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가 통일을 싫어한다고 누가 그러나?

이대희 기자 2018. 1. 3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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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구원 보고서서 "'통일 디폴트 옵션' 달라졌다"

[이대희 기자]

 
유통기한 지난 정언명령이었을 뿐일까.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을 계기로 20~30대 청년층의 대북관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청년층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 기성세대보다 북한을 더 적대시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여론조사 결과도 속속 보도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는 지난 25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18년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일 거시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58.7%에 달했고, 한반도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응답자 비율도 47.4%에 달했다. 다른 무엇보다, '통일을 하지 않거나 미루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게 더 좋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무려 88.2%에 달했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국민이 더는 통일을 절대적 지상과제로 보고 있지 않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발표 이후, 통일관 변화를 주도한 세대가 청년층이라는 문제의식이 언론지면을 뒤덮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어릴 적부터 주입받아온 기성세대에게 젊은 세대의 변화한 가치관은 새로움을 넘어 당혹스러운 신호로 읽힐 수 있다. 통일에의 방법론에는 이견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간 통일 자체는 절대적 국가 목표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 세대의 통일의식 변화가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기성세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기성세대가 '통일' 앞에 가식

30일 박주화 통일연구원 평화협력연구실 부연구위원은 '20~30대 통일의식에 대한 변명' 보고서에서 이 같이 주장하며 최근 청년세대의 달라진 통일의식에 주목하는 여론 흐름을 두고 "20~30대의 통일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기성세대의 규범적·도덕적 잣대로 재단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20~30대의 통일의식을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일반화하는 것이 적절한 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고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암기해야 했던 기성세대가 오히려 그간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해야만 하는 사회적 의무감을 학습했고, 결과적으로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자기검열, 사회적 바람직성에 대한 고려가 강한 것"아니냐는 비판이다. 

즉, 2030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더 솔직한 생각을 보였을 뿐, 구체적으로 통일관을 조사해 보면 기성세대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 주장이다.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주장은 당연하다. 남한의 일방적인 흡수통일이 아닌 한, 남북의 통일국가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과정이다. 국기, 헌법, 국가, 통화 등 우리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모든 기존 제도와 체제를 뒤바꿔야 통일이 완수된다. 기성세대 중 '통일로 인해 부동산 제도가 바뀌었으니 손해를 감수하라'면 이를 반길 이가 얼마나 될까. 

이 같은 추정은 실제 연구조사 결과로도 드러난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지난해 '남북통합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 "통일의 추상성이 낮아질수록, 즉 통일이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화될수록 통일에 대한 긍정적 응답이 극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모든 세대에서 공통적"이다. 

결과를 보면, 추상적으로 '통일의 필요성' 만을 물었을 때 긍정적으로 답한 연령층은 20대가 38.9%로 압도적으로 낮고, 30대도 51.7%였다. 50대는 65.3%, 60대 이상은 71.0%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 결과만 보면 분명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통일에 훨씬 부정적이다. 

하지만, '통일을 위한 세금 인상' 찬성률을 보면 기성세대의 통일관이 사실상 별 생각없이 나온 대답임이 드러난다. 통일을 위해 세금 인상을 감수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20대는 9.7%, 30대는 16.3%로 크게 낮아졌다. 주목할 부분은 50대와 60대의 찬성 비율이다. 통일을 위해 세금을 더 내겠다는 50대와 60대 이상 찬성률은 각각 19.1%, 22.4%에 불과했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내가 좀 못살아도 된다'는 주장에 대한 찬성률을 보면, 20대와 30대는 각각 8.0%, 9.6%에 그쳤고, 50대와 60대 이상도 13.1%, 15.8%에 불과했다. 

'통일을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이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매우 적다는 뜻이다. 한국 국민이 희생하지 않는 통일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박 연구위원은 "만일 '통일의 필요성'을 '통일에 대한 개인의 희생여부'로 정의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압도적으로 낮으며, 세대 간 차이 역시 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통일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어렵지만 통일이 필요하다는 기성세대의 통일의식이 20~30대의 통일의식보다 나은 점은 무엇이냐"고 물은 후, 오히려 "20~30대는 개인적 희생이 요구되는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솔직하게 밝힌 반면 개인적 희생이 없는 통일, 즉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통일을 원하는 기성세대의 통일의식이야말로 위선적"이라고 지적했다. 

'민족통일담론'에는 20대와 60대 모두 동의, 하지만...

물론 연령이 통일의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김현희의 KAL기 폭파 사건을 봤음에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불렀던 세대와 강제적 통일 학습 압력이 낮아진 한편 북한의 대남 도발을 지켜보며 자란 세대의 감수성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정이 하키단일팀 논란을 두고 '젊은 층이 통일에 부정적'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통계적으로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박 연구위원은 "민족동질성 인식에서 세대 간 차이는 크지 않다"며 "20대와 30대의 민족 동질성 인식은 매우 높은 편이며, 세대 간 차이도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주장에 명시적으로 거부한 비율은 20대가 6.3%, 30대가 5.6%, 40대는 3.4%, 50대는 5.6%, 60대 이상은 2.5%다. 연령별로 큰 차이가 없다. 

