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마크] 남경필 "내가 철새면 노무현·김대중도 철새"

허진 2018. 2. 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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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포퓰리즘 막아야..동탁 토벌하는 조조 될 것"
마약 아들 얘기엔 "아들이나 나나 상처받은 영혼 아니냐"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난달 29일 경기도청 집무실 벽에 설치된 연리지 배경 앞에서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손에 경기도에 있는 중소기업이 만든 시계 겸 긴급구호장비 세트를 들고 있다. 최승식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50분 도정점검회의를 마치고 집무실에 들어온 남경필 경기지사는 기자 앞에서 대뜸 만화책을 꺼내들었다. 『창천항로(蒼天航路)』라는 만화다. 남 지사는 “‘삼국지’는 원래 유비가 중심인데, 이 만화는 조조가 주인공이다. 조조 중심으로 삼국지를 재해석한 건데, 절판돼서 중고로 사서 읽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읽는 거냐”는 질문에 그는 “자유한국당에 복당하기 직전에 동탁을 토벌하는 조조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바른정당을 탈당(1월8일)하고 한국당에 복당하기 직전인 지난달 13일 남 지사는 페이스북에 “세상을 어지럽히는 동탁을 토벌할 수 있다면 기꺼이 조조가 되는 길을 택하겠다”고 적었다. 조조가 되겠다고 했으니 조조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얘기다. ‘하늘을 뚫고 길을 연다’는 의미의 창천항로(蒼天航路)란 제목도 그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무너진 보수 진영의 새 리더를 꿈꾸는 걸까.
남경필 경기지가 지난달 29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조조 중심으로 삼국지 이야기를 풀어낸 만화 『창천항로(蒼天航路)』를 들고 있다. 허진 기자
그의 한국당행에 대해 이재명 성남시장은 “유불리를 가려 여러 번 진영을 바꾸었고, 의탁했던 동탁을 제거한 건 여포였으니, 남 지사는 조조보다 여포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은 “표를 쫒아 명분을 버린 철새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에게 “보수를 개혁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간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한번도 진영을 옮겨 본 적이 없다. 보수를 개혁하려고 바른정당을 창당했지만 (국민의당과 통합을 추진하는) 지금 상황은 결국 바른정당이 문을 닫는 것이다. 통합개혁신당은 정체성이 모호하다. 그래서 합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꼬마 민주당’을 만들었다가 나중에는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을 여러 번 만들었다”며 “내가 철새면 노무현·김대중도 철새냐”고 반문했다. 단순히 당적(黨籍)을 바꾸는 건 문제가 아니고, 계속해 보수의 철학과 진영을 지킨 게 더 의미있다는 논리였다.

Q : 탈당 뒤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에게 연락이 왔나. A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는 연락이 온 적이 있다.

Q : 유 대표는 연락을 안 했다는 거냐. A : 하하. 유 대표에게 ‘강을 건너지 마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큰 강이 흐르고 있다. 그 강을 건너면 안 된다. 기자와 문답이 오가던 오전 11시 10분 집무실에 경기도 관내의 어린이집 원장 대표 3명이 찾아왔다. 남 지사는 “여기 중앙일보 기자가 있는데 면담하는 걸 봐도 되느냐”고 이들에게 물었고, “괜찮다”는 답을 들은 뒤 기자는 자리를 뒤로 옮겨 면담을 지켜봤다.

