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을 내든 남이 간 길을 가든, 인생도 그런 것

야마가타 | 유희곤 기자 2018. 2. 1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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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일본 야마가타현의 갓산 ‘스노슈 트레킹’

한국에서 보면 동해안, 일본에서 보면 서해안과 맞닿은 혼슈의 야마가타현은 대설지역이다. 겨울이면 태평양에서 부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높은 산에 부딪혀 많은 눈을 뿌리곤 한다. 이 지역은 예전부터 신발에 덧붙여 신는 스노슈(설피) 문화가 내려온다. 일본 야마가타현 갓산에서 관광객들이 스노슈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브라이트스푼 제공

일본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해외 출장과 여행이 적지 않았다. 미국, 프랑스, 독일, 중국은 2회씩, 호주는 3번 갔다. 이탈리아·스페인에 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도 짧게나마 한번씩 둘러봤다. 반면 남들은 우동 먹으러 일본 무박 여행도 갔다 오는 시대에 이상하게도 일본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야마가타였다. 지인 중에는 일본을 제주도보다 더 많이 갔다 온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일본의 47개 도·도·부·현(행정구역) 중 하나인 야마가타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안 그래도 경험 없는 ‘일본 무식자’가 국내에서도 비교적 생소한 야마가타를 3박4일 일정으로 갔다 왔다. 지난달 31일 새벽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전날 내린 눈으로 질퍽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프로야구팀 KIA 타이거즈 선수단이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을 떠나는 날이었다. 야구 선수들이 따뜻한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날 우리 일행은 국내보다 따뜻하면서도 끝도 없이 펼쳐진 설원을 볼 수 있었다.

■ 갓산 스노슈 “가지 않은 길도, 남들이 갔던 길도 ‘매력 만점’”

인천공항에서 이륙 후 2시간10분 후 일본 센다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11시55분쯤 차를 타고 1시간30분 동안 서쪽으로 이동했다. 미야기현 센다이와 야마가타현 현경을 잇는 사사야터널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설국이 펼쳐졌다. 차의 창문이 도화지라면 공항에서 출발할 때 듬성듬성하던 눈 채색은 야마가타와 가까워질수록 시야를 가득 메웠다. 차도 옆에는 제설 작업으로 미니버스 높이만큼 쌓인 눈이 가드레일을 만들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나뭇잎 대신 쌓인 눈이 달려 있었다. 그렇다고 매섭거나 차갑지는 않았다. 끝도 모를 눈 풍경이 다소 지루하기도 했지만 칼바람이 절정이었던 서울 날씨를 생각하면 생크림 같은 눈무더기가 되레 따뜻해 보였다.

등산객이 스노슈(설피)를 착용한 모습.

야마가타의 ‘포근한 겨울’은 일본 갓산(1984m)에서 1시간30분 동안 스노슈(설피) 트레킹을 체험한 후 더욱 실감났다. 스노슈 트레킹은 등산화에 스노슈를 묶고 등산용 폴대와 함께 허리까지 눈이 쌓인 나무숲을 걷는 활동이다.

갓산은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로서 적설량이 많고 설질이 부드러워서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스노슈 트레킹을 하기 좋다고 한다. 국내 스키 시즌이 끝나는 4월부터 초여름까지는 여름 스키도 즐길 수 있다. 한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스키를 탈 수 없다.

일행은 시즈온천 마을에서 차로 5분쯤 떨어져 있는 갓산 산기슭에서 초급코스를 탔다. 숙련도와 취향에 따라 5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고급코스도 즐길 수 있다. 안내와 안전을 위한 전문 가이드가 함께했고, 장비도 쉽게 렌털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일행 중 중간에 서서 앞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한발자국씩 움직였다. 중반부터는 일행 앞에서 직접 길을 만들기도 했다.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다. 내가 만든 길을 따라 뒷사람이 따라오는 모습에 묘한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꼭 직접 새로운 길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남이 간 길을 따라 발걸음을 떼도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충분히 힘들고 재미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든, 경쟁자가 차고 넘치는 분야에서 일하든 인생이 고단한 건 똑같듯이.

스노슈 트레킹을 위한 장비는 현장에서 빌릴 수 있지만 등산화와 등산복, 겨울 등산용 스패치와 장갑은 각자 준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스패치와 장갑이 없었고 바지도 청바지를 입었지만 그리 춥지 않았고, 옷이 많이 젖지도 않아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신발은 방수가 잘 되어야 다음 일정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넘어지면 ‘푹신한’ 눈 때문에 다칠 일은 별로 없지만 쌓인 눈이 워낙 깊어 물건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일행 중 한 명은 넘어지면서 손에 쥐고 있던 스틱을 놓치는 바람에 10분간 ‘수색’ 끝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날씨에 따라 눈밭에 햇빛이 많이 반사될 수 있으므로 선글라스도 꼭 필요하다.

