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명인 황병기, 향년 82세로 세상과 이별하다

입력:2018-01-31 09:58
수정:2018-01-3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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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황병기(82)씨가 31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말 뇌졸중 치료를 받은 이후 폐렴을 앓아 왔던 것을 알려졌다.

현대 국악을 개척하면서 민족적 경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고인은 창작음악의 1세대로 불린다. 올해 가야금 인생 67주년, 창작 인생 56주년을 맞은 우리 가야금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당시 음악을 생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야금은 그냥 좋아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근처에 있던 국악원에서 매일 가야금을 연주했던 황병기는 대학교 3학년 때 다시 전국 콩쿠르 1등을 하며 본격적인 음악인의 삶을 시작했다.

황병기는 1962년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국화 옆에서’를 통해 가야금 연주자로 첫 발을 내디뎠고, 같은 해 한국 최초의 가야금 현대곡으로 통하는 ‘숲’을 만들었다.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강사로 일하던 때 작곡한 ‘숲’은 황병기의 첫 가야금 곡일 뿐 아니라 우리 음악 사상 최초의 현대 가야금 곡이기도 하다.


1970년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에 국악과가 생기면서 국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로 결심한 그는 1974년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하며 음악을 전업으로 삼았다. 1974년 유럽 공연을 앞두고 신라 음악을 되살린 ‘침향무’,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은 ‘비단길’ 등 전통을 품는 동시에 독창적인 곡들을 선보여왔다.

특히 1975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미궁’ 등이 대표작이다. ‘미궁’은 첼로 활과 술대(거문고 연주막대) 등으로 가야금을 두드리듯 연주하고 무용가 홍신자의 절규하는 목소리를 입힌 파격적인 곡이었다. 1999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황병기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아름다운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병원에서 쓰기 시작해 퇴원하자마자 ‘시계탑’이란 곡을 완성했다.

2014년 ‘정남희제(制) 황병기류(流) 가야금 산조’ 음반을 내고, 지난해 9월 인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에서 가곡(歌曲) 콘서트 ‘황병기 가곡의 밤’, 같은 달 롯데콘서트홀에서 ‘국악시리즈 II – 국립국악관현악단’을 펼치는 등 계속해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해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송태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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