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미래당, 마음은 민평당..'유체이탈' 비례의원 왜 생기나

2018. 2. 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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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공직선거법 192조4항의 정치학

국민의당 3명 탈당 땐 의원직 상실
'철새' 막는 공직선거법 192조 4항
비례의원·정당 '운명 공동체' 규정
창당·합당 때 종종 '어색한 동거'
국회에 당적변경 법개정안 발의 돼

[한겨레]

그래픽_김지야

“이렇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강제결혼을 하는데 인질로 잡혀가는 상황은 정당정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 4일 민주평화당 기자간담회 발언)

“저는 (미래당에) 무늬만 있는건데…민주평화당에서 당직을 해야하는게 아니냐 그런 여론도 많습니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 6일 라디오 인터뷰)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무늬만 미래당”이라고 했다. 스스로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는 비례대표라 어쩔 수 없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한 미래당에 당적을 둘 수밖에 없지만 향후 의정활동은 통합 반대파들이 창당한 민주평화당(민평당)과 같이하겠다는 것이다. 박주현·장정숙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들도 같은 입장이다. 의원직을 유지한 채 민평당에 합류하려면 국민의당이 이들을 제명해 출당해줘야 한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는 “정치적 소신이 다르면 탈당하라”며 ‘이탈’을 허용치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래당이 국회에서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서는 한 석의 의석수가 아쉽기 때문에 이들의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바른정당에 합류하고자 했으나 자유한국당에 남아 당론을 거스르는 행보를 보여왔던 김현아 의원처럼 ‘몸은 미래당, 마음은 민평당’에 있는 ‘유체이탈 의원’이 추가될 판이다.

잦은 합당과 분당으로 점철된 우리 정당사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왜 비례대표를 두고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는 것일까?

■ 비례대표 의원과 정당은 운명공동체?

◎공직선거법 제192조(피선거권상실로 인한 당선무효 등) ④비례대표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이 소속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 이상의 당적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국회법」 제136조(退職) 또는 「지방자치법」 제78조(의원의 퇴직)의 규정에 불구하고 퇴직된다. 다만, 비례대표국회의원이 국회의장으로 당선되어 「국회법」 규정에 의하여 당적을 이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쉽게 탈당하기 어려운 이유는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공직선거법) 제192조 4항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은 비례대표 국회·지방의회 의원이 소속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개 이상의 당적을 가지게 될 때는 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비례대표 의원 선출 방식에 기초한 것이다. 정당은 보통 선거를 앞두고 비례대표를 공천해 명단을 확정하고 유권자에게 공개한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에게 1표와 정당에게 1표를 행사하는데 여기서 각 정당이 획득한 투표율에 따라 47석(20대 총선 기준)의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가진다. (참고로 비례대표 의석을 받으려면 정당득표율 3%를 넘겨야 한다. 관련기사: ‘마의 ‘3% 벽’ 누가 넘을 것인가’ goo.gl/4xUUZM)

즉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과 달리 정당의 힘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정당의 의석 소유권’이 우선한다는 논리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들이 2016년3월27일 오후 서울 마포당사에서 열린 발대식에서 총선승리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1994년부터 ‘철새 정치꾼’ 막기 위해 도입

“그러나 「철새 정치꾼」 표현은 온당치 못한 것 같다. 철새가 옮겨가는 것은 오직 번식을 위해서다. 종족보존 본능에서 부화에 알맞은 번식지와 서식지를 왕래하는 것이다. 그것도 정확한 시기 정확한 코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못난 정치인들을 대자연의 섭리에 따르고 있는 철새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마침 민자당에서 소속정당 탈당 전국구의원 의원직 박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15대 국회부터는 꼭 적용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미리 해두었으면 한다. ” <동아일보> 1992년 12월29일치 1면 ‘횡설수설’ 중

비례대표 탈당에 따른 의원직 상실 조항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전까지 흩어져 있던 선거 관련 법안들을 하나로 통합한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공직선거법)이 1994년 3월 제정되며 이 조항이 탄생했다.

