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롱이' 이규형 "무명배우 꼬리표, 기분 나쁘지 않아요"

2018. 1. 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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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사진=엘엔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배우 이규형의 등장은 첫 회부터 강렬했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하이톤과 목소리와 몽롱한 말투로 “우리 지금 신라호텔 가는 거야?” “삼촌, 히터 구다사이~”라고 말하다가 생수병으로 맞는다. 그곳은 바로 수감소로 향하는 버스였기 때문이다. 도착해 보급품을 받고서는 다짜고짜 김제혁(박해수)의 무릎에 눕는다.

이때부터였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귀염둥이 ‘해롱이’로 변신한 이규형이 웃음을 빵빵 터뜨리며 마음속에 들어온 건.

■ 이규형, ‘해롱이’ 탄생한 과정

“신원호 PD님과 작가님들이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셨나봐요. 2016년 가을, 겨울쯤에 뮤지컬 ‘팬레터’와 연극 ‘날 보러와요’를 하고 있을 때거든요. 운 좋게 PD님이 내가 출연하는 두 작품을 연달아 보신 거예요. 이후 2017년 2~3월쯤 ‘슬기로운 감빵생활’ 오디션 볼 때 연락이 왔죠. ‘날 보러와요’에서 술 취한 난동꾼 역할이었는데, 이 술 취한 톤에서 조금만 바꾸면 해롱이 연기가 가능하겠다 싶어서 부르셨대요. 계속해서 좀 더 보여줄 수 있겠냐고, 귀엽게 할 수 있겠냐고 주문하셨어요. 내 귀여움을 인정하셨는지 캐스팅을 하셨죠 (웃음)”

해롱이는 사실 극중 역할인 한양의 별명이다. 마약을 투여하지 못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강렬한 캐릭터 특성상, 이름보다 별명이 더 많이 불렸다. 또한 어눌한 발음으로 톡톡 쏘아대는 귀여운 돌직구를 날리는 해맑은 모습 덕에 ‘해롱이’라는 호칭이 더 찰떡같았다.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와 유정우 대위(정해인)와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장면은 하루라도 빠지면 허전할 정도였다. 첫 회부터 시작해 꾸준히 담요를 뒤집어쓴 채 김제혁의 무릎에 눕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눈치 없이 “꺄르르” 웃으며 날리는 매를 버는(?) 대사, 입을 앙 다물고 ‘그르릉’대는 화난 표정은 해롱이의 마스코트였다. 이처럼 범죄자이면서도 밉지 않은 매력을 소화해야 하기에 이규형의 연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연극과 드라마의 톤은 완전히 달라요. ‘팬레터’ ‘날 보러와요’ 때 캐릭터와도 다르고요. 또 해롱이가 워낙 특이하잖아요. 역대 드라마에 마약쟁이가 나왔다고 해도 해롱이처럼 서울대 엘리트에 동성애자에 성격에 복합적인 인물은 없었어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사랑해주실까’라는 생각보다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어요”

이규형(사진=엘엔컴퍼니 제공)

해롱이는 ‘동성애’ 코드도 품고 있다. 극중 유 대위가 해롱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거부감을 내비치는 장면, 해롱이가 동성애를 고백했을 때 당황하던 김제혁의 표정 등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사회적 약자라는 민감한 요소가 있었기에 인물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게 연기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작품에서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면 그 역할은 수행할 수 없으니까요. 수감자들과 지낼 때, 접견을 할 때, 과거 회상신이 나올 때 각기 다른 해롱이의 모습이 있는데, 그게 서로 영향을 미치는 거죠. 그래서 동성애라는 정보 없이 해롱이와 애인을 볼 때도 친구처럼 보이게끔 하려고 했어요”

덕분에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은 역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규형은 “극중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없었냐”는 질문에 “별로 안 탐나는데요?”라고 단박에 대답하며 웃었다. 그만큼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캐릭터와 한 몸이 되어 각각의 인물 그 자체였다. 그렇다보니 인물간의 케미는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매일 니킥 맞고 때리고, 서로 눈에 물파스와 청양고추 바르면서 싸우고, 캐릭터들의 합이 잘 맞아서 웃긴 적이 많았어요. 다들 워낙 친한 배우들이기도 하고요. 해인이와도 케미가 좋았어요. 촬영 전 어떻게 싸울까 합을 맞췄어요. 싸우는 신은 다 애드리브로 진행됐거든요. ‘초딩처럼 싸운다’ 이런 지문만 있었어요”

