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美 힘자랑에 요동친 외환시장..'환율전쟁' 서막?
[서울경제] #장면1. 2018년 1월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기자회견,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약(弱)달러는 무역과 기회 측면에서 확실히 미국에 좋다.” #장면2. 2018년 1월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 인터뷰,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므누신 장관은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명확히 해야 할 것. 달러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장면3. 2018년 1월25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 기자회견,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최근의 환율 변동성 확대는 국제적 합의에 반하는 ‘누군가’의 언어의 사용 때문. 단지 환율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국제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가 있다.” #장면4. 2018년 1월25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 인터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달러는 점점 더 강해질 것. 나는 궁극적으로 강한 달러를 보고 싶다.”
불과 이틀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두고 벌어진 미국발(撥) ‘말싸움’에 전 세계 외환시장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달러 가치가 이틀 만에 1% 가까이 오르내리면서 전 세계 통화 가치를 요동치게 만들었고 금융시장에서는 미국발 ‘환율 전쟁’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원 넘게 떨어졌다가 다시 7원 가까이 뛰어올라,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와 트럼프 대통령의 강(强)달러 반대 발언이 겹쳤던 지난해 4월 이후 9개월여 만에 가장 크게 움직였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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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이번 므누신 장관의 발언이 미국의 수입산 세탁기·태양광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 직후에 나오면서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란 우려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입니다. 달러는 안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의 세이프가드 발동 후 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약세를 키우고 있었는데, 므누신 장관의 발언이 ‘미국 정부가 수출을 위해 약달러를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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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부터 지속된 약달러가 일시적으로 진정될 것으로 봤지만, 므누신 장관의 발언으로 이제 시장은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게 됐다”며 “투기적 포지션까지 달러 매도에 더 무게를 두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무역적자 줄이기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의지가 전 세계 외환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국 재무부 수장이 직접 나서 달러 가치를 3년여 만의 최저치까지 떨어뜨리자 원·달러 환율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1원60전) 가까이 급락한 1,058원60전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원·달러 환율 종가가 1,060원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14년 10월30일 이후 3년3개월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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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르드 IMF 총재는 25일(현지시간) “므누신 장관은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다시 한번 명확히 하기를 바란다”며 “달러화는 변동 화폐이고 달러화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드라기 ECB 총재도 유로존 정책금리를 동결한 이날 므누신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우리는 환율을 움직일 목적으로 경쟁적인 평가절하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의 환율 변동성 확대는 국제적 합의에 반하는 ‘누군가’의 언어의 사용 때문”이라고 비꼬았습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섰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약달러 선호를 공공연히 밝혔던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만에 “궁극적으로 강한 달러를 보고 싶다”며 판을 뒤집은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다시 경제적으로 강력해지고 있다”며 “달러는 앞으로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에 대해선 “정확한 그의 성명을 읽어봤다”며 므누신 장관의 발언이 맥락을 벗어나 잘못 해석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 외환시장은 또 한바탕 요동쳤습니다.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89.6 가까이 치솟았다가 89.4에 거래를 마쳐 4거래일 만에 상승 마감했습니다. 26일 서울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6원90전 뛰어오른 1065원50전에 거래를 시작, 1,063원90전에 마감하며 하루 만에 1,060원대를 회복했습니다.
므누신 장관도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달러 약세 발언은 맥락과 다르게 해석됐다“면서 ”외환시장에 개입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단기적으로 달러 약세의 영향에 대한 팩트를 언급한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달러 약세를) 지지하거나 유도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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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액면 그대로 ‘강달러 선호’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무역협정 재협상 압박과 더불어 중장기적인 달러화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크레디아그리콜의 발렌틴 바리노프 환율 전문가도 “구두상으로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약달러 선호가 글로벌 환율전쟁 리스크를 고조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장은 앞으로도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약달러 선호’ 속내를 드러낸 데 이어 유로존과 일본의 경제지표가 상향 일로를 보이면서 유로화와 엔화도 강세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달러 가치에는 가장 확실한 하락 압력입니다. WSJ는 “달러가 올해에만 3.7% 떨어졌다”며 “현재로서는 달러의 하락을 막을 재료는 미국 자신밖에 없어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연내 원·달러 환율이 1,010~1,020원대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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