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얼음수정' 만든 신명호 , "전기톱으로 직접 깎아 만들었어요"

고성민 기자 2018. 2. 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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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점화 주자로 나서 성화대 빙판에서 깜짝 연기를 펼친 ‘피겨 여왕’ 김연아. 연기를 마친 김연아가 뾰족한 얼음수정 중심부에 불을 붙이자, 불은 30개의 굴렁쇠를 거쳐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로 솟아올랐다. 전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 얼음수정은 신명호(45) 조각가가 135㎏짜리 얼음 덩어리 35개를 전기톱과 조각도로 깎아 만든 것이었다.

신명호 조각가가 개막식 얼음수정을 제작하고 있다. /신명호 조각가 제공

신씨는 12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통화에서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원래 얼음수정을 아크릴 인조모형으로 제작했는데, 만들고 보니 재질과 촉감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직위에서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를 끝까지 비밀에 부쳐, 김연아 선수가 아닐까 예상만 했다”며 “김연아 선수를 너무 좋아해 김연아 선수가 피겨 연기를 하는 모습도 종종 조각했는데, 기분 좋고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개막식 무대 얼음수정을 만들다가 넘어져서 손목을 다쳐, 병원에선 2~3주 동안 일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반(半)깁스를 하고 작품을 마무리했다”며 “늘 추운 곳에서 일하면서 무거운 얼음 덩어리를 다루다 보니 자잘한 근육통은 직업병처럼 달고 산다”고 했다.

신씨가 얼음 수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개막식 직후 신씨의 딸이 트위터에 “얼음조각 우리 아빠가 하신 것이다. 뾰족뾰족해서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일이 깎은 얼음조각들을 자루에 넣어 치우며 작업하셨다. 이 작업하고 허리 다치고 팔에 깁스도 한 우리 아빠”라는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얼음 조각의 달인’이라 불리는 신씨는 군대 제대 직후 지금까지 21년째 얼음 조각을 하고 있다. 화천 산천어 축제, 양주 얼음골 눈꽃축제, 홍천강 얼음조각 축제 등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얼음 조각 전시회에서 활동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아타(62)는 2006년 마오쩌둥 얼음 조각이 서서히 녹아 소멸되는 과정을 카메라로 기록한 ‘온 에어 프로젝트: 마오의 초상, 얼음의 독백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마오쩌둥 얼음 조각을 만든 것도 그였다.

-개막식을 마친 소회는. “국가적 행사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게 영광스럽고 기분 좋다. 특히 김연아 선수가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라고 예상만 했는데, 개막식 때 김연아 선수가 등장하는 걸 보고 크게 감동했다. 김연아 선수를 굉장히 좋아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만큼 실력과 정신력이 전 세계 톱(top)인 데다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를 하는 성품도 멋있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 연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조각했는데, 올림픽 개막식에서 내가 제작한 얼음수정을 배경으로 김연아 선수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 좋고 영광스럽다.”

-올림픽 얼음수정을 제작한 계기는.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1월 말 의뢰했다. 조직위는 본래 플라스틱 아크릴로 만들어진 인조모형으로 얼음수정을 기획·제작했는데, 만들고 보니 재질과 촉감이 기대했던 것에 못 미쳤다고 하더라. 당시 나는 강릉에서 다른 얼음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북극곰을 얼음 조각으로 만들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곰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북극곰 얼음 조각이 녹는 과정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제작 일정과 겹쳐 개막식 얼음수정은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3일간 제작했다. 제작 기간이 짧아 거의 하루종일 제작에 매달렸다.

조직위가 모형에서 실제 얼음 조각으로 변경한 것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모형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다고 해도 살아있는 얼음의 느낌을 낼 수 없다. 얼음은 녹으면서 숨을 쉰다. 녹아서 물이 떨어지면서 ‘내(얼음)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 느낌은 어떤 모형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점에 가장 초점을 두고 디자인했나. “조직위에서 디자인과 사진을 가지고 왔고, 나는 제작만 맡았다. 아무래도 대내외적으로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심혈을 기울였다.”

-얼음수정을 완성하고 만족스러웠는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더 화려하고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성화대의 무게 한도 때문에 못 했다. 얼음수정의 최초 설계는 모형 조형물인 만큼, 무대도 그에 맞춰 제작됐는데, 갑자기 진짜 얼음 조각이 무대에 들어오면서 무게가 확 늘어났다. 모형 조형물은 무게가 1t(톤) 이하였을 텐데, 실제 얼음수정은 무게가 3.5t 정도 된다. 그마저 원래 계획대로 얼음수정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고 80~90% 정도로 줄인 무게다. 준비한 얼음 재료를 꽤 많이 버렸다. 계획대로 모든 얼음수정을 표현했다면 무대 안전이 위험한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고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선 5~10% 차이도 크다는 점에서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

-얼음 조각은 어떻게 만드나. “우선 얼음 덩어리를 하나씩 쌓은 뒤 디자인대로 스케치하고, 전기톱으로 큰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재단을 한다. 이후 전기톱으로 조금 더 정교하게 깎아내고, 조각도를 이용해 정교하게 만든다.”

-작업하던 중 허리를 다치고 팔에 깁스까지 했다고 들었다. “얼음수정을 만들다 넘어져서 손목을 다쳤다. 병원에서 2~3주 동안 일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반깁스를 한 상태에서 작품을 마무리했다. 늘 추운 곳에서 일하면서 무거운 얼음 덩어리를 다루다 보니 직업병처럼 자잘한 근육통은 달고 산다. 완성된 얼음 조각 작품은 화려하지만, 조각을 만드는 곳은 전투장과 다름없다. 힘들고 고되다. 그렇지만 조각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 자체가 큰 행복이다. 이번 평창올림픽 개막식 조각은 나에게 삶의 활력과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영광스러운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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