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없는 '을'들의 '두평 천국'..종로5가 달방여관촌
취객의 방화로 6명이 숨진 지난 20일 종로 서울장 여관 화재 사건. 여관이 위치한 서울 종로5가를 다시 찾았다. 사건이 일어난 서울장 앞에는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누군가 갖다 놓은 국화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취객이 불을 지른 ‘분홍색 건물 여관’ 말고도, 이 골목에는 페인트 칠이 벗겨진 여관 10여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른바 ‘달방 여관’이다. 보증금 없이 매달 월세만 지불하는 방을 말한다. 사건 사망자 6명 중 3명은 전남에서 서울 여행을 온 세 모녀였지만, 달방촌엔 이런 여행객은 드문 편이다.
“월셋방마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흘러드는 곳이 달방이예요.”
종로 5가 ‘OO장’에서 7개월째 거주하는 이모(59)씨에게 부탁했더니, 자기가 머물고 있는 201호 객실을 보여줬다. 플라스틱 옷장, 10㎏ 쌀 봉투, 아무렇게나 구겨진 분홍색 이불과 부탄가스가 6개 눈에 들어왔다. 방은 6.6㎡(약 2평) 남짓. 구석진 데마다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그는 “웃풍이 심해서 비닐로 덮었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이씨는 “젊은 시절 다단계에 빠져 모은 돈을 모두 날린 뒤부터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며 “오늘은 두 달 치 여관비 80만원을 내는 날인데 (돈이 없다는) 말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여관에는 이런 쪽방이 모두 12개 있다. 전기, 수도, 가스비를 내지 않는 대신에 한 달 숙박비는 약 40만원. 복도는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다. 기자가 찾은 21일, 이 여관 손님은 모두 장기 투숙객이었다. 투숙객은 모두 남성. 36세 투숙객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50~70대다.
여관 주인 박모(여·89)씨는 “간판만 여관이지 10년 전부터 장기월세방만 받는다”고 했다.
정모(65)씨는 이 여관에서 6년째 살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일용직 노동으로 근근이 생활했지만, 지금은 별다른 직업이 없다고 했다. 투숙비는 그간 모아둔 돈을 헐어서 내고 있다.
“서울장 방화사건을 보면서 ‘내가 이런 곳에서 죽으면 아무도 모를테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씨가 자기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그는 부모 얼굴도 모르는 천애 고아로 자라 슬하에 자녀도 없이 홀로 예순다섯해를 살아왔다고 했다.
달방여관 주인의 사정은?
유모(81)씨는 역시 이 골목에서 40년넘게 ‘□□장’을 운영 중이다. 누나가 운영하던 것을 물려 받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이런 데에 오겠어요. 한 푼 아쉬운 노가다(일용직 노동)도 할 수 없는 독거노인들, 정말 이곳이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나 우리 여관으로 오지.” 택배기사나 퀵서비스 기사 등도 손님이다. 이곳 역시 한 달 투숙비는 40만원. ‘□□장’ 주인 유씨는 이번 달에 총 240만원 방세를 받았다. 수도세랑 전기세 등을 제하면 손에 들어오는 건 약 140만원이다. 손님 중에는 월세를 못내는 사람도 적지 않아, 주인이라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씨는 여관 카운터에 앉아 ‘지퍼 끼우기’ 부업을 하고 있었다. 달방여관 월수입으로는 생활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씨가 동대문 의류공장에서 지퍼를 받아와, 매일 3000개쯤 끼우면 1만2000원 정도가 손에 들어온다. 그의 엄지손가락은 골무처럼 단단했고, 손톱 끝이 갈라져 있었다.
이 여관에서 다시 200m쯤 골목길을 걸어가니 또 다른 달방여관인 ‘서울장’이 보였다. 사고가 난 그 여관이다. 지난 20일 오전 1시쯤 술에 취한 중국식당 배달원 유모(53)씨는 “(성매매)여자를 불러달라”고 난동을 피우다 거절당하자, 서울장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이 불로 쪽방에서 잠을 자던 10명이 죽거나 다쳤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저소득 노동자였다. 사망자 가운데는 방학을 맞아 서울구경을 나온 세 모녀도 있었다. 서울장의 외관을 보면, ‘은 스프링클러가 설치’ 같은 말이 얼마나 ‘사치’인지 느껴진다. 대피를 위한 뒷문도, 옥상도 따로 없었다.
규모가 작은 달방여관은 소방시설법 사각지대다. 연면적 400㎡(약 121평) 이상, 지하층(혹은 창이 없는 층) 바닥면적이 150㎡ 이상인 건물들은 스프링클러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종로5가 부근의 달방여관 10곳 연면적은 100㎡(약 30평)에 불과했다.
시설이 허술해 심야에는 범죄표적이 되기도 한다. ‘□□장’ 주인 유씨는 “새벽에 술 취한 사람들이 제집처럼 드나들고 안에서 문을 잠궈버린다”며 “바로 옆 서울장 방화사건으로 겁이 나지만 마땅한 방범시설을 설치할 방법도 딱히 없다”고 했다.
달방은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다.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숙박업소 3200여곳 가운데 여관·여인숙은 386개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관에서 달방을 한다고 허가를 받는 규정이 따로 없는 데다, (시청에서)서울 시내 여관 담당자가 1명인데 어떻게 숫자를 다 파악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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