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G-7]"동남아 선수도 할 수 있다는 꿈..코치님 만나 이뤄졌어요"

고양 | 김경호 선임기자 2018. 2. 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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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쇼트트랙 전설’ 전이경 코치와 싱가포르 수제자 샤이엔 고
ㆍ쇼트트랙 링크 한 곳뿐인 싱가포르, 사상 첫 동계올림픽 출전
ㆍ2년여 만에 기적 일군 전 코치 “20년 만에 선수촌, 감회 깊어”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 전이경(오른쪽)이 1일 경기 고양의 어울림누리 얼음마루에서 자신이 지도한 싱가포르의 유일한 국가대표 샤이엔 고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 | 김창길 기자

“전 코치님을 만나고 나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쇼트트랙을 처음 시작할 때 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는데, 정말 꿈이 이뤄졌어요.”

싱가포르 여자 쇼트트랙 스케이팅 선수 샤이엔 고(19)는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인 전이경 코치(42)를 바라보며 수줍게 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취미로 즐기던 아이스하키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전향한 지 채 6년도 안된 지금, 그는 평창에서 싱가포르 최초의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3년 전부터 싱가포르 빙상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전이경 코치를 만난 지 2년여 만에 이룬 기적 같은 일이다.

샤이엔 고와 전이경 코치는 오는 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달 8일 한국에 들어와 집중 훈련을 하고 있다. 1일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만난 전 코치는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샤이엔은 싱가포르 동계스포츠의 선구자가 됐고, 저 또한 20년 만에 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가게 돼 감회가 깊다”며 활짝 웃었다.

샤이엔 고는 지난해 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서 여자 1500m 본선에 진출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과정은 극적이었다. 앞서 달리던 두 선수가 넘어지고, 한 선수가 반칙으로 실격한 뒤 샤이엔 고가 경쟁자 한 명을 제치고 2위로 골인했다. 행운과 실력이 함께한 드라마였다. 전 코치는 “이후 4차 대회까지 조마조마했는데, 평창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는 36명 중 막차를 탔다”며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샤이엔 고의 쾌거는 싱가포르를 들썩이게 했다. 겨울이 없는, 사계절 더운 곳. 더구나 아이스링크라고는 쇼트트랙, 피겨용 한 개밖에 없는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동계올림픽 티켓을 따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이웃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도 크게 흥분했다. 최근 빙상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라이벌 의식을 키워가던 터에 싱가포르에서 첫 올림픽 출전 선수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샤이엔 고는 “동남아시아 선수들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게 의미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동계스포츠 열기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샤이엔 고는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4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캘거리 인근 에드먼턴에서 생활스포츠로 자연스럽게 아이스하키를 즐겼지만 선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쇼트트랙으로 관심을 돌렸고,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1994·1998 동계올림픽에서 2관왕 2연패를 달성한 레전드 전이경 코치를 만난 것은 2016년 여름이었다. 전 코치는 자녀 교육을 위해 싱가포르에 갔다가 2015년 10월부터 그곳 빙상연맹으로부터 대표팀을 지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선수들을 가르쳤다. 비싼 대관료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밖에 빙상훈련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상훈련을 강화하며 선수들을 단련시켰다. 아이스하키를 하던 샤이엔 고는 기초부터 새로 가르치는 과정을 거쳤다. 샤이엔 고는 “전 코치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아무것도 몰랐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웃었다.

샤이엔 고는 오는 17일 여자 1500m에 출전한다. 전 코치는 “솔직히 다른 선수들에게 한 바퀴 이상 추월당하지 않는 게 목표”라고 털어놓았다. “이번 올림픽 경험을 더해 앞으로 더 많이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도 했다. 샤이엔 고는 “참가하고, 도전하고, 우정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하는 6개국 중 하나다. 샤이엔 고는 9일 개회식에서 국기를 들고 싱가포르 선수단 맨앞에 선다. 그 뒤를 전이경 코치와 임원 2명이 따른다. “국기를 들고 들어갈 생각에 가슴이 떨린다. 그 순간은 저뿐 아니라 싱가포르 전체에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맺겠다”고 말했다.

<고양 |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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