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관수술 하겠다는데 왜 막는 건가요?

최황 2018. 2. 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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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생명 윤리' 운운하며 개인의 결정권을 제한하는 사회, 전 '거부'합니다

[오마이뉴스 글:최황, 편집:김예지]

 작년 봄, 완벽한 피임을 하고 싶었고,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을 전면에서 비웃고 싶었고, 마지막으로는 여성들의 낙태 비범죄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관수술을 택했다.
ⓒ pixabay
작년 봄, 완벽한 피임을 하고 싶었고,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을 전면에서 비웃고 싶었고, 마지막으로는 여성들의 낙태 비범죄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게 바로 정관수술이었다. 단돈 30만 원 정도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니, 이만큼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운동이 어디에 있겠나.

하지만 정관수술을 위해 비뇨기과 의사 앞에 앉은 나는 "이게 무슨 소리요?"라고 물어야만 했다. 비뇨기과 의사들이 '미혼-무자녀 남성'에게 이 간단한 수술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애초 '정관수술은 90%의 확률로 복구 가능한 수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반문하니 의사는 "생명 윤리적 측면도 있다"고 대답했다. 인구가 폭발해 문제가 되던 때, 박정희는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 기간 중 잔여기간을 면제해주고, 신축 아파트 우선 분양권도 주지 않았는가(관련 기사). 생명 윤리는 인구에 비례해 그 가치가 등락하는 종목이란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니 의사 양반은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게 해달라."

나는 당시 만 서른셋이었다.

두 번의 퇴짜, 한 번의 거짓말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당시 만 서른 셋이었다.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 pixabay
나와 꽤 길게 논쟁을 펼치던 의사는 "어느 병원에서도 해주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 병원으로 향했다. 무작위로 고른 비뇨기과에서도 진료실에 앉자마자 물어보는 것이 결혼 여부와 자녀의 수였고, 사실대로 미혼이며 자녀가 없다고 말하면 수술을 거부했다. 결국, 나는 세 번째 병원에서 "결혼했고 쌍둥이 자녀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 후에 수술대 위에 누울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문의하자, 한 관계자는 '본인의 말이 공식적 입장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수화기 너머로 "생명 윤리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사뭇 진지하게 전했다. 낙태 논쟁에서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전개하던 케케묵은 논리를 남성의 정자에게도 들이민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은가? 내 몸에 대한 나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 당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쾌했다.

불법으로 규정된 수술도 아니고, 이제는 포경수술도 하지 않는 시대에, 비뇨기과가 위기라고 비뇨기과 의사들이 스스로 말하는 시대에 의료보험 혜택도 적용되지 않는 정관수술을 자발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딘가 수상쩍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나의 고환을 관리하는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이제 낙태 비범죄화를 외치는 여성들의 입장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개인의 신체와 임신 안 할 자유를 쥐락펴락 하는 것의 부당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이 운동은 '불법으로 못 박은 낙태가 과연 무엇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부터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경유한다. 또 개인이라는 존재의 존엄한 자유에 관한 물음까지, 꽤 많은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다.

그놈의 '정상가족', 내 몸은 국가 것이 아니다

 KBS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한 장면. 극중 서지태(이태성 분)는 이수아(박주희 분)가 낙태 수술을 받으려는 병원에 찾아와 "신고한다, 그거 불법인 거 알지"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 KBS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는 한국 사회의 강경한 태도에는 분명하게도 '이성애 중심적' 가치관과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 이 태도를 기준으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미혼 가정에 대한 선입견을 유통하기도 한다. 이런 국가의 가족관은 '굉장히 많은' 소수자들을 배제하면서 출산장려 정책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구조적 중추와 맞서는 여성들의 이 운동은 성소수자나 노동자들의 외침과 이어질 수 있다. 낙태 비범죄화 요구는 가족의 형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성소수자들의 주장이나 여성 임금 인상과 유리천장을 없애자는 여성 노동자들의 주장과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낙태 비범죄화 운동은 보수적인 관점의 폐해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가족의 형태를 변화시키자고 사회에 요구한다. 이 중요한 운동에 대부분의 남성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라서일까?

그런 의미에서 정관수술은 여성들의 낙태 비범죄화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임신 가능성을 합법적으로 없애버리면서도 개인의 몸에 관여하는 국가와 사회의 태도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포궁은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여성들의 그 당연한 목소리에 "내 고환도 국가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여성의 몸도 국가의 것이 아니다"라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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