이규형(사진=엘엔컴퍼니 제공)

■ ‘해롱이’가 안겨준 연기의 맛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해롱이의 결말은 비극이었다. 해롱이는 고생 끝에 출소하던 날 함정수사에 걸려 다시 마약에 손을 댔고, 다시 바로 감옥으로 끌려갔다. 많은 시청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던 캐릭터였기에 안타까운 마음과 원성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의 의미는 깊다. ‘이렇게 귀여운 해롱이도 어쨌든 범죄자’라는 인식을 다시금 끌어올렸다.

“결말은 만족해요. 범죄자를 미화하면 안 되니까요. 사실 마약사범이 너무 귀엽게 그려진 것도 있고요. 이것보다 훨씬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게 리얼이잖아요. 그래도 이 드라마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배경이 감옥인 거지, 어쨌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김제혁이 슬기롭게 고난을 극복해나가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본인의 힘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규형은 작품이, 그리고 그 안에 녹아든 자신의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와 닿았던 댓글로 ‘연기를 보면 일주일의 피로가 다 풀린다’ ‘일에 시달리다가 드라마 하는 날만 기다린다’ 등을 언급하며, “이 맛에 연기하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오직 연기를 향한 마음은 갑작스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이규형은 ‘슬기로운 감빵생활’ 종영 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규형’ ‘해롱이’ 키워드를 모두 올릴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짤방부터 기사까지 보내주면서요. 종영하고 다음날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것도 몰랐어요. 당연히 기분 좋죠. 그런데 그렇다고 집에서 ‘아싸!’ 그러지도 않아요. (웃음)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초심 잃지 말고 행동하자고 생각해요. 집 밖을 잘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요”

이규형(사진=엘엔컴퍼니 제공)

■ 우리가 알던 해롱이, 그리고 몰랐던 배우 이규형

신원호 PD는 대중에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출중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는 배우를 발굴해내기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그 배우를 신뢰한다. 반대로 배우 역시 캐스팅 결정에 기대를 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규형은 “기대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진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직업은 이슈가 되냐, 안되냐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잖아요. 거기에 신경 쓰면 내 페이스를 잃어버려요. 영화 ‘나의 독재자’ 때 많은 기대를 하고 많은 실망을 해봤어요. 그 뒤로부터는 작품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열심히 하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신 PD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이규형은 연극 혹은 뮤지컬 무대에 수없이 오른 배우더라도 브라운관에 처음 얼굴을 비추면 ‘무명배우의 발견’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해서도 단단한 생각을 들려줬다.

“팬 분들은 내가 ‘무명배우’라고 표현되는 것에 안타깝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연계는 관객층이 한정적이거든요. 돈을 내고 찾아와서 내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에 대중적이지 못하고 노출 빈도가 적어요. 그런 면에서 기사, 댓글 등에서 무명의 배우가 빛을 발했다고 말하는 게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인배우가 아닐 뿐이지 무명이긴 하잖아요. 그런 것에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

조용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는 이규형의 모습에 해롱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극중 귀여운 쉼표머리를 하고 말하던 애교스러운 대사, 과거 회상 장면에서 보여준 감정연기, 접견 신에서 상처 받은 표정으로 흘리던 눈물 등이 아른거렸다. 이규형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앞으로 보여줄 연기를 빨리 보고 싶어진다.

“올 한 해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어요. ‘저런 것도 할 줄 아는 구나’ 싶을 정도로 겹치지 않는 캐릭터로요. 예전에는 기회를 잡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이규형이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아셨으니까, 이제는 그 기회를 신중하게 잘 활용해서 시청자들, 관객 분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이슈를 다뤄서 깨달음을 얻는데 일조를 하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고요. 애초에 그러려고 연기를 시작했으니, 능력을 그렇게 활용해야죠”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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