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깠을 뿐인데 동물이 튀어나온다?..전대미문의 공작 책

김지혜 2018. 1. 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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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귤 까기 아-트' 책을 출판한 길벗스쿨 직원들의 작품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소셜미디어를 둘러보던 중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귤 껍질을 끊어지지 않게 벗겨 동물을 만들어내는 전대미문의 공작 책 '고수의 귤 까기 아-트'다. 책 검색을 해보니 '그저 귤 하나 깠을 뿐인데 동물이 튀어나온다!'라는 재미있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책 주인공인 10대 소년 무키오는 어느 날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귤을 이렇게 막 까먹어도 되는 걸까? 아니, 그건 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이날부터 무키오는 기존에 없던 방법으로 귤을 까기 시작한다. 그는 귤 껍질로 호랑이·말·개 등 25가지 다양한 동물을 만들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이를 통해 성숙해져간다.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이 책은 지난 2010년 일본에서 출간됐다. 귤철이 되면 일본 아마존 취미 분야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1월 발간돼 점차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고 있는 중이다. '웃음을 잃은 청춘들에게 현실 웃음을, 재미를 잃은 직장인에게 수제 귤잼을 선사합니다'라는 멘트나 재미있는 홍보 영상으로 2030세대의 관심을 끄는 이 책은 누가 어떻게 왜 발행하게 됐을까.

길벗출판사 어린이교양팀에서 근무하는 이현주 '고수의 귤 까기 아-트' 담당 편집자와 30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11월 책을 출시했는데 반응이 어떤가요.

▷귤이 나오는 계절에 맞춰 책을 냈어요. 겨울엔 추우니 집에서 소소한 놀이를 하기 좋잖아요.

책이 나왔을 때 온라인 서점 MD들과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관심을 가져줬습니다. 감사하게도 직접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후기를 올려주셨더라고요. 후기를 본 독자들 역시 주변에 입소문을 내줬죠.

책은 지난해 11·12월보다 올해 1월에 들어서면서 더 잘 팔렸어요. 후기가 생성되고 퍼지는데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어떻게 왜 이 책을 출판하게 됐나요.

▷2년 전 겨울 친한 친구 한 명이 저에게 메신저로 "일본에 이런 책도 있다"며 링크를 하나 보내왔습니다. 표지를 보니 재미있어 보였어요. 귤껍질로 동물을 만든다는 것도 무척 신기했고요. 회사 편집부 사람들과 공유했더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다 얼마 후 제가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을 하면서 회사를 잠시 떠나 있느라 이 책을 잊고 있었습니다.

휴직 기간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더니 편집부 팀장님이 이 책을 계약해 놓으셨더라고요. 제가 없는 동안 일본 원서를 주문해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보여줬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대요. 팀장님은 고민 끝에 책을 내기로 결정하셨죠. 복귀 선물로 저에게 보여주셨을 때 기쁘고 반가웠답니다.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제목에 그냥 아트가 아닌 '아-트'라고 쓰여있어요. 붙임표를 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 책을 보고 '이건 단순한 과일 까기 아니라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귤을 하나 깠을 뿐인데 멋진 용도 되고 귀여운 토끼도 된다는 게 정말 놀랍잖아요. 그 느낌을 제목에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냥 '예술'이라고 넣기엔 아쉽고 심심했어요.

본문에 복고풍 일러스트가 실려있는데 이 분위기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떠올린 게 '아-트'였어요. 70~80년대에 영어를 한국어로 옮겨 적을 때 썼을 법한 표기법을 사용해 옛스러움을 표현했죠. 그렇게 탄생한 게 '고수의 귤 까기 아-트'라는 제목이에요.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책 홍보 문구나 영상도 기발해요.

▷책을 편집하면서 이 책을 좋아할 만한 독자의 모습을 떠올려 봤어요. 2030대 제 또래 친구들이 가장 먼저 생각나더라고요. 사실 요즘 대학생·직장인들 웃을 일이 별로 없잖아요. 학교 다닐 땐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하느라 정신 없고 입사하면 매일 일에 치여 살고…그런 청년·친구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이 책이 딱 그렇잖아요. 귤이라는 게 대충 까서 먹으면 그만인 건데 그걸 열심히 엄청난 정성을 들여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고 웃긴 일이니까요. 거기에 MSG를 쳐서 보자마자 웃음이 터지고 그 웃음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의도가 책의 편집과 마케팅까지 연결된 거고요.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책 속 B급 코드를 웃기다고 여기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장난하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호불호가 갈리는 책은 맞아요. 책을 출간하기 전에 여러 분들한테 책을 보여 드리고 의견을 들었는데요. "책이 언제 나오느냐, 당장 사고 싶다"라고 열광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이거 너무 어렵다", "이런 것도 책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걱정도 됐었어요.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이 워낙 블랙홀 같아서 처음에 반신반의 했던 분들도 나중에는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귤 까기가 어려워서 주저했던 분들이 주인공 무키오의 매력에 빠지기도 했고요. 이 책을 선물했더니 친구가 좋아해서 본인 기분 역시 좋아졌다고 말씀한 분도 있답니다. 담당 편집자로서 제 마음까지 뿌듯해지더라고요.

'고수의 귤 까기 아-트' 책을 출판한 길벗스쿨 직원들의 작품 [사진 제공 = 길벗스쿨]
-주인공 무키오의 대사를 보면 유머가 수준급이에요. 책 저자는 어떤 분들인가요.

▷먼저 저자 분들의 역할을 설명할게요. 오카다 요시히로 선생님은 이 책에 나오는 귤 작품을 만든 분입니다. 카미야 케이스케 선생님은 무키오 가족 캐릭터와 책 스토리를 썼고요.

오카다 선생님은 그리스도 교회 목사님인데 만들기에 무척 관심이 많으세요. 어릴 때엔 세계 지도와 지구본을 좋아하셨대요. 둥근 지구가 평면의 세계 지도가 되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나봐요. 그 호기심과 궁금증이 귤로 연결돼 귤껍질로 동물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게 됐다고 합니다.

책의 웃음 코드를 담당하는 카미야 선생님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지금은 디자인 연구소에서 일하세요. 취미로 넌센스 코미디 콩트 모임인 '테니스 코트'에서 활동합니다. 전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봤는데 이 모임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선생님의 유머가 책에 잘 녹아 든 것 같아요.

'고수의 귤 까기 아-트' 책을 출판한 길벗스쿨 직원들의 작품 [사진 제공 = 길벗스쿨]
-담당 편집자로서 실제로 귤까기 아트를 따라해보셨나요.

▷저는 손재주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곰손'이에요. 다행히 주변에 '금손'들이 많아서 귤 까기를 해주셨어요. 회사에 누군가 귤을 사오면 앞장서서 귤 까기를 해 주신 길벗스쿨 출판사 직원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벌써 1월도 다 지나가고 귤의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고수의 귤 까기 아-트'의 계절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아쉽습니다. 귤 까기 아트는 여름 밀감, 유자, 머스크멜론, 아보카도, 자몽 등으로도 즐길 수 있으니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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