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타일] 나만의 아지트가 필요해 .. '케렌시아' 열풍
투우 경기 직전 소가 숨 고르는 곳
바쁜 내일 준비하는 재충전 효과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 ‘꺼내 먹어요’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적어도 이 가사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집은 그냥 집이 아니다. 바쁘게 일상을 누비다 잠시 숨을 고르는 은신처, 바로 ‘케렌시아’다.
TV 대신에 음악·조명시설 갖춰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 지난 12월 말 입주한 엄제일(보험사 상무·48)씨는 집 안에 독특한 공간을 마련했다. 가족끼리는 ‘숨겨진 방’이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카페 겸 서재, 가족실로 꾸민 방이다. 흰 벽처럼 보이는 미닫이 문을 열면 마술처럼 집 안의 다른 평범한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방이 나타난다. 이 공간만 노출 천장에 회색빛 벽, 어두운 바닥을 써서 카페처럼 꾸몄다.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방으로 조명의 조도를 낮추고 가구 컬러도 차분하게 맞췄다. 엄제일씨는 “아이가 어렸을 때 시립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경험을 살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했던 공간을 집 안에 구현한 것”이라며 “숨겨진 방 안에 있으면 밖의 소리가 잘 안 들릴 정도로 집중도가 높다”고 했다. 각자 퇴근 후 이 공간에서 자신만의 활동을 하는 것이 요즘 엄제일씨 가족의 일과다.
인테리어 시공업체 아파트멘터리의 윤소연 대표 역시 케렌시아 트렌드에 공감한다. “요즘 집 인테리어 의뢰를 받을 때 많이 듣는 단어가 안정감, 휴식”이라며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이상으로 본질적인 휴식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정서적 만족감 주는 인테리어 추구
원래 집은 쉬는 공간이라고? 보다 적극적 휴식 공간이라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 개인의 선호와 취향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고 여기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얘기다. 엄제일씨 가족처럼 개성 있는 공간을 꾸미거나 김현경씨 부부처럼 정서적 만족감을 주는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것도 특징이다. 아파트멘터리 윤 대표는 “화분을 가득 채운 베란다를 꾸미거나 방 하나를 만화방처럼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다른 공간을 포기하더라도 집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색다른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전미영 교수는 “단순히 쉬는 공간이라기보다 누군가의 방해 없이 자신에 집중·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케렌시아는 집에만 국한된 공간은 아니다. 현대인들이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모든 곳이 케렌시아가 된다. 단골 카페, 취미 공방, 수면 카페, 요가원 등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출근길에 늘 버스 뒷자리에 앉아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라면 버스 뒷자리가 나만의 케렌시아가 된다.
일터에도 케렌시아는 있을 수 있다. 바로 자신의 책상이다. 책상을 좋아하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미는 것도 일종의 케렌시아 만들기에 해당한다. 책상 인테리어를 즐긴다는 의미의 ‘데스크테리어족(deskterior族)’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핵심은 자기 집중이다. 집 안이든, 밖이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사무실에서도 자기만의 책상 꾸미기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자신만의 동굴에 해당하는 케렌시아에는 경쟁 사회에서 회피하려는 욕구와 함께 초연결 사회에 부담을 느끼는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며 “늘 스마트폰을 가까이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나치게 노출된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원하는 단절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덩달아 케렌시아 관련 인테리어 용품도 인기다. 대표적으로 조명이다. 주로 휴식을 취하는 저녁에 유용한 은은한 조명기구가 인기다. 방 안에 편안한 안락의자를 놓는 경우도 많다. 러그·향초 등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소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신세계백화점 생활팀 조재훈 바이어는 “2016년 4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입점한 조명 전문 매장의 매출이 초반 월 3000만원 수준에서 현재는 6000만~7000만원 수준으로 2배나 성장했다”며 “이 외에도 1인용 안락의자나 리클라이너 소파, 고급 침구 및 고가 침대 등 휴식 관련 상품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높다”고 전했다.
번 아웃(burn-out 소진·탈진) 시대, 단절과 휴식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현대인들을 위한 안식처, 케렌시아가 인테리어 트렌드는 물론 주거문화, 나아가 공간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깎아주면 또 100% 빚"..'부채 요요'에 빠진 한국
- 美 변심땐 폰 먹통..韓, 2조짜리 'GPS 독립선언'
- 북한 "금강산 합동공연 취소" 한밤 일방통보
- [디지털스페셜] 밥상 위기? '금값' 국가대표 물고기 반찬
- "사법부 수사하라" 줄잇는 고발..코너 몰리는 김명수
- 귤껍질로, 휴지로도 풀린다..스마트폰 지문 잠금 비상
- 한복 입고 선짓국 즐기는 외국인 "난 대한민국 국대다"
- 미인대회 최종 5인에 선발된 예쁜 '우리 딸'
- 자선단체 머리카락 기부..'켄싱턴 사는 여성' 알고보니
- 현대기아차, 경쟁사 대비 수익성 꼴찌 수준 '위험'..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