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서 제천까지.. '사람'이 없는 국가재난매뉴얼

오지원 2018. 2. 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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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말하지 못한 피해자의 이야기 ①] 재난은 '사람'에 대한 것, 재난대응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

[오마이뉴스 글:오지원, 편집:김도균]

304명의 희생자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삶이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서 있다. <오마이뉴스>는 유가족과 생존자, 단원고 교직원, 민간잠수사, 진도 어민 등 아직도 세월호에서 내리지 못한 사람들의 숨죽인 이야기를 전한다. 첫 번째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지원점검과장을 지냈던 오지원 변호사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얼마 전 이대 목동병원에서의 신생아 사망사건, 제천 화재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참사였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모습을 보았다. 신생아 사망사건에서도, 제천 화재 참사에서도 유족들은 "왜 피해자들에 대한 브리핑보다 언론브리핑이 우선이냐", "왜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필자는 이 언론보도를 보면서 얼마 전 만났던 한 지자체 공무원을 떠올렸다. 변호사들이 대한변협 차원의 재난대응 매뉴얼을 발표하는 모임에서였다.

"안전사고나 참사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몰려와서 항의하고 오열하고 정보를 달라고 하는데 저희도 마음이 아프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변호사님들이 좀 알려주세요."

세월호 참사 때는 어땠을까.

"사고 당일 진도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모른다고만 하고 뭘 물어봐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명단도 붙어있지 않고 아무 것도 없었다. 뭔가 조금이라도 준비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모른다고만 하니까 분통이 터졌다"

"사고 터졌을 때 누구든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알려줘야 되는데 그런 것도 안 되고, 진실을 알려줘야 되는데 진실은 빼고 알려주고..."

"반대표들이 닦달을 해야 뭘 알려주었습니다. 닦달해야 또 설명하고, 얘기 안하면 브리핑도 안 했습니다. 이것은 불만이 아니라 분노입니다. 구조는 당연히 국가가 해야 되고 그 역할을 위해 해경이 있는데, 그걸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전문적 방법, 인력, 장비는 국가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이고 당연히 그에 대한 아이디어나 계획이 있고 구조 활동을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방법을 가족들한테 문의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 이틀째인 지난 2014년 4월 17일 오후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구조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피해자 가족들은 구조작업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피해자 가족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편의와 지원에 최선을 다 해달라"는 지시에 모니터가 설치됐다.
ⓒ 유성호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영향받은 사람들은 직접적인 피해자들만이 아니라 국가를 대신해서 희생자들을 수습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했던 민간잠수사들, 진도 어민들, 자원봉사 관계자들과 같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 이들은 피해자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피해자의 관점과 인권 없는 재난 매뉴얼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던 걸까. 공무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유'는 평상시 교육과 훈련 부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고, 특히 세월호 참사의 경우 해경의 구조과정에서 '부족함'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의혹들이 다수 존재한다. 다만 공통적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꼽자면 우리의 재난 관련 법령과 매뉴얼에 '피해자들(재난으로부터 영향받은 사람들)의 관점과 인권'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과 재해구호법을 보면 추상적인 의미의 국민은 있는데,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피해자는 없다.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라는 전체 흐름에서 국민과 피해자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규정이 없다. 재해구호법에는 이재민(재해를 입은 백성을 의미)이라는 개념만 있다. 즉 현행법상 재난이나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은 정확한 사고경위, 수습정보 등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주체가 아니라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던져주는 물품이나 의료지원 등 구호를 일방적으로 받는 대상일 뿐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 민간잠수사들이 입수를 준비중이다.
ⓒ 황대식 제공
 
공무원들은 법령과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데, 현행법령과 매뉴얼이 이렇다 보니 국민들의 권리의식, 피해자들의 인식이나 필요, 요구와 현실 사이에서 엄청난 간극이 생긴다. 피해자들은 난데없는 가족 상실로 충격을 받고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고, 가족을 찾을 때까지 또는 원인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까지 사고현장에 상주하고 싶어 한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왜 죽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정보를 요구하게 된다.

