통의 볼륨감에다 현대의 세련미까지 더한 떡살. 김규석 명장이 옛 문양을 토대로 현대의 염원을 담아 재창작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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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살을 깎는 김규석 명장의 손끝. 김 명장은 전통의 문양을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날마다 문양에 대해 연구하고 떡살을 깎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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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 하나를 깎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잊힌 전통 문양도 찾아내고 있다. 떡살 문양을 큼지막한 나무판에 옮기는 작업도 하고 있다.

"우리 전통의 문양을 대중화시켜야죠. 전통 문양을 토대로 현대감각을 더한 응용 문양도 계속 계발하고요. 떡살이나 다식판은 사라지더라도, 거기에 담긴 문양과 의미는 후대에까지 전해줘야죠. 그게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김씨가 몇 해 전 <소중한 우리떡살> <아름다운 떡살무늬>를 펴낸 데 이어 최근 목조각의 여러 기법과 전통무늬를 풀어놓은 548쪽 분량의 <김규석 목공예>와 전통무늬를 재해석해 만든 무늬와 떡살문양 등을 담은 376쪽 분량의 <마음으로 새긴 우리무늬>를 펴낸 연유다. 음양오행과 자연의 이치에 맞게 수작업으로 완성한 작품에다 무늬의 의미까지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김규석 명인이 펴낸 〈마음으로 새긴 우리무늬〉의 표지. 전통무늬를 재해석해 만든 무늬와 떡살문양의 의미까지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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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