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김여정 네번 만나는 동안 한·미·일은 '사진 한 장' 뿐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대부분 일정을 매듭지으면서 ‘평창 정상외교전’ 1라운드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정부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국빈급으로 극진히 대우했으면서도 정작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주요국 정상급 인사들에 대한 배려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자 행사를 주최하는 국가의 정상이 한 나라 대표단과 이처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도 2박3일(8~10일) 동안 네 번 만났지만 시간은 차이가 났다. 접견 및 만찬(8일 오후 6시30분~9시14분), 리셉션(9일 오후 6시39분~44분), 개막식 참석(9일), 여자 쇼트트랙 경기 관람(10일 오후 7시43분~8시20분) 등이었다.
특히 펜스 부통령이 9일 리셉션때 5분 만에 행사장에서 떠난 건 큰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한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펜스 부통령과 같은 헤드테이블에 배치해 미국측에서 불편해한 것으로 안다. 김영남의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청도 미국이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 기간 중 한국 정부 인사와 함께 하는 언론 공개 일정도 없었다. 9일 평택 2함대사 방문 때 김병주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 등이 동행했을 뿐이다.
반면 일본 정부 당국자는 정상회담 브리핑때 “한·미 합동 군사훈련 관련 언급이 나왔냐”는 질문에 “양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까지 높이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 이상의 대화는 공개하기 어렵다”고만 언급했다. 정상 간 대화를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관례상 드문 일이다. 외교 소식통은 “언론 보도가 먼저 나온 것도 아니고, 청와대가 직접 해당 내용을 공개했으니 일본 측에서는 아베 총리에 대한 망신주기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한·미·일 정상급 회동도 결국은 무산됐다. 대신 개막식 리셉션을 시작하면서 사진만 찍었다. 정부 당국자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물리적으로 세 정상이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또 한·미, 한·일, 미·일 회담이 각기 진행됐기 때문에 현안에 대한 3국 간 논의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리셉션장까지 한 차를 타고 오고 개막식에서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한·미·일 중 한국만 빠진 모양새가 반복적으로 연출됐다.
이를 두고 외교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 접촉 국면에서 외교부는 존재감이 없었다. 첫 접촉이었던 지난달 9일 남북 고위급 당국 회담 때만 외교부 실무자가 참여했고, 이후 접촉에서는 모두 빠졌다.
당시 회담 때 북측 대표였던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비핵화 논의를 직접적으로 거부한 이후 북핵 6자회담의 주무부처인 외교부가 남북 접촉에서 빠지자 여러 뒷말이 나왔다. 이후 북한이 대북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요구를 하고, 통일부가 이를 수용·발표하면, 외교부는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상대로 제재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설득하는 뒷수습 역할에만 치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일 “한국 외교부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종종 관여하지 못한다는 게 미국 외교관들의 이야기”라며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때도 (강경화)외교부 장관은 없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향후 북핵 문제 진전에 필수적인 한·미 동맹 관리를 위해서는 외교 라인이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그간 한·미 동맹과 남북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던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살얼음판같은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려면 다시 한·미 동맹에 무게를 실고 균형을 잡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대표단과 접촉하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 등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고 곧 이런 과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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