50여분간 진행된 면담은 치열했다.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면서도 3~5세 어린이집 보육료는 2012년 이후 22만원으로 계속 묶어 놔 민간 어린이집이 최저임금 인상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정부의 최저임금 지원 대상에서 어린이집이 빠져 있는 만큼 경기도와 시·군이 차액보육료(특별활동비 등 추가로 부담하는 보육료)를 높여 지원해 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한 참석자는 “중앙정부에서 지원이 안 된다고 해서 지사님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러 왔다”고 하소연했다. 남 지사는 “도와주겠다”면서도 “이 문제를 차액보육료와 연동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그러자 다른 참석자는 “현장의 막막함이라고 생각해 달라”며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면담을 마친 뒤 차에 올라탄 남 지사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어린이집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걸 예측하지 못한 게 문제”라며 “작년에 예산안을 짤 때 이걸 반영했어야 하는데 중앙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포퓰리즘도 프로페셔널하면 괜찮은데 지금 이 정부는 아마추어 포퓰리즘이다. 아마추어 포퓰리즘이 최악”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이날 오후 4시 30분 서울 대치동의 스터디 카페에서 진행된 암호화폐 관련 간담회에서도 이어졌다. 금융회사의 임원, 교수 등 암호화폐 전문가 3명과 1시간여 동안 논의하던 남 지사는 암호화폐 규제 과정에서 혼선을 빚은 정부를 비판했다. 남 지사는 “김대중 정부는 IT(정보기술) 인프라를 깔아서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는 기초를 마련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자꾸 블록체인 기술을 죽이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교 테크노벨리에 있는 ‘스타트업 캠퍼스’에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일자리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떠난 뒤에도 남 지사는 기자를 상대로 정부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잘하길 바랐는데 자꾸 포퓰리즘으로 간다”며 “성장 동력은 없는데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이고 노동개혁은 안 한다. 이러다 진짜 큰 기업이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Q : 큰 기업이 사업을 접는다는 건 뭔가. 외국에 팔기라도 한다는 건가. A : 지금 정부가 프레임을 ‘기업 대 노동자’로 가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 유력 기업의 오너 중에 해외자본에 회사를 매각하려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일이 현실로 벌어지면 안 된다. 이런 흐름을 돌려세우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뇌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Q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A : 문 대통령에게 말하고 싶다. 일자리 연정을 하자. 다행스럽게도 경기도라는 심장은 아직 뛰고 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전국 일자리 창출의 90.5%, 84.2%가 경기도에서 생긴 일자리다.

Q : 자유한국당도 잘한 건 없지 않나. A : 당연히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정부는 한국 경제가 뇌사로 가는 상태를 제어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프로페셔널하고 미래의 성장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도 따뜻함이 있는, 실력과 품격을 갖춘 보수적 인물을 삼고초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염두에 두는 사람도 있다.

Q : 이재명 성남시장과 전해철 의원 중에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누가 나오는게 좋나. A : 나는 누가 나오든지 어렵고, 누가 나와도 쉽다고 본다. 대통령이 진영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도 결국 진영 대결로 갈 것이다. 그러면 결국 보수 대 진보의 ‘플러스 알파’ 싸움이 될 것이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난달 29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모습. 허진 기자
1300만명에 가까운 경기도를 이끄는 남 지사의 하루 일정은 빼곡했다. 오전 8시 30분 용인시 영덕동의 자택을 나서 오전 9시 경기도청으로 출근한 뒤 조류 인플루엔자(AI) 방역과 화재 점검을 위한 도정점검회의를 했고, 오전 11시 10분에 어린이집 원장 대표들을 만난 뒤에는 경기도 굿모닝하우스(옛 도지사 관사)로 옮겨서는 경기도 관내 노인회장 대표단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경기도 사회복지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그래서 그의 카니발 차량엔 예비용 신발이 두 켤레, 넥타이 7개, 민방위복을 포함한 상의 5벌 등이 구비돼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 속에서 바구니 속에 담긴 성경이 눈에 띄었다. 수행 비서는 “지사님이 틈날 때마다 성경을 읽는다”고 전했다. 차량 이동 중에 가정사에 대해 물었다.

Q : 장남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검찰이 구형을 세게 했더라. (※검찰은 지난달 26일 마약을 밀반입하고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 지사의 장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A : 뭐…. 어떻게 보면 나는 감사하다. 일단 초기에 아들이 잡혀서 감사하고, 아들이 구치소에서 성경과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면서 자기를 성찰하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초반에는 거의 매일 면회를 가다가 요즘은 일주일에 2~3번은 간다.

Q : 아버지가 정치인이라 비행이 더 부각되고 부모가 이혼도 했는데,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을 것 같다. A : 물론 그렇다. 하지만 스스로 본인의 삶을 헤쳐나가는 계기로 삼을지, 또 다시 패자의 길로 갈지는 본인의 몫이다. 우리 둘 다 상처 받은 영혼 아니냐. 아들이 벌을 다 받고 나오면 서로 용기를 북돋으면서 같이 살기로 했다.

Q : 선거 때 ‘집안단속부터 하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A : 그런 공격이 있다면 감수해야 한다. 오로지 다 내 몫이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시절부터 줄곧 ‘소장파’로 불려오던 남 지사지만, 가정사에 관한한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백전노장의 모습이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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