그것은 그들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우리 누구도 내 옆에 있던 가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그 이유를 반드시 납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유가 은폐된다는 느낌이 들거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때 남은 가족은 죄책감 때문에 살 수가 없고 남은 가족을 돌보고 직장을 다니는 일상으로 복귀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는 많아지는데 법령과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공무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피해자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별다른 규정도 없고 훈련도 받은 바가 없으니까. 그 결과는 피해자들의 '고통과 불신'이다. 특히 참사 초기 피해자 관점에서의 대응 실패는 피해자들의 고통과 불신을 몇 배 가중시킨다. 피해자들은 이미 참사로 인해 세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사람들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왜 안바뀌는가?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제천서울병원에서 유가족 등이 스포츠센터 화재로 발생한 사상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라우마 전문가에 따르면 그들은 참사 이후 몇 년 동안 감정조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살갗이 벗겨져 진피가 드러난 상황 즉 온몸의 보호막이 상실된 상태와 유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참사 초기 대응에서 피해자들이 소외되는 상황은, 피해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고 더 큰 불신을 낳는다. 그리고 이후 정부나 대응기관의 어떤 조사결과나 발표도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상황은 세월호 참사 때 극에 달했는데 이후에도 바뀌지 않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국민이며 동시에 잠재적인 재난 피해자다. 재난 관련 법령이 국민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면 그 국민들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 그들을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것도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이것은 사보험이나 민사상 손해배상의 영역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재난피해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우선 가족의 죽음과 상처를 납득하고 충분히 슬퍼하면서 죄책감을 덜어내는 일이고, 배·보상은 이후의 문제다. 우리는, 공무원들과 우리 모두의 공감능력과 연대의식을 발휘하여, 재난과 안전사고의 현장에서 우리의 따뜻한 마음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법령과 매뉴얼을 개정하고 그에 따라 철저하게 교육, 훈련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도 많은 실패를 거치면서 그 경험을 축적하여 재난대응에 있어 '피해자의 인권'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우리에게 방향성과 시사점을 주는 영국의 '위기상황에서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정부지침'과 공무원들이 그 정부지침을 적용할 때 병용하도록 되어 있는 앤 얼 박사의 '심각한 위기에서 피해자들의 요구사항과 최고의 인도적 대응' 의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이러한 내용을 참고하여 대한민국 현실에 맞는 인도적 지원에 관한 법령과 매뉴얼을 만들고, 재난 전문 인력 양성, 공무원들의 소통과 협업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는 등 전반적인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영국의 '심각한 위기에서 피해자들의 요구사항과 최고의 인도적 대응' 중 일부내용>

- 재난은 '사람'에 관한 것이고, 재난대응이란 '피해자를 지원(supporting people)'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은 재난대응 절차와 피해자들의 매일매일의 필요한 점 사이 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 위기대응자들은 인간의 행동에 관한 일반적인 편견이나 관념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 재난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그를 통해 피해자들은 적절한 조치를 받고 있다고 본다.
- 재난 이후 반응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성공적인 접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 '권리'(기본권) 중심의 접근이 재난 계획, 훈련, 교육에 매우 중요하다.
- 심리 사회학적 지원은 피해자들이 서로를 만나게 주선하는 역할까지 포함된다.
- 유해와 시신을 거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유가족 지원에 관하여 심리 사회학적 지원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 유품에 관하여는 기본권 중심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며, 유품에 관한 당국의 태도와 지침은 유가족 권리 중심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 종교나 추모는 피해자들에게 매우 본질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사항들에 대한 결정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일임되어야 한다.
- 지난 20년 동안 피해자 지원과 관련하여 심리 사회학적 영향의 문제는 발전해 왔으므로 이를 반영하여 계획을 구성하여야 한다.

출처 : Humanitarian Assistance in Emergencies: Non-statutory guidance on establishing Humanitarian Assistance Centres

<영국의 '위기상황에서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정부지침'중 일부 내용>
 
제4장 : 인도적 지원센터의 목적
4.5.
인도적 지원센터의 핵심적인 역할은 재난피해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이다.

제5장 : 계획단계
5.9.(보안)
피해자들이 기거하는 인도적 지원센터의 보안과 사생활 보호는 피해자들을 위하여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 담당지역 경찰은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5.12.(구비될 시설)
- 인터뷰 장소
- 핸드폰(충전) 및 인터넷 시설
- 상담시설
- 조용한 쉼터
- 화장실
- 신선한 음식
- 영유아를 위한 특별한 장소
- 응급구호 장소
- 애완동물 보호소
- 데스크 : 경찰이 기거할 장소
5.16.(전화상담)
전화 상담은 절대로 자동응답으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사람이 있어서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전화응대와 정보전달을 할 수 있어야 한다.
5.27.(현장 공무원)
인도적 지원센터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미리 훈련을 받고 준비될 필요가 있다.

* 출처 : Identifying People's Needs in Major Emergencies and Best Practice in Humanitarian Response(Dr. Anne Eyre, DCMS, Cabinet Office)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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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강제해산당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피해지원점검과장을 지낸 오지원 변호사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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