그러니까 1994년 법 제정 이전에는 비례대표 의원들도 ‘소신껏’ 당을 옮겨 다닐 수 있었다. 문제는 정치적 소신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를 실천한 의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고 조윤형 의원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통일국민당(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당)에 입당해 전국구로 당선됐지만 14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탈당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다, 그해 14대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에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박구일 의원은 대선 바로 전날 민자당을 떠나 국민당에 입당했다. 위에 인용한 <동아일보>가 “철새 정치꾼은 철새보다 못하다”고 풍자한 것은 이들을 꼬집은 것이다.

이에 민자당에서 전국구(비례대표) 탈당 땐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당시(1992년 12월28일) 김영구 민자당 사무총장은 “전국구 의원은 자신의 힘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당의 힘으로 당선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선 시켜준 정당을 탈당해도 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현행제도는 문제점이 있다”고 선거법 개정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주장이 이후 실제 법에 반영된 것이다.

<한겨레> 1992년 12월29일치 1면

■ “나를 제명해달라”의 시작

1995년 9월5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대회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 <한겨레>자료사진·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제공

이렇게 제정된 공직선거법 192조 4항의 위력은 법 제정 1년 뒤인 1995년에 바로 나타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하며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당했는데 당시 민주당 의원 95명 중 65명이 탈당하고 신당에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현재 국민의당 비례대표 논란처럼 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12명의 거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겨레> 1995년 7월27일치 4면 기사는 이들이 의원직을 유지한 채 국민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민주당에 “제명해 달라”고 호소하는 의원들의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떳떳하게 탈당하라”고 맞섰다. 결국 이들은 다음 해인 15대 총선(1996년 4월)을 한 달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회의로 입당했다. 즉 거의 반년을 ‘민주당 소속, 국민회의 의원’이라는 기묘한 신분을 유지했다. 의석을 잃어 쪼그라들지 않으려던 민주당과 의원직을 잃지 않으려는 의원들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불안한 동거’가 벌어진 것이다. 박지원 국민회의 대변인은 당시 “국가와 국민이 부여해준 의원직이므로 정기국회까지 의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다소 군색한 입장을 밝히는 등 국민의당은 사실상 이러한 상황을 방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꼽히는 박지원 의원은 당시 비례대표 신분이었지만, 민주당을 탈당해 의원직을 버리고 국민회의의 대변인을 맡았다.)

<동아일보>1995년 9월12일치와 9월27일치를 보면 이들의 ‘불안한 동거’가 빚어낸 ‘블랙코미디’가 곳곳에 드러나 있다.

◎<동아일보>1995년 9월12일치 ‘민주당 적과의 동거’ 중

민주당은 이들이 ‘천덕꾸러기’이긴 하지만, 소속 상임위를 종전대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중략) 민주당은 본회의장 의석배치에서 이들을 차별했다. 이들의 좌석을 민주당 의석 맨 앞줄부터 차례로 배정한 것. 민주당 관계자의 표현에 따르면 ‘순수민주당’30명 의원이 ‘사이비 민주당 의원 12명을 뒤에서 감시하는 모양새가 됐다.

◎<동아일보>1995년 9월27일치 ‘국민회의 의원 행세 민주 전국국 당적시비’

새정치국민회의 참여하면서도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전국구 의원들의 ‘이중당적’문제가 국정감사 현장에서 또다시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가 국정감사장에서 자신의 법률상 당적에는 아랑곳 없이 국민회의 소속임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중략) 민주당 이규택 대변인은 “그들의 낮짝 두껍기가 소 가죽 같다”면서…(중략) 이들중 일부는 질의할 때 아예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또 어떤 의원은 질의에 앞서 자신의 이름만 소개하고 소속 당을 얼버무리기도 하고…(중략) 민자·민주당의 비난에 대해 국민회의의 박지원 대변인(현 국민의당 의원·민주평화당 참여)은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이런 식으로 비난해선 안 된다”고 군색하게 반박했다.

