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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눈]IT계 내부자들 양심선언

이준기 입력 2018.02.13. 20:05

"우리는 내부자였다(We were on the inside)."

최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눈길 가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최근 한 여검사의 성추행 고백으로 한국을 강타하기도 했던 미투(MeToo·나도 피해자) 캠페인은 사회 각계로 확산하고 있지만, 이에 응답하는 아이디드댓(IDidThat·나는 가해자) 캠페인 사례는 찾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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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뉴시스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우리는 내부자였다(We were on the inside).”

최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눈길 가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자신들 업적이나 다름없는 소셜미디어(SNS)의 역기능을 부각하며 ‘반(Anti) SNS 캠페인’에 나섰다는 게 요지다.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쟁쟁한 IT계 거물들이다. 구글 임원 출신의 설계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부터 페이스북 전 임원 데이브 모린,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 개발자 저스틴 로젠스타인, 애플·구글의 홍보담당 임원을 지낸 린 폭스,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 로저 맥나미까지.

이들은 ‘인도적기술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라는 단체를 공동 설립해 거대 IT기업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입법운동(Lobbying Effort)에 나서겠다고 했다. 비영리단체 ‘상식(Common Sense) 미디어’와 함께 ‘기술의 진실(The Truth About Tech)’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모금한 700만달러(약 76억원)를 전국 5만5000여개의 공립학교를 상대로 한 ‘반 SNS 교육’에 쓰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맥나미는 “드디어 나에게 잘못된 걸 바로잡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했다.

그간 “내 조카에겐 SNS 사용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던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나 “SNS가 어린이들 뇌에 무슨 짓을 하는지는 신(God)만이 안다”던 페이스북 창립멤버 션 파커처럼 ‘내부자들’의 경고성 발언들은 종종 들렸지만, 직접 ‘행동’으로 옮겨진 건 이번이 첫 사례인 듯하다.

피해자의 폭로는 큰 심적 고통을 수반하는데, 가해자의 양심선언도 그에 못지않을 터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업적은 물론 화려한 커리어까지 하루아침에 포기해야만 가능하다. 최근 한 여검사의 성추행 고백으로 한국을 강타하기도 했던 미투(MeToo·나도 피해자) 캠페인은 사회 각계로 확산하고 있지만, 이에 응답하는 아이디드댓(IDidThat·나는 가해자) 캠페인 사례는 찾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행동’을 결심하기까지 적잖은 고민이 뒤따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특히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양심선언’은 대중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터키 지성인 오르한 파묵은 2005년 “터키에서 쿠르드인 3만여명, 아르메니아인 100만여명이 1915년 살해됐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다”며 터키에서 금기시됐던 1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사건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가정체성 모독죄로 잡혀갈 것을 알면서도 ‘진실’의 손을 들었다. 파묵은 이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뽑혔다. 그의 수상은 잠자는 양심을 깨운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우리의 ‘아이디드댓’ 캠페인의 원조격은 2011년 타계한 김근태다. 그는 2003년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돈을 받았다’는 양심선언 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법원은 “스스로 양심고백한 점을 감안해 징역형 대신 벌금형을 택했다”고 밝혔고, 결국 김근태는 의원직을 유지했다. ‘비겁한 거짓’에는 한없이 엄격했던 우리 국민도 ‘용기 있는 참회’엔 꽤 관대했던 것이다. 한국판 ‘실리콘밸리 행동’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이준기 (jeke1@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