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사위들의 '황금빛 내 인생'

반기웅 기자 2018. 2. 1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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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늘 혹독한 실적 싸움에 시달려… 이혼하면 모든 것 내려놓아야

시청률 44.6%를 기록하며 주말 안방극장을 사로잡고 있는 KBS 2TV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정규직이 꿈인 흙수저의 고군분투기를 다루고 있다. 재벌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치소에서 챙겨봤다는 말이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는 자신이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인 줄 알고 잠깐 신분 상승을 꿈꿨지만 이내 부모의 거짓말임을 알고 재벌가에서 나와 비정규직·알바생인 현실로 돌아오는 주인공 서지안(신혜선 분)의 이야기다. 진짜 황금빛 인생은 돈과 명예로 살 수 없고,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흙수저의 성장기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다.

KBS 2TV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흙수저 출신 재벌가 맏사위 최재성 부회장(전노민 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 KBS 홈페이지

현대차그룹 둘째 사위 정태영 부회장 바로 해성그룹 맏사위 최재성 부회장(전노민 분)의 이야기다. 최 부회장은 또 다른 흙수저다. 그는 강원도 태백 탄광지대 출신이다. 해성그룹에 입사한 뒤 그룹 맏딸 노명희(나영희 분)와 결혼을 하면서 신분 상승한 ‘재벌가 사위’다. 그는 해성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으면서도 회장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지만 조금씩 엇나가는 자식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또 25년 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진짜 딸 서지수(서은수 분)가 재벌의 허례허식을 거부하고, 자신이 살아온 보통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며 서서히 변해간다. 사위를 이용한 재벌가 자매들의 회장 자리 다툼에서 한 발 비켜서고, 해성그룹을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으려는 자식들의 꿈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를 통해 흙수저 재벌 사위의 또 다른 황금빛 인생 찾기를 엿볼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재벌 사위들은 어떨까. 경영에 참여한 재벌가 사위들은 늘 혹독한 실적 싸움을 해야 한다. 지금 받아 쥔 경영권은 언제든 처가에서 도로 거두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둘째 사위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부회장도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사위’다. 정 부회장은 2003년 현대카드 대표를 맡은 뒤 7년여 만에 시장점유율 1.8%에 불과하던 현대카드의 점유율을 16.3%까지 끌어올리면서 이름을 알렸다. 회사를 키운 명실상무한 ‘스타 CEO’지만 늘 실적 걱정을 해야 한다. 성과가 주춤하면 대표의 입지는 금세 위태로워진다. 최근의 상황은 정 대표에게 썩 좋지 않다.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이 제자리를 맴돌면서 점유율 3위권에 있던 현대카드는 2017년 3분기 누적 13.3%(신용ㆍ체크카드)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4위에 머물렀다. 그나마 전년 3분기에 비해 0.3%포인트 오른 수치지만 3위 삼성카드(15.9%)와 격차가 크다.

현대캐피탈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기아차 신규 구매고객의 할부금융을 독점해온 현대캐피탈은 카드사의 거센 추격 속에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캐피탈의 현대차 할부금융 점유율은 2016년 69%에서 2017년 3월 57%로 떨어졌다. 여기에 경쟁사인 KB캐피탈의 선전으로 공고했던 업계 1위 자리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로 경영 일선에 서 있는 정태영 현대카드ㆍ캐피탈ㆍ커머셜 부회장. / 현대카드 제공

