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아프면 해고하라고 강요하는 장기요양제도?

오준엽 입력 2018. 2. 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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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관리 될 수 없다는 요양원 vs 기관이 노력해야한다는 건보공단
경기도 고양시의 한 요양원에서 함께 근무하던 요양보호사 2명이 이틀간격으로 사망했다. 유사한 시기에 ‘B형 독감’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올해 60세가 된 A씨는 23일 출근을 앞두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입원 하루 만인 24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폐포 속 모세혈관에서 출혈이 생기는 ‘미만성 폐포출혈’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
A씨와 함께 일하며 형·동생 하던 B씨(59)도 A씨가 사망한 24일 같은 병원에 입원했지만 25일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26일 새벽 운명을 달리했다. 역시 폐에 문제가 생긴 ‘바이러스 성 폐렴’이 사인이었다. 
유가족들은 A씨와 B씨가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숨진 것을 두고 요양원 내 노인 독감환자에 의한 감염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요양원은 요양보호사 사망 후 노인 2명에게서도 독감증세가 나타나 타 병원으로 옮겼다며 A·B씨에 의한 환자감염 가능성을 시사하며 의혹을 부정했다.
현재 이 사건을 두고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감염경로와 추가 피해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독감에 의한 폐렴 등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은 추가로 확인되지 않았다.
사진=쿠키뉴스DB
◇ 감염 취약한 요양원, “직원도 안전하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감염에 의한 사건사고가 요양시설 내에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을 비롯해 현장 종사자들은 요양원 등의 열악한 감염관리 실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앞선 사례처럼 종사자조차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요양시설 관계자는 감염 및 환자안전 문제를 “요양시설들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표현하며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A씨나 B씨처럼 몸에 이상이 생겨도 쉬거나 근무를 뺄 수 없는 상황은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 규정에 따라 요양보호사 등 종사자들은 병가조차 7일 이상 낼 수 없다”며 “비인권적 규정이 종사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노동의 질과 서비스질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방법 등에 관한 고시’ 세부사항에는 직원의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의료기관에 입원해야하는 경우 유급병가를 연간 7일 이내로 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건보공단 담당자는 “유급병가를 일주일까지 줄 수 있다는 규정일 뿐 근로기준법에 따라 무급휴가를 지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무인력 배치기준이 정해져있고 인력수급이 어려워 현장에서는 사실상 7일 이상의 병가를 줄 수 없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인력수급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지만 추가 인력에 대한 가산을 지급하고 있다”며 요양시설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대해 시설 관계자들은 현실적이지 않은 탁상공론이라고 비난한다. 대도시나 수도권일 경우 인력수급이 조금은 원활하지만 대부분 최소 인력배치기준을 채우기도 급급한 실정인데다 그마저도 60세 이상인 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규정을 따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연차와 법정 휴가만으로는 자신들의 건강과 생활문제를 해결하기조차 버겁고, 회복조차 젊은이들보다 더뎌 업무로의 복귀가 더욱 오래 걸린다. 더구나 1주일 이상의 장기병가를 가게 되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시간제근로자와 같은 추가인력이 필요하지만 나서는 이가 없다.
여기에 일련의 문제를 방지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평소 배치기준 이상의 추가인력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장기요양보험에서 제공하는 추가인력가산이 턱없이 부족해 1명을 온전히 추가고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당연하지만 감염을 신경쓰고 환자안전을 생각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한 시설 관계자는 “전체 근무인원의 비율과 이들에게 소요되는 인건비 비율 등을 모두 정해놓고 있어 시설들이 인력을 운용하는데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감염관리나 환자안전은커녕 병가 등으로 자리가 비면 다른 인력으로 채우기 바쁘고, 기존 인력이 돌아오면 추가 인력은 해고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결국 젊은 사람보다 몸이 안 좋은 고령의 종사자들이 입원을 하게 되면 해고를 통보해야하는 지경”이라며 “근로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고, 현장에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제도가 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옭죄는 수갑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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