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가면', 그들은 왜 '오류'를 '논란'으로 포장하나?

성현석 기자 입력 2018. 2. 11. 19:35 수정 2018. 2. 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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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오보'를 대중이 사실로 믿는다면, '오보가 곧 사실'이라는 식이었다.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라는 논평은 과연 이와 다른가?더 황당한 건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이다.

<노컷뉴스> 가 기사 삭제 및 사과를 한 뒤에도 한참 동안, <조선일보> 온라인 판 상단에는 "北 응원단 '김일성 가면' 응원 논란野 "평양올림픽" 비판"이라는 기사가 게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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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북한 관련 오보에 관대한 관행, 이제 끝낼 때

[성현석 기자]

 

전쟁의 발단, 어쩌면 <동아일보> 오보였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다. 같은 달 16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모스크바 3상회의를 다룬 기사인데, 명백한 '오보'였다. 신탁통치에 적극적인 쪽은 오히려 미국이었다. 신탁통치 기간을 놓고, 미국은 '최소 5년 최장 10년'을 주장했다. 반면, 소련은 '최장 5년'을 주장했다.

이틀 뒤인 1945년 12월 29일, <동아일보>는 "한국에 신탁 통치 실시 결정. 이게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라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이어 소련을 격렬히 비판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30일, <동아일보> 한 귀퉁이에 전혀 다른 기사가 났다. '미국 육군성 코뮈니케'를 통해 소개된 모스크바 3상회의 실제 결정 내용이다. (☞관련 기사 : 반역자에서 애국자로역사를 바꾼 신분 세탁, 나라 판 좌익? 김일성 '엉터리 신년사'의 비밀)

<동아일보> '오보'의 수혜자, '친일파'가 '민족주의자'로 포장

30일자 기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이미 그때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난 뒤였다. 신탁통치에 적극적이라는 오해를 샀던 소련에 대한 반발이 격렬했다. 이승만, 김구 등 우익 지도자들은 '국민 총파업'을 주도하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들에겐 기회였다. 해방 직후, 여론 지형은 좌익에 기운 상태였다. 소련 측 주장에 대한 오해와 반발은 여론을 뒤집는 지렛대였다. 대중의 지지를 잃고 고립된 좌익, 승기를 잡은 우익의 대립은 폭력 사태로 번졌다. 좌우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인 지도자들은 암살당했다.

사실과 논리가 사라지고, 선동만 남은 상황에서 분단을 막는 정치력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이후 역사는 아는 대로다. 남과 북에 다른 정권이 들어섰고, 곧 전쟁이 터졌다. 그 뒤론, 남과 북 모두 끔찍한 독재가 오래 이어졌다.

분단, 전쟁, 독재의 책임이 모두 <동아일보>에 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오보'가 한국 현대사가 비극을 피할 가능성 하나를 짓뭉갠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동아일보>가 '오보' 정정에 소극적이었던 책임은 물을 수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는 우익인 한국민주당(한민당) 지도자였으며, 그 자신이 반탁운동을 이끌었다. '오보'에서 비롯된 반탁운동은 김성수를 포함한 친일 기득권층이 '애국자', '민족주의자'로 포장되는 계기였다. 적어도 동아일보 설립자는, <동아일보> '오보'의 수혜자였다.

'오보'와 '선동', 전쟁을 부른다


'오보', 혹은 사실과 논리를 무시한 선동적인 보도가 전쟁을 부른 사례는 외국에도 흔하다. 1898년 1월, 미국은 전함 메인 호를 쿠바로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메인 호가 폭발했다. 사고 원인은 모호했다. 그런데 미국 언론은 당시 쿠바를 지배하던 스페인의 공격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선동적인 보도를 이어갔다. 결국 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메인 호 폭침 원인은 지금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역사의 방향을 정하는 시기에 불거진 '오보'는 이토록 위험하다. 따라서 '오보'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는 태도와 함께, 확인된 ‘오보’를 퍼뜨리지 않으려는 노력 역시 치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언론이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

'김일성 가면'. CBS <노컷뉴스>가 지난 10일 밤에 낸 '오보' 때문에 벌어진 소동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 중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했다는 내용인데, <노컷뉴스>는 11일 새벽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아울러 11일 오후 1시 36분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입장문을 내고 "(해당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관련 전문가와 통일부 역시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응원 도구로 쓸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기사를 낸 언론사가 '오보'를 인정하고 기사를 삭제했지만, 소동을 더 키우는 이들이 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한술 더 떴다.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지 않았다는 통일부 측 발표가 나온 직후, 김 대변인은 논평을 냈다. 그는 "북한 응원단의 '김일성 가면' 응원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정부는 '김일성 가면' 응원에 대해 '김일성이 아니다'고 방어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우리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엽기적인 논평이다. 국민과 언론 다수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 세포 연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황 박사의 연구가 진실이었나? 아니다.

'오보' 판명 뒤에도 그들은 왜?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1945년 말, <동아일보>의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 보도가 '오보'였다는 사실은 당대 지식인 사이에서 곧 알려졌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오보'로 혜택을 누리는 이들의 입장은 달랐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오보'를 대중이 사실로 믿는다면, '오보가 곧 사실'이라는 식이었다.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라는 논평은 과연 이와 다른가?

더 황당한 건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이다. <노컷뉴스>가 기사 삭제 및 사과를 한 뒤에도 한참 동안, <조선일보> 온라인 판 상단에는 "北 응원단 '김일성 가면' 응원 논란野 "평양올림픽" 비판"이라는 기사가 게재돼 있었다.

그들은 왜 '오류'를 '논란'으로 포장하나?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썼다는 주장은 논란거리가 아니다. '논란'은 사실에 대한 해석이 충돌 할 때 쓴다. 명백한 오류에 대해선 쓸 수 없는 표현이다.

북한 응원단이 쓴 가면 속 얼굴이 김일성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는 해석은 <노컷뉴스>가 처음 했었다. 이어 <노컷뉴스>는 이런 해석이 틀렸다고 했고, "삭제한 기사를 인용해 보도하거나 정파적 주장의 근거로 삼는 일이 없기를 당부"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왜 오류를 논란으로 만드나.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의 옛 보도를 돌아보게 된다. 탈북자 혹은 정체가 모호한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해서 북한 관련 뉴스를 쏟아내곤 했다. 남북 교류가 끊어진 상황에서, 이런 보도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란 불가능했다. 설령 명백한 오보라고 해도, 북한이 시시콜콜하게 정정 보도를 요구할 리도 없었다. 이런 맹점을 악용한 선동적인 보도가 종종 있었다.

북한 관련 '오보' 양산한 역사, 이제 끝낼 때 

남과 북의 대화 및 교류가 활발해지면, 이렇게 쏟아진 '오보' 역시 드러날 게다. 검증의 사각 지대에서 '오보'를 양산한 이들에겐 우울한 미래일 테다. 어쩌면 그래서 남북 교류가 더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북한 관련 오보에 유독 관대했던 역사는 이제 끝내야 한다. <조선일보> 등이 종종 지적한대로,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는 가시지 않았다. 한 신문의 '오보', 그걸 악용한 선동이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를 기억한다면, 북한 관련 오보에 대해선 엄격해져야 한다.

▲<조선일보> 온라인판. ⓒ<조선일보>



성현석 기자 (mendram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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