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에 더 가까운 사람 구할 것"..정말 AI 로봇 소피아의 생각일까?
“대형 화재 현장에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불 속에서 노인과 어린이 중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구하겠습니까?”
“꼭 선택해야 한다면 출구에 더 가까운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그것이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형상의 인공지능(AI) 챗봇인 소피아는 3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로봇 소피아에게 묻다’를 주제로 열린 대담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번 대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소피아는 홍콩의 핸슨로보틱스가 개발했으며,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로봇 최초로 시민권을 받으면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답변에 앞서 소피아는 “어려운 질문이네요. 되묻고 싶습니다. 엄마가 더 좋으세요, 아빠가 더 좋으세요?”라는 재치 섞인 농담을 던져 청중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아직 윤리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지 않다”고도 했다. “한복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나랑 소피아 중에 누가 더 예쁜 것 같냐”는 박 의원의 질문에도 소피아는 “사람을 두고 누가 더 예쁘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복을 입은 소피아는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면서 눈썹을 움직이고 대화 도중에 손으로 제스처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표정은 수시로 바뀌었다. 소피아는 60여 가지 얼굴 표정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눈동자에는 사물 인식 센서가 탑재돼 있어 사람을 알아볼 수도 있다. 사람 피부와 비슷한 질감의 고무인 ‘플러버’ 소재로 이뤄진 피부는 표정을 짓거나 고개를 돌릴 때 부드럽게 주름이 잡혔다.
이날 소피아가 내놓은 답변들은 2주 간의 연습을 통해 사전 입력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발의한 ‘로봇기본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복을 입어보니 기분이 어때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롤 모델이 있나요?’ 등의 질문에 대해 소피아가 내놓은 답은 소피아의 생각이 아닌 개발자가 입력한 답인 셈이다.
소피아는 ‘문이 열려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같은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는 사전에 입력된 답변이 없어도 사물 인식을 통해 대답이 가능하지만, 그 외에는 음성으로 입력되는 사람의 말(자연어)을 해석한 뒤 데이터베이스(DB)에서 그에 적합한 대답을 골라내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즉, 소피아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어느 타이밍에 어떤 말을 꺼낼지를 학습하는 것이다.
벤 고어첼 핸슨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아이폰의 ‘시리(Siri)’와 비슷한 챗봇 인공지능 소프트웨어(SW)를 휴머노이드 로봇과 결합한 형태”라며 “소피아는 스스로 재치 있는 농담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소피아가 내뱉는 장난스러운 말 역시 사전에 입력된 것들 중에 골라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암호화폐 거래가, 날씨 같은 일부 정보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내기도 한다.
소피아와 시리의 결정적인 차이는 소피아의 경우 내뱉는 말에 어울리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말을 할지 선택한 뒤 그에 맞는 얼굴 표정을 매치하는 식이다. 가령 사람이 “나 화났어”라는 말을 할 때 화난 표정을 짓는 것처럼 사람의 말과 그에 따르는 다양한 표정을 영상으로 반복 학습한 결과다. 여기에는 사람의 학습 방식을 모방한 머신러닝(기계학습)이 적용됐다.
소피아와 함께 방한한 핸슨로보틱스의 데이비드 핸슨 최고경영자(CEO)는 “소피아는 범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돕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소피아도 “나는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래머, 의료 보조인이 될 수도 있다”며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일하거나 심지어는 패션 모델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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