민주당 소속 국민회의 의원들이 총선을 한 달여 앞둔 1996년 3월 전후 무더기 탈당한 뒤에도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됐다. 비례대표는 해당 의원이 탈당할 경우 당에서 정한 비례대표 명단 순번에 따라 하위 순번의 후보자가 의원직을 승계한다. 즉 이들의 탈당에 따라 임기가 한달 남짓한 ‘초단기 의원’도 무더기로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한겨레>1995년 7월27일치 4면.

■ 김현아 의원과 이미경 의원의 ‘평행이론’

2017년 6월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왼쪽 둘째)이 다른 소속 의원들과 달리 노트북에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글귀를 붙이지 않은 채 청문회에 임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주현·장정숙·이상돈 3명의 의원의 거취문제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이가 있다. 바로 자유한국당의 김현아 의원이다.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바른정당에 합류하려 했지만, 결국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한국당을 떠나지 못했다. 이후 그는 “나를 출당시켜 달라”며 당을 향한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바른정당 자문위원을 맡고 공식 행사에 사회를 보는 등 ‘몸은 자유한국당, 마음은 바른정당’ 행보를 이어가며 자유한국당을 ‘열 받게 할’ 일만 골라서 했다. 자유한국당의 당론을 거슬러 추가경정예산안,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에 찬성표를 던지는 나 홀로 의정활동을 이어가는 그에 대해 “바른정당으로 보내줘라”는 시각과 “당론을 어기면서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에 새누리당은 지난해 1월 그를 제명하는 대신, 당원권 정지 3년이라는 징계를 내렸지만 조만간 징계를 해제할 예정이다. 김현아 의원은 6일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대정부질문에 나서기도 했다.

1999년9월28일 국회 본회의 동티모르 파병동의안 표결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퇴장한 가운데 이미경 의원이 야당 의원으로 유일하게 남아 파병안에 찬성하고 있다. <MBC>뉴스 갈무리

김현아 의원과 경우는 다르지만 이전에도 이러한 ‘웃픈’ 상황의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5선 중진 의원 출신인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이다. 그는 1996년 ‘꼬마민주당’으로 정치에 입문했는데, 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고 이후 한나라당이 되는 바람에 졸지에 한나라당 의원이 됐다. 결국 그는 1999년 9월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동티모르 파병에 대해 당론과 반대로 찬성표를 던져 당에서 제명 조치를 받으며 ‘한나라당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의원직을 유지한 채 민주당에 입당했고, 16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는 2003년 10월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해 비례대표직을 버리기도 했다. 2003년 11월7일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 이력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정치 자체가 불가측성이 크다. 소신을 지키려고 했던 나도 당적을 2번이나 바꿨다. (웃음) 96년 꼬마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는데, 얼마 안 돼 지도부가 한나라당과 합당을 선언했다. 솔직히 한나라당 옷은 몸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계속 부딪쳤고, 결국 동티모르 파병안 찬성 건으로 당에서 쫓겨났다.”

“열린우리당은 이 시대의 정치적 과제인 부패정치 청산과 지역감정 타파 등 정치개혁의 시발점이다. 새 역사를 만든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 일부에서는 노무현당이라고 말하지만, 대통령 만드는데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도록 보좌하는 것이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정당이 먼저냐, 의원 소신이 먼저냐

정치권과 헌법학계 모두 비례대표 의원들이 정당의 힘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에 따라 당적을 바꾸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한다. 자신의 뜻에 따라 마음껏 소속정당을 바꿀 수 있는 지역구 의원과 비교해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의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는 시각이다. 또 의원직 상실 역시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다.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가 펴내는 <국제정치연구>에 실린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의 문제점 : 비례대표국회의원과 관련한 문제점’(유명철. 2014. 국제정치연구, 17(1), 49-63.)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역구국회의원은 자유위임 원칙에 따라 당적변경시 의원직이 상실되지 않지만 비례대표국회의원에게만 정당기속을 우선시켜 당적변경시 의원직을 상실케 하는 것은 자유위임 원칙에 합치되지 않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

“비례대표국회의원의 당적변경시 의원직 상실 규정은 비례 원칙의 목적의 정당성 측면에서 탈당 자체를 봉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탈당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가 있으며 방법의 적절성의 측면에서 비례대표국회의원만 규제한다고 하여 철새정치인을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규제하는 방법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피해의 최소성의 측면에서 의원직을 박탈하는 것보다 더 경미한 수단이 있다.“

실제로 박주현·장정숙·이상돈 의원의 경우 애초 법이 규제하려고 했던 ‘철새’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합당에 억지로 끌려가는 모양새다.