통일의 이유에 대해서도 20대의 26.9%, 30대의 24.2%, 40대의 29.5%, 50대의 28.1%, 60대 이상의 48.6%가 '민족 동질성'을 꼽았다. 60대 이상을 제외하면, 관련 응답자 비율 역시 세대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즉, 적어도 '부정적 대북관을 주입받은 20대에게서 민족 담론이 약화했다'는 주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 청년층과 기성세대의 통일 인식도는 사실 큰 차이가 없다. 구체적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물을수록 통일 동의율은 모든 연령대에서 극적으로 떨어진다. ⓒ통일연구원

박 연구위원은 이 같은 결과를 근거로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이 통일의 유일무이한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20~30대의 생각"이라며 "민족담론의 창조적 파괴, 창조적 재구성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예를 들어, 기성세대는 막연히 통일은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한 민족이었으니 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한 민족이 함께 사는 통일은 당연히 좋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남한의 일방적 흡수통일 결과, 북한이 사실상 남한 재벌 자본의 식민지가 되어 결과적으로 더 통제 불가능한 우범 사회로 전락할 수도 있다. 장강명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 펴냄)은 갑작스런 북한 정권의 붕괴 후, 북한이 마약 군벌 체제가 된 상황을 그린다. 만일 이런 상황이 통일로 가는 중간 과정이라고 상정하는 이가 있다면, ‘통일은 나쁜 것’이라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고민 없는 민족 담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젊은 세대가 이를 냉철히 바라보고 지적하는 걸 두고 '2030세대는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사실 왜곡이다. 

▲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들이 2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A.B 팀으로 나눠 훈련 및 미니 게임을 진행했다. ⓒ대한체육회

왜 2030은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에 화났나: 디폴트 옵션

이제 지난 22일 청와대의 '반성'을 되새겨 볼 차례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으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자, 이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출입기자들과 만나 반성의 뜻을 보이고, 특히 젊은 세대의 변화한 인식을 짚지 못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고개숙인 靑 "2030의 '공정' 문제제기, 반성한다"

그렇다면, 이제 숙제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점을 찾는 데 있다. 박 연구위원은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H. 탈러 교수가 <넛지>(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펴냄)에서 주장한 '디폴트 옵션'을 생각해볼 때라고 주장한다. 

디폴트 옵션이란, '특별한 설명이나 지시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선택되는 기본적 옵션'을 뜻한다. 박 연구위원은 "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에 대한 논란은 남북관계, 특히 남북이 함께 한 스포츠 행사에 대한 디폴트 옵션이 세대 별로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남북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스포츠, 특히 올림픽이 개최되면 기성세대에게는 자동적으로 '남북단일팀', '남북 공동입장', '공동 응원'이 디폴트 옵션으로 작동한다. 이에 관한 찬반 입장은 각자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올림픽이 열리면 기성세대에게는 남북 단일 이벤트가 자동적으로 선택된다는 뜻이다. 

박 연구위원은 하지만, 올림픽에서 20~30대의 디폴트 옵션은 한국과 북한의 개별 참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그 근거로 20~30대의 역사적 경험을 든다. 이들이 경험한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도발을 일삼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등으로 남한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타자였을 뿐이다. 이들은 남북이 힘을 합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다. 반면 기성세대는 북한의 테러에 시달렸으면서도 1991년 탁구 단일팀, 축구 단일팀 등의 경험을 갖고 있다.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경험하기도 했다. 적어도 스포츠에 관한 한 '북한 정권'과 '북한'을 경험적으로 분류 가능했다. 

박 연구위원의 주장이 맞는다면,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사과는 20~30대에게 사과로 읽히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반성한다면서도 단일팀은 필수라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창이 새로운 디폴트 옵션 정립 계기가 될 지도

박 연구위원은 디폴트 옵션이 달라짐에 따라 "(남북단일팀 이벤트처럼) 과거에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설명이 필요한 영역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경험의 확장을 통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역설적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대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경험이 "세대 간 디폴트 옵션의 차이를 상쇄할 수 있는 기회, 특히 디폴트 옵션의 차이를 야기한 경험의 차이를 줄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게 박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다만, 이런 경험을 반드시 긍정적 이벤트로 이슈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도 박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는 "남과 북이 함께하는 경험이 반드시 긍정적일 필요도 없으며, 긍정적이기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며 "교과서나 뉴스가 아닌 경험을 통해 북한, 통일, 평화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학습과 경험의 간극을 좁히는 기회가 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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