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검사 '29페이지 미투'에.. 검찰 쑥대밭 됐다

엄보운 기자 2018. 1. 3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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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 성추행 폭로 파문]
서 검사 "안태근이 성추행하고 당시 검찰국장 최교일이 덮어"
문무일 검찰총장 "응분의 조치"
文대통령 "성추행 다신 없도록 정부혁신 과제에 추가하라"

현직 여검사가 검사장 출신 전직 법무부 간부에게 성추행과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관련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나섰고, 법무부와 검찰은 진상을 조사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30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이 사건을 거론하면서 "성추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혁신 과제 중 하나로 추가하라"고 했다.

이 사건은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45) 검사가 지난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옆자리에 동석했던 당시 안태근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한 뒤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A4용지 29페이지(첨부 파일 포함)에 달하는 그 글의 내용이 지난 29일 외부에 알려졌다.

서 검사는 글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허리와 엉덩이를 감싸 안고 수회 만지는 상당히 심한 추행을 당했다'며 '이후 소속 검찰청 간부를 통해 사과를 받기로 했지만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검찰총장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2015년 8월 통영지청으로 원치 않는 발령을 받았는데 당시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이 안태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여주지청에서 통영지청 수석검사로 발령 났다. 좌천성 인사로 볼 수 있다. 당시 비슷한 규모 지청에는 서 검사보다 4~5기수 아래 검사들이 수석검사로 배치됐다. 외견상 안 전 국장이 서 검사에게 보복 인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 전 국장은 "오래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다만 그 일이 검사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검찰 일각에선 "서 검사의 일부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어 그런 인사가 난 것으로 안다"는 말도 나온다.

서 검사는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도 거론했다. 성추행 사건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그가 사건을 덮었다는 것이다. 당시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였던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는 그때 상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그는 "상갓집 추행 사건이 벌어진 직후 법무부 감찰 쪽에서 '피해자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아 서 검사와 전화 통화를 했다"며 "그랬더니 모 검사장이 자기 집무실로 불러 어깨를 갑자기 두들기며 '내가 자네를 이렇게 하면 그게 추행인가? 격려지?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셔'하고 호통을 쳤다"고 했다. 그는 언론에 "당시 호통을 친 검사장은 최 의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서 검사나 성추행 사건 자체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덮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 문제와 별도로 서 검사는 전날 한 방송 인터뷰에서 "(검찰 내에서) 성추행, 성희롱뿐 아니라 성폭행도 이뤄진 적이 있으나 전부 비밀리에 덮었다"며 "성폭행은 강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다만 "이 일은 피해자가 있어서 함부로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통신망에 글을 쓰면서 첨부 파일에 소설 형식의 글도 올렸다. '100% 실제 사실을 전제로 했다'는 이 글에는 ▲여성은 남성의 50%라고 말하던 A부장 ▲여자는 발목이 가늘어야 한다고 하던 B선배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C선배 ▲웃음이 헤프다고, 안 웃으면 여자가 안 웃는다고 설교하던 D선배 ▲자꾸 네가 이뻐 보여 큰일이라던 E선배 등이 묘사됐다.

그는 이번 폭로가 "검찰 개혁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모두 사실로 밝혀지고 추가 피해자의 폭로가 나온다면 검찰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서 검사는 방송 출연 후 두 달간 병가를 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진상 조사를 철저히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법무부도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엄정히 처리하도록 대검에 지시했다"고 했다.

검찰은 "진상 파악이 먼저"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최 의원과 안 전 국장은 퇴직한 상태다. 이들까지 조사해 사건 진상을 파악하려면 수사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성추행은 피해자가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했던 친고죄였기 때문에 혐의 적용이 어렵다. 남은 것은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직권남용(공소시효 7년)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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