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최고 실력자 무덤서 나온 금실은 백제 것"
당시 일본 내 백제의 영향력 시사
서기 645년 일본의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을 주도한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614~669·사진) 무덤에서 나온 금실(金糸)이 백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일본 학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무다구치 아키토(牟田口章人) 일본 데쓰카야마대 교수는 최근 공주대 백제문화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문 '익산 미륵사 출토 금실에 대한 일고찰'을 통해 이와 같이 밝혔다.
다이카 개신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중앙집권제 정치 개혁이다. 당시 정변을 이끌고 율령제 개혁을 추진했던 후지와라노 가마타리는 이후 헤이안(平安) 시대 최고 명문가인 후지와라씨의 시조가 됐는데, 백제계 인물이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의 무덤 속에 묻혀 있었던 금실 조각이 한·일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 줄 열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이 황급히 덮었던 무덤
1972년, 한 고분의 발굴 소식에 일본 열도가 떠들썩했다. 고구려 벽화 속 인물을 쏙 빼닮은 벽화가 그려진 다카마쓰(高松塚) 고분이 발굴된 것이다. 당시 TV아사히 기자였던 무다구치 아키토 교수에게 발굴단의 한 학자가 넌지시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다카마쓰보다 더 엄청난 고분이 있는데…. 당신은 기자니까 한번 취재해 보시오." 그것은 1934년 은밀히 발굴됐다가 까맣게 잊힌 오사카(大阪)의 아부야마(阿武山) 고분, 바로 후지와라노 가마타리의 무덤이었다.
기상관측소를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우연히 발견된 고분. 시신은 일왕만 쓰는, 옻칠한 관모를 쓰고 있었다. '천황급 무덤'이라 여긴 일본 발굴단은 카메라와 X레이로 촬영한 사진만 남긴 채 무덤을 황급히 덮었다. 일본에서 일왕 무덤 발굴은 금기다. 무다구치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유리건판 사진들을 찾아내 1980년대 초에 정리했다. 관모의 X레이 사진 속에서 금실이 뚜렷하게 보였다. '일본서기'에 최고위관인 대직관(大織冠)이 된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가 썼다고 기록된 '금실로 장식한 관모'가 분명했지만 제작 기술의 유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금실의 비밀, 미륵사탑에서 풀리다
2009년, 한국의 익산 미륵사지석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미륵사 창건자인 무왕의 왕비가 '삼국유사' 기록처럼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씨의 딸이었다고 적힌 사리봉안기에 사람들 관심이 집중됐고, 함께 나온 많은 유물 중 금실은 2014년 발굴 보고서가 출간될 때까지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이건?" 무다구치 교수는 최근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이 건넨 미륵사지 금실 사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부야마와 똑같습니다!" 길쭉한 꽃잎 모양 등으로 가공된 금실은 비단에 수놓은 꽃·구름·용 무늬의 테두리를 장식했던 것으로, 비단은 사라지고 실만 남은 상태였다. 아부야마 고분 관모의 X레이 사진에 나온 금실도 같은 형태였다. 무다구치 교수는 "이것은 고대 일본과 백제의 관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미륵사지석탑이 건립된 것은 서기 639년이고, 아부야마 고분이 조성된 건 백제 멸망 9년 뒤인 669년이었다. 금실로 장식한 관모를 만든 사람은 백제 유민이거나 백제계 기술자였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후지와라노 가마타리와 같은 관모를 썼던 최고위관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의자왕 아들 부여풍이었다. 이병호 관장은 "다이카 개신 이후 새롭게 바뀐 일본 고대의 복식제도 중 첫 실물이 백제 유물과 유사하다는 것은, 당시 백제가 일본에 미친 영향력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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