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前남편에게 합의금 줬다고 애인 때려 죽였는데도 집유

홍지유 입력 2018. 2. 14. 15:03 수정 2018. 2. 15. 07: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성년 아들 법정대리인 자격으로 합의금 수령
재판부 "유족과 합의는 특별감경인자"
전문가 "집행유예 남발하는 재판 관행 문제"
검찰 "형량 약하다" 항소이유서 제출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고충정)는 지난 1월 11일 여자친구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4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중앙포토]
여자친구가 기절할 때까지 주먹으로 때려 사망에 이르게한 한 40대 남성이 피해자의 이혼한 전 남편에게 합의금 60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유족과의 합의를 특별감경인자로 인정받아 1심에서 실형을 면했다.

지난 1월 11일 의정부지방법원은 여자친구가 기절할 때까지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A(남‧40세)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합의금으로 9000만원을 지급했고 유족들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또 ^우발적 범죄인 점 ^119에 스스로 신고한 점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형의 수위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의정부지법에 따르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전 남편에게 6000만원, 언니와 남동생에게 각 1500만원 등 총 9000만원을 지급했다. 이혼한 남편은 미성년자인 두 아들의 법정대리인 자격으로 합의금을 수령했다. 피해자의 부모는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이용호 의정부지법 공보판사는 “유족은 통상적으로 상속권자를 의미하는데, 피해자의 상속권자인 두 아들이 모두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미성년 아들을 부양하고 있는 이혼한 전 남편이 합의금을 수령한 것”이라며 “합의 적격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죄질에 비해 형량이 낮다며 항소했고 항소심은 3월 중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라도 유족과 합의만 한다면 실형을 면할 수 있을까. 형법 259조에 따르면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상해치사)는 3년 이상 30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상해치사 형량 범위의 최하한선인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때는, 형법 62조(집행유예의 요건)에 따라 재판부가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이 때의 참작 사유는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 및 결과 ^범행후의 정황 등이다.

이창현 한국외대로스쿨 교수는 “‘유족과의 합의’를 감경 요소로 볼 것인지는 결국 판사 재량”이라며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로 기소된 경우라도 유가족과 합의를 하면 집행유예가 선고될만큼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남발하는 관행이 있는 것은 사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상해치사보다 형량이 높은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는 없었을까.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일 경우에만 선고 가능하다. 살인은 법정 최저 형량이 5년으로, 상해치사에 비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기가 까다롭다. 의정부지검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한 뒤 119에 직접 신고했고, 피해자가 폭행이 일어난 날로부터 11일 후 사망했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봤을 때,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살인 혐의가 아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고의가 입증되지 않은 과실범의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형량을 3년 이하로 맞추려는 게 사법부의 관행”이라며 “강력범죄의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어렵도록 독일처럼 감경 요인의 적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