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화풀이 방화' 애꿎은 영세민들은 웁니다

김현주 입력 2018. 1.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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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홧김에 불을 지르는 우발적 방화 범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방당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전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629건 발생했는데, 절반 정도가 '단순 우발적' 또는 '가정불화'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서울장여관 화재도 피의자가 분노 상태에서 여러 명의 투숙객이 잠자는 여관에 불을 지른 방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불특정 다수에게 충동적으로 표출되는 일종의 분노범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화재는 투숙객들이 깊이 잠든 새벽 시간에 발생했습니다. 인화성이 강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데다, 워낙 건물이 낡아 피해가 컸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건물 옥상에는 창고 용도의 가건물이 있어 투숙객들이 대피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숙박업소인데도 화재에 대비하는 기본적 설비조차 갖추지 못했고, 다른 소방법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처럼 화재에 취약한 숙박업소가 소방 관리와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면서 기본적 소방안전시설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 화재 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소방당국의 철저한 점검과 관리가 요구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서울장여관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 6명은 모두 연기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1차 부검 소견이 나왔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지난 22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희생자 6명에 대한 부검을 한 결과 "전형적인 화재로 인한 사망이라는 1차 부검 소견이 나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경찰은 여관 1층 객실에 투숙했다가 숨진 박모(34)씨와 14세, 11세 두 딸의 신원에 대해 "정황상 인적사항은 맞지만, 신원 확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훼손됐다"며 "정확한 신원 확인은 DNA 검사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DNA 검사가 끝난 뒤 (장례를 위해) 전남 장흥으로 내려갈지 결정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전남 장흥에 있는 집을 떠나 여행중이었던 박씨 모녀는 국내 다른 여행지를 경유, 19일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장여관 105호를 숙소로 정해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화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난 시각이 새벽 시간인 점, 시신이 방 안에서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경찰은 세 모녀가 잠을 자던 중 화마(火魔)에 의해 희생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방화 피의자 유모(53)씨는 지난 20일 오전 3시께 술을 마신 뒤 여관에 들어가 업주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홧김에 근처 주유소에서 산 휘발유를 여관에 뿌리고 불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유씨는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해 자신의 범행임을 알렸으며, 경찰은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21일 유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22일 전날 구속된 유씨를 상대로 2차 조사를 했다. 유씨는 정신병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유씨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이었다. 피해 투숙객들도 대부분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저소득층이라고 주변에서 오래 살았던 이들은 전했다.

◆서울장여관 피의자, 중국음식점 배달원…정신병력은 없어

5명이 숨진 방화 참사가 벌어진 서울장여관은 쪽방과 마찬가지로 장기투숙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노후 건물이었다.

참사가 발생한 이 여관은 종로구 종로5가 뒷골목의 여관 밀집지역에 있는 '철근-콘크리트조 슬라브' 구조의 낡은 2층짜리 건물이다.

등기부등본을 통해 소유권을 확인한 결과 1989년이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이보다 더 전에 지어졌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면적은 1층 54.55㎡, 2층 48.9㎡로 총 103㎡ 정도다. 전체 객실은 8개이며, 창고와 객실 겸용으로 쓰는 '뒷방'이 하나 있다. 주인이 머무는 1층 입구의 내실까지 더하면 전체 방 수는 10개다. 각 방 넓이는 약 2평(약 6.6㎡) 정도다.

◆피해 투숙객 대부분 생활형편 어려운 저소득층

객실 출입문은 나무로 돼 있다. 대부분의 객실은 침대 방식이 아닌 이불을 깔고 자는 방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곳곳에 많이 지어진 모텔 등과 비교하면, 환경이 열악한 숙박시설인 셈이다.

이 때문에 현장을 찾은 종로구의회 김복동 의장은 이 여관에 대해 "사실상 쪽방 수준"이라고 말했다.

쪽방처럼 때때로 여관방에서 식사까지 해결하는 장기투숙객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사상자 10명 가운데 3명이 장기투숙객이었다. 이중 2명은 2년 전부터 투숙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불이 급격히 번져 화재가 커진 가장 큰 원인은 유씨가 뿌린 인화물질 때문으로 보이지만, 이곳에서 밥을 해먹던 장기투숙객들이 조리에 사용했을 연료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인근 주민은 "아마 장기간 투숙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부탄)가스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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