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로 인사하고, 작전판도 직접 챙기는 단일팀 박철호 북한 감독
오전 훈련을 마친 선수들 앞에 단일팀 코치진이 나란히 섰다. 세라 머리(30·캐나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전하고선 옆에 서 있던 박철호 코치(북한 감독)에게도 한마디 해달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박 코치는 손사래부터 쳤다. 감독의 지시 사항에 크게 덧붙일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 우려를 안고 시작한 남북 단일팀의 '한 팀 두 감독 체제'가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이날 오전에 진행된 22명의 A조 훈련 때는 코치진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북한 선수 7명과 한국 선수 4명 등 11명이 참가한 오후 B조 훈련에선 머리 감독 대신 박철호 코치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이규선 비디오 분석관이 이를 보조했다. 머리 감독이 5일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첫 경기(10일 스위스)를 위해 경기 출전이 유력한 A조 선수들을 챙기고, 박 코치가 B조를 지휘하는 식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머리 감독이 그만큼 박철호 북한 감독을 믿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오후 훈련에서 선수들은 패스, 슈팅 등 기본기를 다졌고, 2대 2 미니게임 등을 진행했다. 한국 선수들도 박 코치의 지휘를 잘 따랐다. 오전에 잘 나서지 않던 박 코치는 오후 훈련 때 적극적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슈팅 훈련에서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하키 스틱으로 빙판을 치며 독려했다. 흩어진 퍽을 직접 정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선수들이 훈련 내용을 제대로 숙지 못해 우왕좌왕하자 "방어수, 공격수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는 거예요"라며 존댓말로 지시했다. 훈련이 끝났을 땐 "수고했습니다"라며 90도로 인사했다. 라커룸으로 이동할 땐 작전판을 직접 챙겼다. 한 북한 선수가 달려와 작전판을 자신이 들겠다고 하자 몇 차례 사양 끝에 못 이긴 척 내줬다.
박 코치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2009∼10년 북한 남자 청소년대표(U-20) 감독을 지냈고, 2012∼16년에는 남자 성인팀을 맡았다. 지난해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는 북한아이스하키협회 사무처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여자팀을 맡은 건 처음이다. 줄곧 남자 대표팀을 맡아 여자 선수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단일팀이 구성되자 머리 감독이 빠르게 주도권 잡고 계획한 대로 팀을 이끌고 있다. 박 코치와의 역할도 확실히 나눴다. 팀 전반 부분은 머리 감독이, 북한 선수 관리는 박 코치가 맡는다. 지난 5일 단일팀 첫 훈련에서 머리 감독은 "북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박 코치가 직접 혼내주라"고도 했다.
강릉=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