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 분석 불가능.. 차라리 로또 사겠다

아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감독청장 입력 2018. 2. 1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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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에 있는 비트코인 채굴 시설. 일각에선 비트코인 채굴에 매년 30의 전력이 사용된다고 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에 가까웠던 작년 12월에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비트코인에 투자해도 될지 물었다. 그때 내 대답은 “전혀 모르겠다”였다. 그때보다 비트코인 가격이 반 이상 떨어진 지금도 내 대답은 똑같다.

앞으로 1년 뒤에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일지는 알 수가 없다. 두 배로 뛸 수도 있고 열 배로 뛸 수도 있다. 아니면 95% 급락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 가격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 어떤 경제적인 분석 방법도 비트코인 가격 예상에는 쓸모가 없다.

비트코인 가격은 투자자들의 집단 심리에 따라 결정된다.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치로 가격이 움직이는 셈이다. 거시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나 경제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 동시에 비트코인은 경제에 도움이 될 것도 없다.

비트코인, 익명의 거래수단으로 활용

현대 경제 체제에서 화폐는 명확한 실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화폐로 세금을 받고 있다. 부채나 자산의 가치도 화폐로 매겨진다. 각국 중앙은행은 안정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고, 경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통화 정책을 펼치는데, 이런 통화 정책도 역시 화폐에 기반해서 이뤄진다. 화폐는 사회적인 합의로 만들어진 관념이지만, 국가와 공적 기관의 권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기반 덕분에 화폐가 통화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경제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언제든지 여러 경제 주체가 일정 유형의 조개껍질이나 금, 튤립 같은 일련의 상품을 화폐처럼 여기고 사용할 수 있다. 또 이런 특정 상품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가치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가능하다.

튤립버블을 예로 들어보자. 1636년 초에 네덜란드에서 튤립 구근의 한 종류인 ‘스윗서스(switsers)’ 1파운드(약 450g) 가격은 60길더였다. 1년 뒤인 1637년 2월 중순에 스윗서스 1파운드 가격은 1500길더까지 뛰었다. 이 충격으로 다른 튤립 구근의 가격은 99% 하락했다.

물론 비트코인은 튤립과 다르다. 튤립은 공급량이 단기적으로 고정돼 있다. 중장기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튤립의 공급량은 자연 법칙에 따라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 비트코인은 이론적으로 무제한 발행이 가능하다. 물론 비트코인의 공급량도 제한돼 있다.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창안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수많은 컴퓨터 네크워크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통해 공급량을 제한하는 채굴 방식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는 익명의 거래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그저 임의의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비트코인은 마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달러 지폐가 가득 찬 여행 가방과 다를 게 없다. 단지 디지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게 여행 가방과 다른 점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하듯이 이런 식의 익명의 거래 수단은 상업적인 거래에서 유용한 역할을 맡기가 힘들다. 이런 수단은 마약왕이나 조세 회피자, 테러리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범죄자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암호화폐의 익명 거래를 금지했다. 다른 국가의 규제 기관도 한국을 뒤따라 암호화폐 익명 거래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서 암호화폐와 관련된 환경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비트코인 채굴에 얼마나 많은 전기가 소모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몇몇은 비트코인 채굴에 매년 30테라와트시()의 전기가 사용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모로코 전체의 전력소비량에 맞먹는다. 이보다 적게 추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어찌 됐건 비트코인 채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은 사회적인 이득은 전혀 없으면서 동시에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비트코인 버블 터져도 경제 영향 적어

동시에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로 인한 버블은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늘 지적하듯이 투기성 버블과 그에 뒤따른 버블의 붕괴는 간혹 불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편차는 있다. 1920년대의 월스트리트 붐은 대공황으로 끝난 반면, 1630년대 튤립버블은 네덜란드의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건 버블의 규모다. 그리고 부채로 조달한 자금이 거품을 만들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개인의 주식 투자나 특정 상품에서 파생된 버블은 일반적으로 거시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나스닥 버블과 파산으로 인한 타격 역시 거시경제 차원에서 봤을 때는 가벼운 수준의 상처만 남겼다.

반면 부동산 버블과 파산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위험하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버블의 규모는 주식시장의 그것과 비교해서 큰 데다, 부동산 버블의 대부분은 부채로 자금을 조달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각국의 규제기관들은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암호화폐 투기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전체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이 전 세계 부동산 자산과 비교해서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위험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몇몇 개인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폭락하면 쫄딱 망할 게 분명하지만,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의 재능을 비트코인 투기와 같은 제로섬 도박에 낭비하는 대신, 기반 기술의 발전을 통한 인류의 후생을 높이는데 집중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암호화폐의 근간을 이루는 블록체인 기술은 다양한 금융 및 거래 활동에 있어 비용을 줄이고 위험을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지금 비트코인에 투자를 할지 말지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할 말이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나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느니 로또 복권을 살 것이다.

▒ 아데어 터너(Adair Turner)
영국 금융감독청장, 신경제사고연구소 운영위원장, 영국산업연맹(CBI) 대표, 메릴린치 유럽법인 부회장, ‘부채와 악마 사이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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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버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에 대한 과열 투기 현상이다.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로 꼽힌다.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귀족과 신흥 부자들을 중심으로 튤립에 대한 투기 수요가 생겼고, 한 달 만에 튤립 가격이 50배나 올랐다. 하지만 급등한 가격에 비해 거래는 거의 없었고, 법원에서 튤립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튤립 가격이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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