사위로 총수 자리 오른 담철곤 회장 지난 2012년 정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현대라이프생명은 출범 이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누적적자만 2273억원으로 현대모비스 등 현대자동차그룹으로부터 수차례 금융지원을 받아 간신히 버티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감각적인 ‘쇼잉’에 능한 정 부회장식 경영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 이양구 전 동양그룹 회장의 사위로 현재 오리온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 담철곤 회장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2017년 내내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으로 중국 시장에서 쓴 맛을 봤다. 오리온에 중국 시장은 그룹 전체 실적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2016년 오리온 중국법인 매출액은 1조3460억원으로 전체 매출 2조3863억원의 절반을 넘는 56.4%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사드 보복이 진행 중이던 2017년 2분기에는 전년 대비 그룹의 전체 매출액이 21.2% 줄었고, 영업이익은 40.1% 감소한 167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3분기에도 오리온그룹(오리온홀딩스ㆍ오리온)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9%, 4.8% 줄었다. 업계에서는 오리온의 4분기 실적 역시 중국 매출 타격의 영향을 받아 부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한령이 풀리면서 올해 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악재는 또 있다. 담 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 등 끊이지 않는 오너리스크다. 최근 검찰은 지난해 불기소처분된 담 회장의 횡령ㆍ배임 고소·고발사건에 대해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 담 회장은 지난해 2월 동양채권단 비상대책위원회로부터 증여세 포탈 혐의로 고발당했고, 처형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도 담 회장을 횡령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고소·고발인 측은 담 회장이 이양구 전 동양그룹 회장이 차명으로 소유했던 회사 ‘아이팩’ 지분을 빼돌려 225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수사했던 검찰은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담 회장을 불기소했지만 고소·고발인은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항고했다. 이와 별개로 담 회장은 위장계열사 임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38억여원을 횡령하는 등 300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지난 2011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석방된 전례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오리온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은 ‘오너리스크’라며 몇 년째 회사가 회장 송사에 끌려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벌가 사위들은 ‘사위’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경영권도 함께 내려놔야 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셋째 딸 정윤이 현대해비치호텔 앤드 리조트 전무와 이혼을 한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은 이혼 이후 2014년 회사를 떠났다. 신 전 사장은 1995년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에 입사한 뒤 정 전무를 만나 입사 2년 만에 결혼했다. 신 전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재벌가로 장가간 ‘신데렐라’로 유명세를 치렀다.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2005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경영 성과도 좋았다. 2001년 1조4341억원이던 현대하이스코 매출액은 2013년 4조461억원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신 전 사장은 오랜 별거 끝에 2014년 정 전무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이혼 소식이 알려지면서 신 전 사장은 이내 사임의사를 밝혔고 임기 2년을 남겨놓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혼 전까지 현대하이스코는 현대차그룹 내에서 신 전 사장 몫으로 잠정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적당한 시기에 신 전 사장이 현대하이스코를 맡아 독자경영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혼과 함께 모든 계획은 백지화됐다. 신 전 사장은 양육권을 포기한 것은 물론이고 현대하이스코 주식과 현대차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 신 전 사장과 정 전무가 결혼한 뒤 현대차그룹은 신 전 사장의 부친 신용인씨가 설립한 자동차부품회사 삼우를 1차 협력사로 지정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 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별 뒤 사돈 기업 삼우는 현대차그룹 특수관계에서 제외됐다. 다만 두 회사 간 거래가 끊기지는 않았다. 한때 현대가의 가족이자 경영능력을 인정 받았던 기업인 신 전 사장은 이혼과 함께 현대차그룹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이후 신 전 사장은 현재 삼우의 부회장으로 올라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오리온 본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평사원 출신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흙수저 재벌 사위가 등장하는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과 가장 닮은 사람은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다. 임 전 고문은 1995년 삼성 계열사 에스원 평사원으로 입사해 당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속해 있었던 삼성사회복지재단과 함께 사회봉사활동을 하다 이 사장과 연을 맺었다. 임 전 고문은 이 사장과 오랜 연애 끝에 1999년 결혼식을 올렸다. 평범했던 임 전 고문의 삶은 결혼 이후 180도 변했다. 결혼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MIT 경영전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땄다. 이후 2005년 한국에 돌아와 고속승진을 하면서 2009년에는 전무로 승진했다. 2011년에는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동안 둘째 사위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은 손윗동서였던 임 전 고문보다 승진이 빨랐다. 이 과정에서 임 전 고문과 이 사장 사이에 불화설이 도는 한편 임 전 고문이 삼성가에서 소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결국 2015년 2월 이 사장이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두 사람의 파경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임 전 고문은 2015년 12월 인사를 통해 상임고문에서 물러났고, 2016년 12월 계약 만료로 해지 통보를 받으면서 삼성가를 떠났다. 법원은 11개월 만에 이혼 결정을 내렸지만 임 전 고문은 항소했고 수원지법은 1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넘겼다. 지난해 7월 서울가정법원은 두 사람이 이혼하고 이부진 사장은 86억원의 재산을 임 전 고문 측에 분할해 주라고 판결했다. 임 전 고문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고, 소송은 진행 중이다. 임 전 고문이 삼성에 재직할 당시 삼성 측은 신상품 아이디어를 제시, 미래 대응에 기여했다며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해 왔지만 결혼생활이 파국을 맞으면서 임 전 고문의 경영인 커리어도 싱겁게 끝났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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