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미 반토막.." 김영란법 '5→10만원'에도 싸늘

최민지 기자 입력 2018.01.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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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개정? 현장에선]화훼·축산·농수산 상인들 반응 냉랭..유명무실화 지적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김영란법) 개정안이 시행된 17일 오후 대구 중구 대백프라자 식품관에 농축수산물 설 명절 선물 세트가 진열돼 있다. / 사진=뉴시스


"이미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선물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려도 별 기대 안 한다." 설 연휴를 앞두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상 일부 선물 상한액이 올랐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했다.

최근 찾아간 서울 시내 주요 화훼·축산·농수산시장 상인들은 설 연휴 매출을 걱정했다. 이미 청탁금지법으로 생계에 치명타를 맞은 상황이라 기대할 게 별로 없다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달 17일부터 청탁금지법 선물 가액 상한선(5만원)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시행했다.

22일 방문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의 상인들은 선물값 인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시장에서 25년째 축산 도매업을 하는 S축산 대표 김영신씨(56)는 " 5만~10만원짜리 한우 세트를 그럴듯한 선물용으로 꾸미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어떻게든 구색을 갖춰도 포장비용까지 생각하면 안 파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청탁금지법의 직격탄을 맞은 화훼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경조사비를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는 대신 화환만 했을 때 10만원까지 가능하도록 했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같은 날 국내 최대 화훼시장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꽃시장은 주요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인사시즌임에도 한산했다. 주문이 끊긴 탓에 문을 닫거나 주인이 자리를 비운 상점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양재동꽃시장에서 20년 넘게 화훼업을 해왔다는 유회은씨(59)는 "개정안으로 매출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다"며 "볼품없는 5만~10만원 짜리 화환을 보내느니 조의금만 보낸다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5만원짜리는 유통비 생각하면 차라리 안 파는 게 남는다"고 말했다. 조의금을 5만원 할 경우 화환은 5만원까지 가능하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특히 전복이나 굴비 판매점 등이 울상이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40년째 건어물을 판 김규천씨(80)는 "청탁금지법 탓에 굴비 판매가 50% 줄었다"며 "40만~50만원하는 최고급 굴비 세트는 찾는 사람이 없어 아예 들여다 놓지도 않았다"고 했다.

전복을 파는 이옥자씨(60)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10년 동안 단체주문을 해왔던 회사와 거래가 끊겼다"며 "전복은 15만원 이상 돼야 선물 구색을 갖출 수 있는데 10만원이면 전복 개수도 부족해 선물용으로 볼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농산물 시장에서는 그나마 희비가 엇갈린다. 청과물 시장 상인들은 상한액 조정으로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지만 인삼·홍삼 판매상들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서울 영등포 청과시장에서 15년 동안 영업을 한 김나영씨(67)는 "과일은 웬만하면 10만원을 안 넘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선물할 수 있다"며 "매출이 훌쩍 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난해 추석 때 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북 영주시 풍기인삼시장에서 인삼을 판매하는 김선철씨(70)는 "청탁금지법으로 매출이 이미 크게 떨어졌다"며 "10만원으로 올린다고 해도 소비심리가 살아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청탁금지법 개정에서 소외된 식당업 종사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한다. 서울 여의도 중식당 지배인 최병하씨(55)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직원을 기존 10명에서 3명이나 줄이고 매출도 30%가 감소했다"며 “가액 기준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은 이미 법이 유명무실해져 실제 생활에 영향이 없다는 대답이 많았다. 각자 필요에 따라 액수 상관없이 선물할 사람들은 다 한다는 얘기다.

실제 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 국민적 관심도 떨어졌다. 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청탁금지법 신고가 들어온 적도 없을뿐더러 접수되더라도 신고가 처벌까지 이어진 적은 전무했다"며 "다른 경찰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개인의 사생활 영역인 만큼 법 위반을 증명해서 처벌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2016년 9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접수된 청탁금지법 신고 4052건 중 과태료나 기소 등 실제 제재가 가해진 것은 1%도 안 되는 40건(금품 수수 38건, 부정청탁 2건)에 불과했다.

최민지 기자 mj1@mt.co.kr, 이동우 기자 canelo@, 최동수 기자 firefly@mt.co.kr, 방윤영 기자 byy@mt.co.kr, 이영민 기자 letswin@mt.co.kr, 김영상 기자 video@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