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 (16) 인공지능 박사의 우주 점령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2018. 1.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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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인공지능 천문학
ㆍ인간 천문학자들이 놓친 외계행성 발견…다음엔 외계생명체도?

천문학자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어쩌면 AI가 천문학자의 훌륭하고 믿음직한 조수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학문의 방향을 정하는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사진은 헬멧을 쓴 우주인과 성운을 합성해 만든 환상적인 이미지. elite-dangerous.wikia.com 홈페이지

은하는 태양계와 같은 행성계가 수천억개 모여 있는 집단이다. 은하에는 별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스와 먼지 같은 성간물질들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도 포함되어 있다.

은하의 형성과 진화 단계에 따라서 이들 구성원들의 비율도 달라지고 겉보기 모양도 달라진다. 은하들의 겉보기 모양이 그 은하의 물리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은하들을 형태학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외부은하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은하의 형태학적 분류법에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우주의 팽창을 관측적으로 증명했던 천문학자인 에드윈 허블이 제안한 분류법을 바탕으로 한 은하 분류법이 표준 분류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은하의 겉보기 모양, 즉 형태에 따라서 나선은하·타원은하·불규칙은하 같은 이름으로 나누는 방식을 허블 분류법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들 은하는 세부적인 기준에 따라서 더 자세하게 분류한다. 은하를 분류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몇몇 권위 있는 천문학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은하들이 찍힌 사진을 하나하나 눈으로 들여다보면서 은하를 분류했다. 사진 속 은하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돋보기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들의 눈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했다. 힘든 작업이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권위 있고 숙련된 천문학자들 덕분에 독립적인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몇 권의 권위 있는 은하 카탈로그가 만들어졌다. 천문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은하 카탈로그에 실린 은하 분류에 의존해서 연구를 해왔다.

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은하를 관측하는 관측기기가 발달하고 관측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은하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번에 관측되는 은하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은하를 눈으로 분류할 수 있는 권위 있고 숙련된 천문학자들만으로 넘쳐나는 은하들을 분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원로가 되어 있었다. 은하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오퍼 라하브(Ofer Lahav) 박사의 연구였다. 네덜란드로 유학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라하브 박사가 내가 공부하고 있던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다. 강연 제목은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은하 분류’ 정도였던 것 같다. 일종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은하분류 인공신경망’에게 기존에 숙련된 천문학자들이 분류해 놓은 은하들을 보여주고 어떻게 분류되었는지를 알려주면서 학습을 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후 새로운 은하를 보여주고 인공신경망이 스스로 은하를 분류하도록 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의 강연에 매혹되었다. 얼마 후 라하브가 이끄는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은하 분류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인공신경망에 대한 공부는 내게는 흥미롭고 새로운 도전이었다. 비록 내 박사학위 논문의 한 단원을 차지할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지는 못했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과 그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라하브 박사는 그 후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은하 분류 연구를 계속 이어갔다. 1992년에 벌써 천문학 저널 ‘Monthly Notice of Royal Astronomical Society’에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은하의 형태학적 분류’라는 논문을 실었다. 1995년에는 또 다른 천문학 저널에 숙련된 천문학자 6명이 은하를 분류한 값과 인공신경망의 분류를 비교하는 논문도 발표했다. 결과는 천문학자들의 분류와 인공신경망의 분류 사이에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분류상의 정확도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딥러닝이나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은하의 분류에 적용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나온 논문이나 천문학 학술대회 발표 논문의 제목만 보더라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은하 분류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7년 미국천문학회 학술발표장에서는 ‘딥러닝을 사용한 은하 분류(Galaxy Classifications with Deep Learning)’라는 제목을 단 논문 발표가 있었다. 또 다른 발표자는 ‘머신러닝을 활용한 은하 분류(Galaxy Classification using Machine Learning)’라는 제목을 달고 발표를 했다.

