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가면 뒤 위선..옥스팜 '성매매'에 쏟아지는 추가 폭로

강혜란 2018. 2. 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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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식품 얻으려는 소녀들의 性 착취 흔했다"
구호단체·NGO의 '도덕성 결핍' 폭로 잇따라
옥스팜 부대표 사퇴, 英 정부는 조사 착수
EU도 "비윤리 확인 땐 자금 지원 중단" 밝혀
2010년 1월 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아이티 이재민들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부서진 산타 아나 교회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Oxfam) 직원들의 ‘아이티 성매매’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옥스팜 뿐 아니라 다른 구호단체들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폭로도 이어진다. 옥스팜 부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가운데 영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옥스팜 자금 지원 중단을 검토하고 나섰다.

12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페니 로렌스 옥스팜 부대표가 이날 성명을 통해 "당시 프로그램 책임자로서 내 감독 기간에 이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모든 책임을 진다"며 사의를 표했다. 2006년 옥스팜 영국 본부에 합류한 로렌스 부대표는 국제프로그램 책임자로서 전 세계 60여개 국가에 파견된 구호팀을 총괄해 왔다.

지난 2011년 아이티 대지진 참사 때 현지 직원들의 성매매 의혹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사의를 밝힌 페니 로렌스 옥스팜 부대표. [AFP=연합뉴스]
앞서 영국 더타임스의 보도로 중미 국가 아이티에서 강진 발생 이듬해인 2011년 구호활동을 벌이던 롤란드 반 하우어마이런 소장 등 현지 옥스팜 직원들이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옥스팜 측은 자체 조사로 관련 직원들을 해고·이직 조치를 했지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나아가 옥스팜 직원들이 지난 2006년 아프리카 차드에서도 성매매를 했다는 또 다른 보도도 나왔다. 로렌스 부대표는 성명에서 "아이티는 물론 차드에서 일어난 직원들의 행동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우리는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의혹을 사실상 인정했다.

파문이 확산하자 영국 정부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비영리 기관들을 모니터링하는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를 통해 옥스팜 조사에 착수했다. BBC는 자선위원회가 은행 계좌 동결 조치까지 포함하는 법적 조사 권한을 부여받았다며 이는 당국이 이번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앞서 마크 골드링 옥스팜 영국 대표 등 지도부는 페니 모던트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조사 협조를 약속했다.

아이티 정부도 진상 조사에 나섰다. 보치트 에드먼드 영국 주재 대사는 CNN에 “옥스팜 대표들을 소환 조사한 뒤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로고 간판. [연합뉴스]
옥스팜으로선 도덕적 신뢰가 땅에 떨어졌을 뿐 아니라 정부 자금 지원줄이 끊길 위기다. 전날 국제개발부에 이어 EU도 이날 옥스팜이 윤리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옥스팜은 지난해 국제개발부로부터 3200만파운드(약 480억원)를, EU로부터 2500만유로(약 325억원) 이상을 지원받았다.

나아가 옥스팜 뿐 아니라 국제구호단체와 비정부기구(NGO)에서 이 같은 성매매·성착취가 비일비재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옥스팜을 비롯해 각종 국제기구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으로 15년간 일한 전직 구호활동가는 이날 가디언 기고에서 “구호활동가는 물론 유엔평화유지군 등에 의한 성매매·성착취 사례를 수년간 보고 들었다”면서 “이런 문제를 폭로한 사람들은 오히려 조직에 의해 은폐 기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신뢰 하락 및 자금 지원 중단을 우려한 국제기구들이 문제를 일으킨 활동가를 공개 문책하긴커녕 ‘쉬쉬’하기 바빴다는 것이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남수단 아코보 타운에서 구호단체 옥스팜이 식량을 지급하고 남은 빈 박스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노는 아이들. [AP=연합뉴스]
영국 보수 주간지 ‘스펙테이터’의 한 기고자도 “2008년 라이베리아 등지에선 유엔평화유지군이 구호식품을 얻으려는 소녀들의 성(性을) 착취하는 일이 허다해 ‘식량 대가의 섹스(sex for food)’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전했다. 이 기고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유엔 관계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2000건 가량 성 학대 및 착취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됐다.

영국의 싱크탱크 시비타스(Civitas) 조너선 포맨 수석연구원은 CNN 기고에서 “오랫동안 감시와 비판에서 면제됐던 대형 구호단체들에서 필연적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구호 활동가들은 목숨 걸고 헌신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도덕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의식을 지녔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기구의 정보 공개와 감시가 더욱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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