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오펜하임 부인 "작품 재설치가 해결책"

김종목 기자 입력 2018. 1. 2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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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해운대구 ‘꽃의 내부’ 폐기 논란

지난달 철거·폐기된 데니스 오펜하임의 ‘꽃의 내부’. 부산비엔날레 제공

“재설치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미국 설치미술 대가 데니스 오펜하임(1938~2011)의 부인 에이미 오펜하임이 ‘꽃의 내부’ 철거·폐기를 두고 재설치 입장을 내놓았다. 부산 해운대구는 폐기를 두고 공식 사과했다.

에이미 오펜하임은 경향신문과 두 차례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22일 인터뷰에서 오펜하임은 “작품 재료는 폐기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재설치(re-construction)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폐기 이전 오리지널의 재료를 만든 회사가 왜 변색과 부식에 책임지지 못했는지 의아스럽다”고도 했다.

‘꽃의 내부’는 2010년 설치된 작품으로 오펜하임의 유작 중 하나다. 해운대구는 2009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에 작품 선정 등을 의뢰했다. 이듬해 해운대해수욕장 만남의 광장 부근에 ‘꽃의 내부’를 설치했다. 예산은 8억원이 들어갔다. 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는 이 작품을 지난달 11~17일 철거·폐기했다.

사업소 측은 폐기 이유로 부식과 민원 제기를 들었다. 2016년 태풍으로 물에 잠긴 뒤 부식이 심해져 철거가 불가피했다고 했다.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폐기 이유로 들었다. 김인철 해운대구 관광시설관리사업소장은 “주민들이 작품을 두고 ‘저게 뭐냐’며 철거 민원을 오래 제기했다. 주민들이 작품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점도 지자체 공무원인 우리로서는 큰 고민거리였다”고 했다.

에이미는 지난 19일 인터뷰에서 “‘공공 관점에서 이 파괴 행위는 미술품 창작 활동에 나쁜 선례가 된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부산비엔날레 측에 보냈다”고 했다. 철거·폐기에 관한 소식을 부산비엔날레조직위나 해운대구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여동생이 영국 ‘데일리메일’ 기사 링크를 알려주고 난 뒤에 폐기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뉴스를 마음이 아픈 시기에 들었다. 1월21일은 데니스의 80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데니스 오펜하임 재단’ 대표인 에이미는 “오펜하임의 모든 작품과 그에 관련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내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것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미술계에서는 공공미술과 거리 시설물을 구분하지 못한 폐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부산은 비엔날레를 여는 도시가 아닌가”라며 “미술적 가치가 커 세운 작품인데, 왜 설치했는지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보기 싫다’는 이유로 폐기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팝아트 같은 데 경도된 한국 문화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태”라고 했다.

홍경한 강원국제비엔날레 감독은 “작품을 가로등이나 환기구처럼 단순한 시설물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1970년대 독일 뮌스터시(市) 시민들이 조지 리키와 헨리 무어의 작품에 반감을 갖자 문화계 관계자들까지 나서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설득한 사례를 예로 들며 “국제적인 문화예술행사로 거듭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했다”고 했다.

작품 복원을 말하는 이도 나왔다.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던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은 “문화행정 부재가 빚은 참사”라며 “지금 중요한 건 행정의 파국을 바로잡는 미술계와 시민사회의 공론이다. 작품을 복원하는 쪽으로 논의가 모아질 것이다. 재료, 기법, 규격 같은 시방서가 있다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해운대구는 23일 유족과 시민에게 ‘무통보’ 철거를 사과했다. 해운대구는 “유족과 미술계·문화계 관계자들의 상처를 조속히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재설치 등에 관해서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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