인공지능이 발견한 외계행성 미국 항공우주국(NASA) 및 구글 연구팀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지난해 12월 발견한 외계행성 ‘케플러 90i’(왼쪽에서 세번째). 케플러 90의 8번째 행성으로, 지구 반경의 1.32배이며 2545광년 떨어져 있다. NASA 웹사이트

라하브가 인공신경망을 사용해서 은하를 분류하는 작업을 할 때와 지금은 환경 조건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1990년대에는 딥러닝이나 머신러닝에 대한 기본적인 알고리즘은 있었고 활용 가능했지만 실제로 적용하기는 힘들었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이런 알고리즘을 감당할 수 없었다. 딥러닝에 사용할 입력 자료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공신경망을 활용해서 천문학자가 하나하나 은하 분류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배운 것을 학습을 통해서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한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컴퓨터 계산 능력에는 거의 제한이 없고 입력할 은하의 이미지는 넘쳐난다. 딥러닝을 통한 은하 분류 연구를 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은하 분류 작업은 일종의 패턴 인식 작업이기 때문에 딥러닝을 통해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잘해낼 수 있는 종류의 작업이기도 하다. 그동안 자동으로 은하를 분류해서 카탈로그화하는 작업은 꾸준히 이어져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서 은하 분류 작업이 한 단계 질적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천문학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낯설지 않을뿐더러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의 천문학자들과 이탈리아의 나폴리대학교의 연구원들이 중심이 된 중력렌즈 연구팀은 천문학 저널 ‘Monthly Notice of Royal Astronomical Society’ 2017년 11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중력렌즈 후보 천체를 56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어떤 천체를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바로 그 뒤 일직선상 먼 곳에 다른 천체가 또 있는 상황이다. 시공간이 휘어 있지 않고 편평하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천체만 볼 수 있을 뿐 그 천체에 의해 가려져 있는 먼 곳의 다른 천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질량을 갖고 있는 천체가 있으면 그 주변 시공간은 휘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천체도 질량을 갖고 있는 존재이니 주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가려져 있던 멀리 떨어진 천체에서 오는 빛은 우리가 보고 있는 천체 주변을 통과할 때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서 움직일 것이다. 이런 경우 빛의 이동 경로가 편평한 시공간을 통과할 때와는 다르기 때문에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 멀리 떨어진 천체가 우리 눈에 보이게 된다. 이런 현상을 중력렌즈효과라고 한다. 연구팀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이미지 학습을 할 때 사용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응용해서 중력렌즈 현상을 찾는 작업을 했다. 중력렌즈 연구를 위해서 찍은 수백만장의 사진 자료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 761개의 후보를 발견했다. 이들을 연구팀이 다시 분석한 결과 최종적으로 56개의 새로운 중력렌즈효과 후보를 발견한 것이다. 망원경을 사용해서 다시 한번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측자료가 수백만장씩 쏟아지고, 저장장치와 처리장치 및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용량 관측 데이터의 처리가 화두로 떠올랐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돕는 좋은 도구임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8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한 논문에서는 이론적인 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한 중력렌즈 이미지 50만개를 보여주면서 학습시킨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야사 헤자베(Yasgar Hezaveh) 연구팀은 이렇게 학습시킨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허블망원경이 찍은 이미지와 이론적인 모형을 비교하면서 중력렌즈의 물리적 특성 등을 계산하고 처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결과는 기존의 분석 방법보다 1000만배나 빠르게 자료를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 값의 정확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한 중력렌즈 연구의 가능성을 실증하는 논문이다.

2017년 12월에는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연구원과 구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포함된 연구팀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서 외계행성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외계행성이란 태양계 밖 다른 별 주위를 도는 행성을 일컫는 말이다. 연구팀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기존의 사진 관측 자료를 분석했는데, 지금까지의 분석 작업에서 놓쳤던 신호가 약한 외계행성을 발견한 것이다. ‘케플러 90i’와 ‘케플러 80g’가 바로 그 천체들이다. 인공지능이 천문학자들이 분석 작업에서 놓친 것을 같은 자료를 다시 살펴보면서 찾아냈다는 데 주목하면 좋겠다.

천문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외계행성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리는 작업을 수초 만에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obotic’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건설 중인 새로운 우주망원경과 지상망원경이 쏟아낼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외계행성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바르게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1세기는 거스를 수 없는 인공지능의 시대다. 인공지능에 압도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이미 여러 단계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작업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관측기기의 발달로 대용량 데이터 시대를 맞이해서 자료 처리에 힘겨워하고 있는 천문학계로서는 인공지능이라는 훌륭하고 믿음직한 천문학자의 조력자를 만난 것 같다. 당분간, 아니 상당 기간 동안 ‘인공지능 천문학’은 계속 이어지고 발전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조수의 역할을 벗어나서 스스로 학문의 방향을 정하는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관측 자료 처리와 분석과 해석까지 겸비한 ‘인공지능 천문학자’의 등장을 고대해본다.

▶필자 이명현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 애독자였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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