스노슈 트레킹을 체험한 후 시즈온천의 ‘마이즈루야’ 료칸호텔에서 고단한 몸을 녹였다. 시즈온천은 산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천연온천이라고 한다. 온천욕 후 가이세키로 먹은 야마가타 요네자와규(소고기) 샤브샤브, 이모니나베(토란탕), 은어 소금구이 등은 깔끔하면서도 정갈했다.

■ ‘삼나무 숲 2446개 계단길’ 하구로산

등산객들이 일본 야마가타현 하구로산의 삼나무 숲길을 오르고 있다. 유희곤 기자

다음날인 2월1일 찾은 곳은 하구로산(414m)이다. 하구로산에는 인근 갓산과 유도노산까지 세 산의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삼신합제전이 있다. 갓산과 유도노산보다 그나마 눈이 적게 오는 하구로산에 신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사가 있는 정상 부근까지 2시간 동안 2㎞에 이르는 등산로를 올랐다. 초반 20분 정도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다소 미끄러웠다. 가는 길 중간중간 작은 신사가 눈에 띄었다.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 진행됐다. 경사가 급해졌다가 완만해졌다를 반복했다. 개인적으로 등산은 1년에 한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경험이 없긴 하지만 국내에서 최소 무릎, 최대 허리까지 쌓인 눈 등산로를 오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등산로 주위로 촘촘히 뻗어 있는 수십m 높이의 삼나무는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평일 오전임을 고려해도 우리 일행 외에는 하산하는 한 그룹만 봤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는 매력도 있다.

다만 초급용 스노슈 체험보다는 철저히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등산용 스틱 1개 외에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 오른 탓에 미끄러운 길에 고생했다. 아주 험한 길은 아니지만 아이젠을 착용하면 좀 더 편안한 등산을 할 수 있다. 또한 등산로는 물론 주변이 모두 눈으로 덮여 있어서 중간에 쉴 데가 없다는 고충(?)도 있다.

■ 매년 2월 눈축제·라멘 ‘맛 기행’

올해는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야마가타에서는 매년 2월 첫째주 금·토·일 사흘에 걸쳐 눈 축제가 열린다. 국내에는 삿포로 등 일본 대도시의 눈 축제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소도시 행사다.

지난 2일 찾은 모가미가와 후루사토 종합공원에서는 제3회 눈 축제 개회식이 열리고 있었다. 설국 문화체험, 미니 눈 조각상, 이글루 만들기 체험, 스노 튜브, 야간 불꽃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행사장에서는 야마가타 지역 내 서로 다른 8가지 맛의 라멘을 맛볼 수 있다.

제3회 야마가타현 눈축제 기념 조형물. 유희곤 기자

야마가타는 일본에서 면 소비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라멘 소비량과 점포 수는 전국 1위, 소바 소비량은 3위라고 한다. 여름에도 라멘을 즐겨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냉라멘’ 발생지이기도 하다.

여행 첫날 찾은 니시카와마치의 ‘미도리테이’는 1930년 개업한 후 3대째 운영되고 있다. 된장라멘인 ‘가라미소라멘’은 일반적인 된장 라멘에 매운맛이 더해져 한국인 입맛에도 좋다. 한국인 손님이 오면 평소보다 더 매콤한 맛으로 내준다.

셋째 날 텐도시의 ‘주와리소바 모리큐’에서는 야마가타현과 홋카이도산의 메밀을 껍질째 맷돌로 바로 갈아 만든 소바를 맛봤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에 생오징어 튀김 등이 소바 국물과 조화를 이뤘다.

또한 야마가타현 지역에는 1000년 이상 된 온천이 적지 않다. 시즈온천, 자오온천, 히지오리온천, 긴잔온천 등 온천마다 다른 효능과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여행 정보
국내에서 일본 야마가타로 가려면 센다이 국제공항을 이용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대중교통은 기차로 센다이공항에서 센다이역을 거쳐 야마가타역까지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약 1시간10분 소요된다. 자세한 여행 정보는 야마가타현 공식 관광 코디네이터인 ‘브라이트스푼’(02-755-5888, www.brightspoon.com)이나 한국어로 제공되는 야마가타현 관광안내 홈페이지(www.yamagata.or.kr, 81-23-647-2333)에서 얻을 수 있다. 야마가타현은 눈이 많이 내려 의류와 관련 장비를 잘 갖추고 가는 것이 좋다.

<야마가타 |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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