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여정엔 식사 대접 네 번, 펜스엔 한 번, 아베는 0

유지혜.박유미 2018. 2. 1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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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우방 미·일 홀대한 평창 외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오후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창=뉴스1]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대부분 일정을 매듭지으면서 ‘평창 정상외교전’ 1라운드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정부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국빈급으로 극진히 대우했으면서도 정작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주요국 정상급 인사들에 대한 배려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박3일(9~11일)간 한국에 머문 김여정과 네 차례나 만났다. 개막식 참석(9일), 접견 및 오찬(10일 오전 11시~오후 1시46분),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 관람(10일 오후 9시10분~11시10분),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관람(11일 오후 7시~8시40분)을 함께했다.

북한 대표단에 대한 식사 대접은 9일 리셉션을 제외하고도 네 차례였다. 10일 청와대 오찬에 이어 만찬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대접했고, 11일 오찬과 만찬은 각각 이낙연 국무총리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했다.

북엔 대통령·총리·장관·실장 나서

다자 행사를 주최하는 국가의 정상이 한 나라 대표단과 이처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도 2박3일(8~10일) 동안 네 번 만났지만 시간은 차이가 났다. 접견 및 만찬(8일 오후 6시30분~9시14분), 리셉션(9일 오후 6시39분~44분), 개막식 참석(9일), 여자쇼트트랙 경기 관람(10일 오후 7시43분~8시20분) 등이었다.

특히 펜스 부통령이 9일 리셉션 때 5분 만에 행사장에서 떠난 건 큰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한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펜스 부통령과 같은 헤드테이블에 배치해 미국 측에서 불편해한 것으로 안다. 김영남의 자리를 바꿔 달라는 요청도 미국이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자리 배치를 바꾸지 않았고, 결국 미국 측은 행사 1시간 전에 리셉션 불참을 통보해 왔다고 한다. 청와대는 “펜스 부통령이 미 선수들과의 만찬 일정 때문에 리셉션에 올 수 없다고 사전 통보했다”고 했지만, 불쾌감의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외교가에선 정설이다.

펜스 자리 김영남 맞은편에 배치

미국 측은 펜스 부통령의 방한 전부터 북한과의 접촉설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5일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를 위해 방한한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한국 정부 및 학계 인사들을 만나 “펜스 부통령은 어떤 계기의 북·미 대화에도 관심이 없다. 의미 있는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은 0%”라고 못 박았다고 한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부통령에 대한 이런 식의 리셉션 자리 배치는 미국 입장에선 의도적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례”라고 평가했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 기간 중 한국 정부 인사와 함께하는 언론 공개 일정도 없었다. 9일 평택 2함대사 방문 때 김병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이 동행했을 뿐이다.

4강(미·중·일·러) 정상 중 유일하게 개막식에 참석한 아베 총리와도 매끄럽지 않았다. 개막식과 리셉션을 제외하면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9일 1시간 동안 회담한 게 전부다. 아베 총리에 대한 고위급 한국 정부 인사의 식사 대접도 없었다.

특히 회담 뒤 청와대의 발표로 공개적인 파열음이 났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내정에 관한 문제를 총리가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물은 것도 아닌데 “정상회담에 대해 추가로 말씀드릴 게 있다”며 이렇게 소개했다.

반면 일본 정부 당국자는 정상회담 브리핑 때 “한·미 합동군사훈련 관련 언급이 나왔느냐”는 질문에 “양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까지 높이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 이상의 대화는 공개하기 어렵다”고만 언급했다. 정상 간 대화를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 관례상 드문 일이다. 외교 소식통은 “언론 보도가 먼저 나온 것도 아니고, 청와대가 직접 해당 내용을 공개했으니 일본 측에서는 아베 총리에 대한 망신 주기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펜스·아베, 함께 이동 친밀감 과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미·일 정상급 회동도 결국은 무산됐다. 대신 개막식 리셉션을 시작하면서 사진만 찍었다. 정부 당국자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물리적으로 세 정상이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또 한·미, 한·일, 미·일 회담이 각기 진행됐기 때문에 현안에 대한 3국 간 논의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리셉션장까지 한 차를 타고 오고 개막식에서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한·미·일 중 한국만 빠진 모양새가 반복적으로 연출됐다.

이를 두고 외교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 접촉 국면에서 외교부는 존재감이 없었다. 첫 접촉이었던 지난달 9일 남북 고위급 당국 회담 때만 외교부 실무자가 참여했고, 이후 접촉에서는 모두 빠졌다.

한·미·일 사진만 찍고 회동 못해

당시 회담 때 북측 대표였던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비핵화 논의를 직접적으로 거부한 이후 북핵 6자회담의 주무부처인 외교부가 남북 접촉에서 빠지자 여러 뒷말이 나왔다. 이후 북한이 대북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요구를 하고, 통일부가 이를 수용·발표하면, 외교부는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상대로 제재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설득하는 뒷수습 역할에만 치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일 “한국 외교부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종종 관여하지 못한다는 게 미국 외교관들의 이야기”라며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때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없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향후 북핵문제 진전에 필수적인 한·미 동맹 관리를 위해서는 외교라인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그간 한·미 동맹과 남북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던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살얼음판 같은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려면 다시 한·미 동맹에 무게를 싣고 균형을 잡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대표단과 접촉하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 등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고 곧 이런 과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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