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날씨에도 세월호 리본 나눠주기 멈출 수 없죠"
[오마이뉴스 문주현 기자]
"사비로 만든 거니까 마음껏 가져가세요."
▲ 세월호 서명운동에 함께하는 전주 한옥마을 관광객들에게 오봉숙씨가 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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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1000여개씩 만든다는 세월호 리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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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1주일 후에 제 아이가 제주도에 가기로 되어 있었어요. 그때 그 참사가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죠."
마치 자신의 상처인 것처럼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체중이 줄고, 불면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만들기 시작한 것이 세월호 리본. 추위가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는 경기전 앞에서 서명운동과 세월호 리본 나눔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세월호 남문 농성장이 있어서 그곳에서 나눠줬는데 이제는 없다 보니까 이렇게 이곳에 나오게 되네요."
최근 계속 한파가 몰아쳐 모자와 마스크까지 꽁꽁 무장했지만 감기가 찾아왔다. 그래도 하루 2시간은 꼭 이렇게 서명을 받고 리본을 나눠준다. 그리고 두툼한 장갑도 준비했지만, 추위를 피하기보다는 견디기로 했다. 작은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놓고 손을 녹이지만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전주 한옥마을 앞에서 세월호 리본 나눔을 하고 있는 오봉숙씨. 영하의 날씨에도 리본 나눔을 위해 장갑을 끼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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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봉숙씨가 손수 만든 세월호 리본과 여러 스티커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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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시민들이 하는지도 몰라서 농성장을 지나치기만 했지요. 그런데 시민들이 하는 것으로 알게 되면서 1년 전부터 찾게 되었어요."
그렇게 농성장 지킴이가 된 오씨는 농성장이 없는 요즘이 허전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종종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세월호냐'는 말을 하는데 아직 더 알려야 해요." 지난해 오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보다 더 세월호를 기억하는 행동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2배~3배 더 노력을 해야죠. 아직 밝혀진 것이 없잖아요."
아직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원인과 진상에 대해 답하는 이가 없다. 지난해 3월 31일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의 낡은 선체는 여전히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씨는 그동안 특별법과 특조위 등이 생겼지만 제대로 진상규명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작 밝혀진 것은 세월호 의문의 7시간이 30분 더 늘어난 7시간 30분이라는 것.
▲ 전주 한옥마을 앞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 오봉숙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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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오봉숙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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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명을 왜 구하지 않았는지 진실은 단 하나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박근혜 적폐세력에 가로막힌 진실은 이제 전면 재조사, 재수사 되어야 합니다. 왜 구하지 않았는지, 침몰원인과 권력, 언론 유착, 박근혜 행적 등을 규명해야 합니다. 안전사회 건설과 피해자 지원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때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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