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때려잡는 터키 탓에 더 꼬이는 시리아 평화회담

강혜란 입력 2018. 1. 31. 15:35 수정 2018. 1. 3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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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시리아 내전 끝내려던 소치 회의
협상 대상인 반군 불참해 '빈손' 종료
30일(현지시간) 시리아 아프린 일대에서 벌어진 터키의 군사작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한 쿠르드 소녀. [로이터=연합뉴스]
만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을 끝장내기 위해 소집된 또 한차례 대화가 별 소득 없이 끝났다. 30일(현지시간) 러시아 흑해 휴양도시 소치에서 열린 ‘시리아국민대화회의(이하 ‘소치 회의’)’ 얘기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소치 회의’는 9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회의 끝에 시리아의 정치 체제를 규정할 새 헌법안 마련을 위한 위원회 창설에 합의하고 폐막했다. 성명을 통해 참석자들은 “시리아인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며 외국의 간섭 없이 자체적인 정치 체제를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다.

회의를 주도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유엔이 이번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소치 회의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의 결과에 대해선 회의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회의 닷새 전 ‘아흐라르 알샴’ 등 약 40개의 시리아 반군조직이 불참을 선언해 회의가 반쪽짜리로 열렸기 때문이다. 최대 반군 연합체인 ‘시리아 국민동맹(SNC)’도 보이콧을 선언했다. 일부 반군 대표들은 소치 공항에 내렸다가 시리아 정부 측 깃발이 사방에 걸린 걸 보고 그대로 돌아가 버리기도 했다.

회의는 막바지로 치닫는 시리아 내전의 사실상 승전국인 러시아가 이해관계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였다. 러시아 측은 이란·터키 등 중재국은 물론 시리아 정부와 반군 단체 등 약 1600명을 초대했다. 유엔의 스타판 데 미스투라 시리아 특사도 어렵사리 참석을 결정했다. 하지만 내전 협상의 핵심 당사자들이 불참하면서 합의 이행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0일(현지시간) 러시아 흑해 휴양도시 소치에서 열린 '시리아국민대화회의' 모습.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러시아가 주최한 회의로 관련국에서 약 1500명이 참석했다. [EPA=연합뉴스]
━ 알 아사드 퇴진 여부 최대 쟁점 이들이 소치 회의를 거부한 일차적인 이유는 러시아가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의 편에 서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데다 유엔 주도의 제네바 평화회담을 무력화시키려는 속셈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소치 회의 의제로 알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이 포함되지 않은 데 거부감이 컸다. 지난 2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주도 회담과는 ‘반대 판박이’다. 당시엔 시리아 정부 측이 알 아사드의 거취가 의제로 거론되는 데 반기를 들며 회담을 보이콧했다.
그렇다고 반정부 진영 입장이 통일된 것도 아니다. 소치 회의에는 총 109명의 반군 측 대표가 참석했는데 여기엔 카드리 자밀 전 시리아 부총리가 이끄는 모스크바 그룹이 포함됐다. 러시아 정부와 가까운 모스크바 그룹은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보단 개혁을 요구한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SNC는 전후 과도체제에서 알 아사드를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소치를 깜짝 방문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포옹하며 환대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AP=연합뉴스]
━ 터키 군사작전에 10일간 600명 숨져 소치 회의에 암울한 그늘을 드리운 또 하나의 배경은 최근 격화된 터키의 쿠르드 격퇴전이다. 터키는 지난 20일부터 시리아 북서부 아프린에서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몰아내는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일명 ‘올리브 가지 작전’으로 명명된 이 군사공격으로 열흘간 약 600명이 사망했다.
기세를 올린 터키는 시리아 알레포주 북동부 만비즈 지역으로 작전을 확대할 계획이다. 만비즈는 YPG가 소속된 쿠르드·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이 2016년 8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고 장악한 곳이다. SDF 뿐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는 미군도 주둔한다. 터키는 YPG에 대한 공격을 선언하면서 미군에게도 “손 떼고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터키 국경마을 킬리스에서 바라본 작전지대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지난 20일 터키군은 시리아 아프린 일대에서 쿠르드군을 소탕하는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AP=연합뉴스]
━ IS 격퇴전 공신 쿠르드에 총구 돌려 터키의 군사작전은 IS 패퇴 이후 각국의 급변하는 이해관계를 드러낸다. 원래 YPG는 시리아 쿠르드 정치조직 민주연합당(PYD)의 산하 무장단체였다. 미국은 2014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이래 온건 반군인 SDF를 지원하면서 YPG도 함께 훈련·지원해 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으로 미국과 함께 시리아 반군 편에 섰던 터키는 YPG가 유프라테스 강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미국의 YPG 지원을 묵인해왔다.
이제 터키는 IS 소탕 작전이 끝난 이상 YPG 등 쿠르드 반군이 아프린·만비즈 일대에서 세력화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터키는 YPG를 1980년대부터 자국 내 분리 독립을 주장해 온 무장 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관된 테러 단체라고 본다. 2016년 수도 앙카라의 공군사령부 인근에서 군 차량을 공격해 28명이 숨진 차량테러 등이 PKK와 YPG의 소행이라는 주장이다.
터키군의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공격 작전지대.
━ 美, 시리아 쿠르드 통해 '완충지대' 계획 반면 미군은 IS 재건을 영구히 막는다는 목표로 시리아 북부에 쿠르드군 주축으로 3만명 가량의 국경 경비부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웠다. 지정학전문매체 스트랫포에 따르면 이는 시리아·이라크 일대에서 패권 강화를 노리는 이란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는 '완충지대' 의미도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으로선 자치권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다. 170만~250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알 아사드 정부 치하에서 별다른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 내전을 틈타 2016년 3월 북부 알레포 주의 코바니와 아프린, 하사카 주의 자지레 등 3개 지역에 자치정부를 수립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IS로부터 수복한 지역에도 세력을 확장할 기대에 차 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미국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요르단 마프라크에 있는 자타리 시리아 난민캠프를 방문해 한 난민소녀와 뺨을 맞대고 있다. [AP=연합뉴스]
━ 내년 대선 앞둔 에르도안에 정치 위협 이 같은 ‘시리아 쿠르디스탄’이 현실화하면 시리아 정부뿐 아니라 터키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쿠르드족은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 일대에 3000만~4000만명 흩어져 있는데 터키에 가장 많은 1500만명이 살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선 자국 내 PKK 세력 강화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시리아 쿠르드 격퇴전에 나설 수밖에 없다.

터키의 이런 행보는 이제껏 동맹 관계였던 시리아 반군 측과 파열음을 낳고 있다. 터키가 작전을 전개한 아프린 일대는 알 아사드 정부의 최대 후원자인 러시아가 제공권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실제로 러시아 국방부는 터키의 작전에 앞서 영공 사용에 동의해 준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러시아가 주도하고 터키가 중재를 서는 소치 회의에 시리아 반군 측이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1년 3월 민주화 시위로 시작돼 7년간 각국 대리전으로 악화해온 시리아 사태 해법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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