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자교회 '가라지' 교인

CBS노컷뉴스 조중의 논설위원 입력 2018. 2. 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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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연단에 올라 회개하고 있는 안태근 전 검사 (사진=유튜브 캡처/자료사진)
유난히 무덥던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강당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는 한국의 주교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연설 내용의 절반이 부자교회를 향한 비판이었다. 그는 한국 주교들 앞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제거하려는 유혹, 부유한 이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로 만들려는 유혹, 모든 것을 잘하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계급의 교회가 되도록 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라"며 주의를 줬다. 그런 교회가 되도록 하려는 유혹이야말로 악마가 심으려는 '가라지'라고 단정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내부고발로 드러난 가해자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이었다. 그는 공교롭게도 그 사이 교회공동체 안에 편입돼 있었다. 그로 인해 크리스천 안태근 개인의 신앙은 물론 공교회의 성스러움과 존엄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더욱이 그가 교회에서 간증한 동영상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성추행범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 받았다며 눈물을 흘리더라'는 소문이 급속히 확산됐다. 세인들은 그가 화려한 성전 단상에 서서 많은 교인들 앞에 간증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는 서울 강남 양재동에 있는 O교회 교인이다. 이 교회는 번영신학의 대표적인 교회지만 개신교 내부에서 비교적 모범적인 신앙공동체로 인정받고 있다. 모범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담임목사의 부자세습이라든지 목사가 여성 신도를 성추행했다든지, 교회 돈을 횡령한 다른 대형교회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개신교 가운데 손꼽히는 부자교회다. 부자교회라고 다 나쁘고 세속적인 것은 아닐 테지만 이번 안태근 집사의 간증 하나로 부자교회와 부자교인의 신앙 수준이 들통 나고 말았다. 교회는 안수를 받는 여럿 가운데 그를 대표로 내세워 간증하게 함으로써 교회 내부에서조차 세속적 잣대를 적용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사람들은 죄를 용서 받으면 의인이 되는 줄로 알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잘못을 뉘우쳐 지은 죄는 용서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이다. 기독교적 용어로는 '용서받은 죄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먼저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따라야 맞다. 그것이 올바른 크리스천의 믿음이고 양심이자 신앙이다. 한때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 <밀양>의 유괴범이 그렇고 영화 <도가니>의 장로 원장이 그렇다. 그들은 자기가 저지른 살인과 강간이라는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주었다며 당사자들에게는 용서를 빌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교황 프란치스코가 지적했던 교회 내 '가라지'의 전형이다.

죄를 용서 받았다고 믿는 크리스천들은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이자 기독교인인 프랑스와즈 돌토(F·Dolto)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크리스천인 우리 속에 죄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궤변을 늘어놓기 일쑤이며, 점잔 빼려고 합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신뢰하지 않으며, 소심하고, 오만하며, 너무 신중해서 곤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또한 거짓말쟁이이고, 위선적이며, 야심에 불타오르기도 합니다."

회개함으로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크리스천 중에 돌토가 지적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위선적이며 야심에 불타오르는 자가 있다면 참된 회개를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하거나, 최면에 걸렸거나, 착각하는 불쌍한 신앙인일 확률이 높다.

번영했지만 너무나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으로 타락한 한국교회는 그러다보니, 부정한 방법과 노동자들을 착취해 부자가 된 기업가나 권모술수로 권력을 거머쥔 정치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상류사회 부유층의 도피처가 됐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의 소굴이라고 수군대는데도 정작 자신들만의 온실에 갇혀 모른다. 교회 밖 세상에 나가서는 파렴치하고 공의롭지 못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교회공동체를 자신들의 비참해진 영혼을 정결케 해주는 온실로 만들어 버렸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려 헛된 것이 된다면, 우리는 정말 불행할 것"이라면서 "온갖 형태의 유혹들을 물리치라"고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충고가 안태근의 신앙 간증과 그 간증을 하게 한 교회공동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다. 500년 전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비난받았던 가톨릭이 이제 자신들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고, 거꾸로 세속화되고 권력화 된 한국 개신교의 부자교회와 가라지 교인들을 향해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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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조중의 논설위원] jij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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