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야생본능 '회색늑대'는 어떻게 진돗개가 됐을까

김진호 기자 2018. 1. 24.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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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에는 다양한 종이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종은 회색늑대가 아닐까 싶다. 영화 ‘정글북’에서 주인공 모글리를 키우는 모습에서 친숙함을 느낀 독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회색늑대는 특유의 집단성까지 갖춰, 가장 강한 동물 중 한 종류로 꼽힌다.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북 아프리카 등에 서식하며, 호랑이 등의 대형 맹수를 제외하면 대적할 수 있는 생명체가 거의 없다.
 
늑대는 개과의 동물중 인간이 키우는 개와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러 늑대 종 중에서도 회색 늑대가 개와 가장 까깝다.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늑대와 개를 구분짓는 가장 명확한 기준은 야생성을 ‘완전히 길들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늑대의 야생성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최근 늑대와 개를 나누는 결정적인 기준인 ‘야생성’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늑대와 개의 기원과 분리 시점에 대한 논쟁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GIB 제공

●풍산개ㆍ진돗개 등, 늑대와 가장 닮은 건 한국 토종개

현재 지구상에서 늑대와 가장 많이 교류하는 민족은 몽골인이다. 자신들의 민족이 푸른 늑대와 사슴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몽골인들은 예부터 늑대를 신성시했다.

하지만 절대 길들여지지 않은 특성을 가진 늑대를 막는 길은 그들을 죽이는 방법 뿐이다. 몽골인들은 늑대를 신성시 함에도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 가축을 지키기 위해 늑대를 사냥하러 나선다. 또 몽골인들은 생후 15일 이내의 어린 늑대를 데려다 키우기도 하는데, 최대 2년 가량은 야생 본능을 잊고 인간과 어울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장담할 수 없다. 이는 한국의 풍산개나 진돗개 등에서도 간혹 보여지는 현상이다. 한국 토종개 중에도 2~3개월 이전인 어린 시기에 제대로 길들이지 않으면 나중에 제어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한국 토종 개들이 늑대와 가장 닮았다는 것이 최근 국내 연구팀의 유전자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최봉환 농촌진흥청 동물유전체과 연구사팀은 고대개와 현대개, 야생개, 외국개, 한국 토종개 등 총 33품종 2258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토종개가 다른 어떤 종의 개들보다 늑대와 닮았다는 것을 확인해 지난 11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개와 늑대의 단일염기다형성(SNP)을 조사했다. SNP는 같은 종이나 속에서 단일한 DNA 기본 염기 서열 중 차이를 보이는 유전적 변화 또는 변이를 말한다. 인간의 경우 33억 개의 염기쌍에서 약 0.01%가 SNP이며, 사람마다 염기 1000개 당 한 개씩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연구사는 “(SNP 분석에서)한국 토종개들은 다른 개보다 늑대나 코요테의 유전자형과의 차이가 가장 적었다”며 “특히 풍산개, 경주개동경이, 진돗개 순으로 늑대와 더 많이 닮은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즉 국내 토종개들은 개중에서 야생성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종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조사 결과 한국 토종개가 회색늑대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지만, 중국의 차우차우와 샤페이, 일본의 아키타나 시바견 등도 아프간하운드나 시베리안 허스키 등 유럽 고유종들보다는 유전적으로 늑대와 더 닮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전적으로 늑대와 한국토종개가 매우 가까우며, 그 중에서도 풍산개, 경주개, 동경이, 진돗개 순으로 더 많이 닮은 것이 확인됐다. 다른개의 비해 한국토종개가 늑대처럼 야생본능을 갖고있을 확률도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 농촌진흥청 제공

● 늑개→개로 바뀐 시점… ‘1만7000년 전일까, 후일까'

그렇다면 늑대에서 한국 토종개로 분화된 시기는 언제일까? 사실 이는 잘못된 질문이다. 늑대에서 한국 토종개로 바로 분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과의 공통조상은 코요테와 여우, 늑대 등으로 분화됐는데, 어느 시기에 (개와 가장 가까운)회색 늑대 종이 발생했다. 이후 회색늑대가 야생성을 잃고 길들여져 여기서 개가 출현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런 과정에 대해서 학자별로 큰 이견은 없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다. 농경사회 이전인 1만7000년 이전(구석기 시대)에 사육화가 됐다는 의견과, 농경사회를 시작한 뒤인 1만7000년~7000년 전 사이(신석기 시대)에 늑대와 개가 분리됐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2015년 5월 ‘커런트 바이올로지’를 살펴보면 개가 농경사회 이전에 등장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하버드의대 유전학과 폰투스 스코그룬드 교수팀은 약 3만5000년 전 고대 러시아 타이미르반도 지역에서 생활했던 늑대 화석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지역의 생활하던 늑대가 현대의 늑대와 개들의 조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스코그룬드 교수는 “현재 이 지역에 널리 있는 시베리아허스키종의 DNA와, 고대 러시아 지역  늑대가 유전적으로 유사했다”며 “이를 감안하면 3만5000년 전에서 1만7000년 전 사이에 인간과 초기의 개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반대로 2017년 8월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게재된 논문에선 “아직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주장을 볼 수 있다. 미국 코넬대 생태및진화생물학과 애비 그레이스 드레이크 교수팀은 고대 늑대(혹은 개)의 하악(아랫턱)뼈를 3차원으로 분석한 결과, 개과 동물은 두개골과 하악뼈의 진화가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뼈의 형태로 종을 구분짓는 것은 유전자 분석이 활성화 되기 이전부터 줄곧 사용돼온 방법이다. 최근에는 드레이크 교수팀처럼 3차원 스캔기술을 사용해 분석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직선형 하악뼈를 가진 늑대와 달리,개는 비교적 곡선형 하악뼈를 가졌다는 점에 착안해 러시아와 알래스카등에서 발견된 화석을 비교했지만 그 형태를 명확히 구분짓는데는 실패했다. 대신 초기 사육화 단계에서 늑대가 개가 되는 과정에서 머리형태의 변화와 턱의 형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드레이크 교수는 “개과 동물의 진화가 형태학적으로 요인이 다양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로선 개가 언제 명확히 늑대로부터 분리됐는지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늑대에서 개로, 그 개가 다시 한국 토종개로 오기까지의 여정은 아직 더 많은 자료와 분석이 뒷받침 돼야한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인 개의 출현 시기는 아직까지 과학계의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김진호 기자 tw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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