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신은 '그'를 보려고 무대 앞은 발 디딜 틈 없다

이승엽 인턴기자 입력 2018. 1. 24. 16:00 수정 2018. 1. 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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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성소수자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입지 넓혀가는 '드랙퀸'

# 장면1

새벽 1시가 지난 이태원.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트랜스(Trance)’라는 화려한 간판이 보인다. 철제 대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형형색색의 가발과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 레이스 스타킹에 높이가 10cm가 넘는 하이힐을 신은 남자들이 무대에서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가득 찬 클럽은 열기가 가득하다. 여장남자, ‘드랙퀸(drag queen)’의 세계다.

#장면2

2017년 2월23일 Mnet 음악 예능 프로그램 《골든 탬버린》에 등장한 가수 조권. 평소 TV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짙은 화장에 검은 가죽 슈트, 하이힐에 긴 머리의 금빛 가발로 여장을 한 ‘드랙퀸’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를 열창했다.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난 이렇게 태어난 거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가 무대 중간에 가발을 벗어 던지자 큰 환호를 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17년 12월22일 이태원의 한 바에서 공연 중인 ‘허리케인 김치’의 모습 © 허리케인 김치 제공

전업 드랙퀸만 해도 20명

‘드랙(drag)’은 타고난 성(性)에 따라 통용되는 옷과 행동 등을 다른 성에 맞춰 바꿔 입는 공연예술의 한 형태다. 그중에서도 무대에 오르는 게이(남성 동성애자)가 본인만의 개성에 여성성을 더해 만들어낸 캐릭터가 바로 드랙퀸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 설 때 자신의 이름이 아닌, 공연 정체성이 담긴 드랙퀸 네임을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드랙퀸은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와는 구별된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업 드랙퀸은 20명 내외다. 이들은 바에 매일 출근하며, 주말마다 드랙쇼를 선보인다. 비정기적으로 공연하는 드랙퀸은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평소엔 드랙퀸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회사원, 바텐더, 예술가 등 직업도 다양하다. ‘허리케인 김치’라는 드랙퀸 네임을 쓰는 인권운동가는 “드랙퀸은 저에게 예술의 형태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공연엔 요청이 있거나 의미 있는 행사가 있을 때 비정기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드랙’이 문화현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전 이태원 게이 커뮤니티에서부터다. 이때만 해도 ‘드랙’은 단지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으로 가는 음지의 영역이었다. 1995년 생긴 ‘트랜스’는 국내 최초의 드랙쇼 클럽이다. 오픈부터 지금까지 22년간 줄곧 그 자리를 지켜온 ‘마담’이 아직도 있다. 트랜스에서만 13년을 일했다는 김희선씨(가명)는 “낮엔 평범한 남자지만 밤엔 매력적인 여자로 변신하는, 그게 드랙퀸의 세계”라며 “우리는 이 바닥에서도 원조”라고 전했다.

드랙이 급속도로 성장해 음지 밖으로 나온 것은 2년이 채 안 된다. 소수의 성소수자만 찾던 트랜스도 작년부터 손님 수가 증가해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이태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 중 하나인 래빗홀도 작년부터 드랙퀸 공연을 매주 열고 있다. 작년에만 드랙쇼 전문 클럽이 세 곳이나 생겼을 정도다. 지난해 9월 오픈한 Q바의 이동미씨는 “원래 칵테일바로 시작했지만 콘셉트를 바꿔 재오픈한 뒤 10월부터 드랙 공연을 시작했다”며 “SNS를 보고 찾아오는 외국인부터 게이,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일반인 가릴 것 없이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실제로 드랙쇼가 있는 주말이면 클럽마다 1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다. 드랙퀸 ‘쿠시아 디아멍’은 “드랙쇼를 보러 오는 팬들의 유형도 다양하다”며 “저 같은 경우 게이보다 레즈비언, 바이(양성애자), 일반인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드랙이 더 이상 성소수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문화의 한 갈래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7월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드랙퀸 ‘쿠시아 디아멍’이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중문화로도 영역 넓혀가는 중

드랙 문화의 확산 원인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커뮤니티가 성장하고, 목소리를 밖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욕구가 증가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서 드랙 공연이 시작된 것도 성소수자 인권 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015년부터다. 2010년대 이후 쇼를 시작한 20~30대 드랙퀸도 분위기에 발맞춰 자신을 노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쿠시아 디아멍’ ‘빛하 믹주’ ‘보리’ 등 유명 드랙퀸은 SNS 팔로워 숫자가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른다. 해외에서 찾아오는 팬도 많다. 드랙 커뮤니티가 팬들과 적극적 소통을 통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주류 미디어에서도 드랙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관심 또한 점차 커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가수 조권이나 넷플릭스가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의 드랙퀸 서바이벌 프로그램 《루폴의 드랙 레이스》를 통해 드랙을 처음 접한 이들도 많다. 대학생 김희주씨는 “드랙 레이스를 통해 드랙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레 실제 공연을 보러 이태원 클럽을 찾게 됐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드랙퀸이 업소 공연이나 개별적인 활동을 너머 팀을 구성하거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거나, ‘책읽어주는 드랙퀸’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면서 점차 그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드랙은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문화다. 회사원 이진택씨는 드랙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 들어본다”며 “좀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 ‘웅’은 “반대 성(性)을 모사(模寫)한다기보다 남녀노소가 성별이분법 너머 다양한 젠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랙은 점차 그 저변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승엽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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