이에 국민의당 통합반대파로 민평당에 참여한 김광수 의원은 지난 25일 이른바 ‘비례대표 소신보호법’(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법안에는 박주선 국회부의장 등 12명이 이름을 올렸다. 법안은 ‘비례대표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이 소속정당이 다른 정당과 합당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그 합당된 정당의 당적을 이탈·변경하는 경우’를 의원직 상실 사유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다음과 같이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현행법은 비례대표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이 소속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는 경우에는 퇴직되도록 규정하고 있음.

그런데 비례대표의원이 합당된 정당과 정치이념 및 노선이 달라 합당 정당에 남지 않고 탈당하는 경우에 퇴직되도록 하는 것은 비례대표의원으로 하여금 정치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에의 가입을 강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음. 또한, 지역구의원이 합당 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탈당하는 경우에는 퇴직되지 아니하는 것과 비교하여 형평성의 문제도 발생하게 됨.

이에 비례대표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당선인을 포함한다)이 소속정당이 다른 정당과 합당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그 합당된 정당의 당적을 이탈·변경하는 경우에는 퇴직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임(안 제192조제3항 및 제4항).

바른정당도 지난해 2월 비슷한 내용의 ‘김현아 살리기’법을 발의했다. (당시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황영철 의원은 현재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국민의당 통합반대파 비례의원들의 거취를 ‘정치적 해법’으로 풀라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자유한국당 이장우 의원은 지난해 7월 “최근 당적 변경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의원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출당 목적의 해당 행위를 고의로 자행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소속정당이 제명할 경우에도 비례대표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의 당선을 무효로 하거나 퇴직하도록 함으로써, 정당의 기속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며 ‘김현아 의원을 죽이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 같은당 비례대표 김현아 의원을 겨냥한 바른정당의 ‘구제법’과 자유한국당의 ‘제명법’에 동시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앞으로도 잦은 정당과 합당이 반복될 경우 공직선거법 192조4항에 대한 정치권의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통합 파트너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안철수 대표를 향해 ‘정치적 해법’을 강조한 것처럼 과거 비례대표 거취 문제를 두고 정치적으로 해결한 사례도 있다. 바로 국민의당의 사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 참여하고 지지 의사를 밝힌 전현숙 경남도의원은 민주당 경남도당이 제명 조처해 의원직을 유지한 채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통합반대파 의원들은 이 사례를 언급하며 “비례대표 의원들을 인질로 삼지 말라”고 안철수 대표를 비판한다. 안철수 대표의 비서실장인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마저 지난 1월30일 <티비에스>(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의원들도 가만히 있다가 의원이 된 것이 아니다. 당원과 국민이 납득할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나라면) 출당 시킬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비례대표란?

비례대표제는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1963년 6대 총선부터 도입됐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정수를 291명을 175명으로 줄이고, 전국구를 도입해 44명을 뽑았다. 지금과 달리 1인1표 선거를 통해 지역구 투표율을 정당별 비중으로 나눠 전국구 의석을 배분했다. 6대 총선 결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민주공화당은 131개 선거구에서 88명이 뽑히고, 전국구 의석 22곳을 얻어 모두 110명의 의원이 당선됐다. 결과적으로 입법부를 약화시키고,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려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도가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현행 비례대표 제도는 지역구 당선자 1명만을 뽑는 소선구제에서 발생하는 ‘사표’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여성·노동·장애 등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경제·과학·환경 등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국회에 불어넣자는 뜻도 있다. 현재 정의당 등 진보정당은 사표를 줄이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자는 취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요구하며 비례대표 제도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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