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지금] 故 이수현씨의 의로운 죽음이 일본 국민에게 미친 영향

이진선 PD dora@kyunghyang.com 2018. 2. 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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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이수현씨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 일본 국민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일본 시민들이 선로에 떨어진 노인을 살피는 모습. 이진선 PD dora@kyunghyang.com

지난 1일 오후 6시 50분경 일본 오사카 다니마치욘초메역에서 한 남성 노인이 의식을 잃고 선로에 떨어졌다.

노인을 향해 “괜찮냐”고 소리치던 한 시민은 역무원을 찾기 위해 밖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누군가 다급히 비상벨을 눌렀다. 그때 반대편 플랫폼에 서 있던 시민이 선로에 뛰어내렸다. 다른 시민들도 하나둘 철길로 내려와 노인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에 있던 이들이 가방이나 겉옷을 받아주기도 했다.

상황을 알게 된 역무원이 들것을 들고 현장에 도착했다. 노인은 철도에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가 무사히 구출되기까지 철도에는 열한 명이 서 있었다. 역무원이 셋, 시민이 여덟이었다. 물론 플랫폼에도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 모든 일이 5분 안에 이뤄졌다. 시민들의 용기와 신속한 움직임이 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17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일본 시민들이 선로에 떨어진 노인을 구하는 모습. 이진선 PD dora@kyunghyang.com

2001년 1월 26일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이수현(당시 26세)씨는 도쿄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기 위해 세키네 시로씨와 함께 뛰어들었다. 안타깝게도 3명 모두 열차에 치여 숨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예가 없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일본 사회에서 한국의 젊은 청년이 보여준 희생정신은 일본인에게 큰 충격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1면 주요기사로 대서특필하면서 ‘살신성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자세히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서도 크게 보도했다.

경향신문 DB

일본 사회는 이수현씨를 의인이라 칭하며 추모했다. 일본 정부는 일종의 산재에 해당하는 노재를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재해급부금을 지원했다. 사고가 일어난 신오쿠보역에는 그의 용감한 행동을 기리는 추모 동판이 세워졌다. 2008년에는 이씨의 이야기를 다룬 한·일 합작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가 제작됐다.

이수현씨가 다녔던 일본어 학교 아카몬카이는 이씨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송하는 편지와 팩스 120통을 추도문집으로 엮었다. 이씨와 같은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 국제교류그룹,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기업경영자 등 각계각층에서 보낸 편지 속에서 상당수가 “어두운 뉴스가 많은 일본 사회에서 이씨의 의로운 행동을 보고 인간의 신뢰감을 되찾는 기분”이라고 적었다.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재일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 연합뉴스

이수현씨가 세상을 떠난 후 일본인들의 마음에 그의 희생정신이 남았다.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제2, 3의 이수현이 누군가의 영웅이 됐다.

<이진선 PD dor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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