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 장례식장이라도 차려달라"..애끓는 밀양 화재 유가족들

이은지 2018. 1. 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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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37명 중 19가족 빈소 못 구해
유가족들 "대책위 꾸리자"며 불만토로
오전부터 조문객 줄이어..일주일 운영
27일 밀양시 밀양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세종병원 화재 참사 사망자 37명의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밀양이 고향인데 부산이나 창원으로 가야 할 판이예요. 합동 장례식장이라도 차려주면 좋으련만…”

27일 경남 밀양시 삼문동 밀양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 만난 박순애(61)씨의 하소연이다. 박씨는 전날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어머니(이두순)를 잃었지만, 장례를 아직 치르지 못했다. 검사 지휘서(사체인도서)가 발급되지 않은 데다가 장례를 치를 빈소를 찾지 못해서다. 박씨는“26일 오전 11시쯤 밀양병원 안치실에서 어머니를 찾았는데 빈소가 2곳뿐이어서 지금도 안치실에 있다”며 “검사 지휘서가 발급돼도 당장 어머니를 모실 곳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번 사고로 숨진 37명의 유가족 중 19가족이 빈소를 마련하지 못했다. 밀양 시내 장례식장은 다섯 군데뿐이어서 빈소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답답한 유가족들은 이날 합동 분향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합동 장례식장을 차려줄 것을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27일 밀양시 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하지만 문 대통령이 합동 분향소를 떠난 뒤 청와대 관계자는 유가족에게 다가와 “합동 장례식장을 꾸리고 19가족의 빈소를 마련해 장례를 치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인근 부산이나 창원 등의 빈소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한 유가족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정부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가족대책위를 꾸리자”고 외쳤다. 합동 분향소 한쪽에 마련된 70여석의 좌석에 앉아있던 유가족들은 동의를 표하고 나섰다.

이번 사고로 누나(강귀남)를 잃은 강은수(67) 씨는 “밀양시가 개별적으로 유가족에게 연락하는 탓에 유가족들의 통일된 의견을 정부에 제시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가족대책위를 꾸려야 일사불란하게 대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은 조만간 가족대책위를 꾸리고 대표를 뽑기로 했다.

합동 분향소에서는 밀양시 공무원 등 자원봉사자 120여명이 조문객을 맞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분향소 주위에 마련한 4개의 밥차에서 조문객에게 무료로 식사를 나눠주거나 안내와 교통정리 등을 도맡고 있다. 합동 분향소는 일주일 동안 운영된다.
27일 밀양시 밀양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세종병원 화재 참사 사망자 37명의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이날 합동 분향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오전 10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되자 2시간 만에 1300여명이 찾은 것이다.

밀양 시내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이인호(35) 씨는 아내와 함께 7살짜리 아들, 8살짜리 딸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았다. 이씨는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물질적으로 해드릴 게 없어 마음으로나마 위로하고 싶어서 찾았다”며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이런 안타까운 참사가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밀양=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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