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윌리엄 부그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미술사학자 2018. 2. 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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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예술계는 그 어느때 보다 활발하게 새로운 작가가 등장했고,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각종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었기 때문에 ‘회화의 시대’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을 담당하는 오르세가 이 시기 발표된 다양한 작품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연대순으로 걸어놓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걸려있는 그림들은 대중들의 선호도에 따라 창고에 들어가기도 하고 다시 꺼내져 나오기도 하는, 제한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다투는 중입니다.

그런 변화의 흐름은 오르세가 1986년 처음으로 개관한 이래 이미 사랑받는 작품 말고 잊혀진 그림들 중에서 몇 차례의 특별전을 통해 관람객들과 대면하게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기도 하죠.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된 그림 중에는 관학파, 아카데미 학파라 불리는 것들이 있는데, 당시 프랑스 공식 교육 시스템이 길러낸 예술가들이 이들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그림은 그 아카데미 예술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오르세와 미술사가들의 꾸준한 노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우리앞에 돌아오지 못했을 작품입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작품인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 문학의 걸작, 단테의 ‘신곡’ 장면을 그렸습니다.

윌리엄 부그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1850년 281×225 ㎝)

여러 사람들이 그림에 보이네요.

특히 앞쪽의 두 사람, 나체로 싸우고 있는, 사실은 일방적으로 당하는데, 흔한 싸움이 아니라 목 부분을 물어 뜯고 있는 장면이 중심이라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뒤에는 옷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이 서 있는데, 이상하게도 딱히 전면의 두 사람간 다툼을 보는 것은 아니군요. 그 뒤쪽으로도 다른 군상들이 보입니다.

이곳은 지옥입니다. 붉은 배경의 앞쪽에 박쥐의 날개를 단 악마가 보이고, 인간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들도 발견됩니다. 옷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그림의 장면이 약간 공포스러운 것을 뺀다면 완벽한 기술을 갖춘 ‘잘 그린’ 그림인 것이 틀림없는데, 이 그림은 20 세기 내내 환영받지 못했었습니다. 만약 이 그림이 18세기에 그려진 것이라면, 받아들여졌겠지만, 화가 부그로가 인상파 작가들과 대립하는 입장이었던 보수 관학파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까지도 경원시 된 것이죠.

부그로라는 화가.

빨리 성공하고 싶은 젊은 화가들의 정통적인 방법은 국립 미술학교에서 유명한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국가 주최 경연에 해당하는 ‘정기 살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미술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관 주도 콩쿨에서 주목을 받는다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단순히 상 뿐 아니라 이 살롱전 수상자에게는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살롱을 목표로 그림공부를 했던 부그로가 이 그림으로 1 등을 할 때 까지 과정은 지난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루에 15 시간씩 그림 앞에서 머물렀다는 그의 끈기와 놀라운 데생 능력을 바탕으로 전통에 부합하는 듯 하면서도 새로운 주제를 찾아 냅니다. 바로 선배 들라크루와가 성공했던 루브르 한쪽 벽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는 단테의 지옥의 이미지.

항상 나오는 그리스 로마 주제가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를 영리하게 끌고온 부그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의 유행들을 포함시켜 그림을 현대적으로 보이도록 합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앞에서 펼쳐진 이 그림의 장면은 유명한 위조범 잔니 스키키에게 목을 물리는 이교도 연금술사 카포치오와의 절망적인 싸움이죠. 두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히 서로 뜯기라는 형벌을 받았다고 단테는 적었습니다.

그 에피소드를 표현하면서 주인공 두 명의 자세는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민자 출신이라 영국 시인들의 작품들도 해박했던 부그로답게 뒷 배경의 하늘 색감와 군중 장면은 윌리엄 블레이크 같은 사람들의 것을 도용했습니다. 또한 그 시대 광범위하게 유행하던 악마주의 영향도 보여주는 박쥐 날개가 달려있는 악마도 팔짱을 끼고 그려져있죠.

르네상스 문학이 자주 다뤄지지 않기에 비교적 신선한 주제다. 파격적인 연출은 언제나 먹힌다. 기술적으로 완벽하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색감과 분위기를 더한다. 이 결과물에 예술이 재능은 물론 노력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믿었던 보수적인 심사위원들은 이 그림에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부그로는 여전히 로마 상의 수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위원들의 눈에도 만족할 수 있는 세밀한 부분마저 철저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입고 있는 옷의 접힌 부분은 아카데미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요소이며, 빛과 어두움의 사용 역시 교본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는 이런 연구로 수상하고 존경받는 예술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많이 파격적이지는 않은 새로움으로 이미 했던 성공의 길을 다듬는다- 라는 것은 현대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면 과히 멋있고 창조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부그로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19 세기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9세기 후반 주류 미술계는 여전히 그랬었습니다. 그들의 세계는 이렇게 전통을 지켜내겠다면서 과거의 모습을 재해석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반대로 인상파 등의 모더니즘은 거칠고 에너지 넘치게 이 벽에 부딪히며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구였고 모더니즘 예술이 어떻게 발전해갔는지 말이죠. 그렇게 승패의 싸움 단선적인 역사관을 유지하던 미술사학자들이 이런 그림을 창고에서 다시 꺼내고 인상파 작품들과 같은 공간에서 전시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시대의 한계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을 살림으로써, 그 다양성을 한꺼번에 지켜보는 것이 시대와 예술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의 낯선 느낌과 인상파 작품들과의 대비는 오히려 창조력 넘치는 19 세기의 역동성을 보여준다고 믿으면서 말이죠.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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