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로 인사하고, 작전판도 직접 챙기는 단일팀 박철호 북한 감독

김원 2018. 2. 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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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단일팀 훈련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박철호 단일팀 코치(북한 감독). [강릉=연합뉴스]
6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훈련이 진행된 관동하키센터.

오전 훈련을 마친 선수들 앞에 단일팀 코치진이 나란히 섰다. 세라 머리(30·캐나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전하고선 옆에 서 있던 박철호 코치(북한 감독)에게도 한마디 해달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박 코치는 손사래부터 쳤다. 감독의 지시 사항에 크게 덧붙일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 우려를 안고 시작한 남북 단일팀의 '한 팀 두 감독 체제'가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훈련을 지휘하는 박철호 단일팀 코치. [강릉=연합뉴스]
남북 단일팀에는 한국 선수 23명과 북한 선수 12명, 총 35명이 있다. 머리 감독은 지난달 28일부터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단일팀 선수들을 A조와 B조로 나눠 합동 훈련을 진행했다. 효율적 훈련을 위해 주전과 비주전 선수를 나눴다. 머리 감독은 A·B조를 모두 챙기며 최적의 조합을 찾는데 열중했다.

이날 오전에 진행된 22명의 A조 훈련 때는 코치진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북한 선수 7명과 한국 선수 4명 등 11명이 참가한 오후 B조 훈련에선 머리 감독 대신 박철호 코치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이규선 비디오 분석관이 이를 보조했다. 머리 감독이 5일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첫 경기(10일 스위스)를 위해 경기 출전이 유력한 A조 선수들을 챙기고, 박 코치가 B조를 지휘하는 식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머리 감독이 그만큼 박철호 북한 감독을 믿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오후 훈련에서 선수들은 패스, 슈팅 등 기본기를 다졌고, 2대 2 미니게임 등을 진행했다. 한국 선수들도 박 코치의 지휘를 잘 따랐다. 오전에 잘 나서지 않던 박 코치는 오후 훈련 때 적극적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슈팅 훈련에서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하키 스틱으로 빙판을 치며 독려했다. 흩어진 퍽을 직접 정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선수들이 훈련 내용을 제대로 숙지 못해 우왕좌왕하자 "방어수, 공격수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는 거예요"라며 존댓말로 지시했다. 훈련이 끝났을 땐 "수고했습니다"라며 90도로 인사했다. 라커룸으로 이동할 땐 작전판을 직접 챙겼다. 한 북한 선수가 달려와 작전판을 자신이 들겠다고 하자 몇 차례 사양 끝에 못 이긴 척 내줬다.

지난 4일 미디어데이에서 각오 밝히는 박철호 단일팀 코치.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4일 오후 인천 선학링크에서 스웨덴과 친선 평가전을 벌였다. 세라 머리 총감독과 박철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인천=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일 남북 단일팀 스웨덴과의 평가전이 끝나고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 박철호 코치는 "나는 북한 빙상호케이 감독 박철호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 25일 북한 선수단 15명 이끌고 온 박 코치는 단일팀에서 머리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 역할을 한다.

박 코치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2009∼10년 북한 남자 청소년대표(U-20) 감독을 지냈고, 2012∼16년에는 남자 성인팀을 맡았다. 지난해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는 북한아이스하키협회 사무처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여자팀을 맡은 건 처음이다. 줄곧 남자 대표팀을 맡아 여자 선수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단일팀이 구성되자 머리 감독이 빠르게 주도권 잡고 계획한 대로 팀을 이끌고 있다. 박 코치와의 역할도 확실히 나눴다. 팀 전반 부분은 머리 감독이, 북한 선수 관리는 박 코치가 맡는다. 지난 5일 단일팀 첫 훈련에서 머리 감독은 "북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박 코치가 직접 혼내주라"고도 했다.

스마트폰 보는 남북 선수들 [강릉=연합뉴스]
지휘 체계가 안정되면서 남북 선수들도 빠르게 융화되고 있다. 선수촌 관계자에 따르면 선수촌 식당에서 남북 선수들은 섞여 앉아 웃고 떠들며 밥을 먹는다. 훈련 때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호흡을 맞춘다. 머리 감독은 "용어가 서로 달라 지시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훈련 중 한국 선수들이 북한 용어를 써가며 북한 선수들에게 설명해주고, 북한 선수들도 한국식 용어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강릉=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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