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에 뛰어들어 이웃 구한 '택배기사'의 어느 하루

고성민 기자 2018. 2.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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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택배총각 신재하씨의 善行 노인들 힘들다며 집안까지 택배배달 불붙은 빈집 들어가 잠든 60대 구해 이웃들 “요즘사람 같지 않은 젊은이”

오후 2시. 오늘도 어김없이 천호대교 아래 골목길에 들어섰다. 폭 3m 남짓한 이곳 양쪽에는 단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택배 트럭은 골목 입구에 세웠다. 여기는 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산다. 그래서 늘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는 것 같다. 집집마다 열쇠 감춰둔 곳을 알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 집을 비우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그냥 문 열고 들어와서 집 안에 놓고 가라”고 한다.

골목 끝 김씨 이모 집 앞에 가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문 안쪽에서 연기도 보였다. “이모~이모~”하고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여느 때처럼 숨겨둔 열쇠를 찾아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에 좌악 깔려 있는 돗자리가 활활 불타고 있었다. 김씨 이모는 올겨울은 유난히 추워 수도관이 자주 언다며 얼마 전 2평쯤 되는 시멘트 마당을 돗자리와 신문으로 겹겹이 덮었다.

119에 신고부터 했다. 불은 집 안으로 옮겨붙을 기세였다. 연탄재를 발로 부숴서 뿌리고, 빨랫줄에 널려 있던 행주로 집 안쪽으로 가는 불길을 막았다. 이웃 이모들이 세숫대야에 물을 떠서 모였다. 김씨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불이 났다고 알렸다. 잠시 뒤 집 안에서 김씨 이모 남편인 장씨 아저씨가 뛰쳐나왔다. “아이구야. 나 감기약 먹고 완전 쓰러졌어. 죽을 뻔했네” 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침 소방차가 도착했고, 불은 금방 꺼졌다.

몸에선 탄 냄새가 진동했고, 점퍼 소매는 불에 타서 구멍이 나 있었다.

천호동 화재 현장에서 주민을 구한 신재하씨. /택배회사 제공

지난 5일 택배기사 신재하(37)씨는 이런 일을 겪었다. 평소 어르신들을 위해 집 안까지 택배 배달해주던 그였기에 이날도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불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신씨와 이웃들이 돕지 않았으면 인명피해가 날 뻔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불이 보일러 기름통 바로 옆에서 타오르고 있어 옮겨붙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며 “빨리 끄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에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참 잘해주시고 친한 분들인데 만약 무슨 사고라도 당했더라면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말 다행이다”라며 김씨 이모 부부부터 걱정했다.

집 주인 장모(67)씨는 “밖에서 불이 나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줄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며 “외출한 아내 전화를 받고 깼는데 신씨가 불을 끄려고 왔다갔다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날 외출 중이었던 장씨 부인 김모(61)씨는 “신씨는 불이 난 날 저녁에도 ‘이모님 괜찮으세요, 놀라셨죠?’하며 안부 전화를 했다”며 “집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이 동네 이웃들은 신씨에 대해 묻자 “요즘 사람들과 달리 평소 배달을 다닐 때도 늘 웃으며 인사하는 친절한 젊은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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