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함식' 꿈꾸는 문기한, "여친 초콜릿 사줄 돈만 있음 돼"

임기환 2018. 1. 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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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함식' 꿈꾸는 문기한, "여친 초콜릿 사줄 돈만 있음 돼"

(베스트 일레븐)

나폴리의 핵심 미드필더 마렉 함식은 소속 클럽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으로 유명하다. 고슴도치처럼 빳빳하게 세운 헤어스타일로도 유명한 함식은 “왁스 살 돈만 있으면 된다”라며 여러 빅 클럽의 구애를 뿌리쳐 왔다. 그렇게 2007년부터 10년 넘게 나폴리만을 사랑했다. 자본이 잠식한, 돈만 쫓는 축구의 시대를 거스른 ‘피치의 로맨티스트’이자 ‘의리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K리그에도 함식을 꿈꾸는 남자가 있다. 부천 FC 1995의 주축 미드필더 문기한이다.

최근 문기한은 이적이 아닌 부천 잔류를 선택했다. K리그 클래식 팀과 해외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자신에게 제1의 전성기를 열어 준 부천과의 의리를 지켰다. 문기한은 23일 오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에 위치한 라마다호텔 서귀포에서 “축구를 하면서 중추 역할을 해본 팀은 부천이 처음이다. 부천은 나에게 기회를 많이 준 감사한 팀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어린 친구들이 나를 보면서 꿈을 키울 수 있는 상징적인 선수로 남고 싶다. 여자친구가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그녀에게 초콜릿만 사줄 돈만 있으면 된다(웃음). 함식이 그랬듯이 말이다(웃음).”라며 부천과 재계약을 결정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어떤 팀에서 오퍼가 오더라도 부천과 의리를 지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문기한과 일문일답.


오랜만이다. 2일부터 제주 전훈을 왔다는데 근황이 어떤가.
“20일 정도 머물러 있다. 이틀 가량을 쉬고 훈련했다. 한곳에서만 전훈을 하니까 지금이 2차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팀이 젊어졌다. 노장보단 가능성 있는 신인이 많이 들어왔다. 위로는 세 명 정도밖에 없다(웃음).”

어느덧 최고참급이 됐다. 주장 완장도 2년 연속 단다. 책임감이 커질 것 같다.
“초·중·고등학교 때 다 주장을 해봤는데, 프로 데뷔 이후로는 10년 만에 완장을 단다. 아마추어 때는 감독님이 시키는 것만 하는 게 맞는 것이고, 그게 곧 좋은 팀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프로에선 모두가 성인이고 각자 가진 생각이 확고하다. 나도 주장 첫 시즌엔 감독님이 원하는 걸 선수들에게 어떻게 하자고 전하는 것을 위주로 했다면, 이번 시즌은 선수들의 얘기해 귀를 기울이고 감독님 및 코칭스태프와 합의점을 찾는 가교 역할을 더 잘 해야 될 것 같다. 지난 시즌엔 (김)형일이 형 등 경험 많은 형들이 후반기에 많은 걸 챙겨줘서 도움이 됐고, 팀이 힘을 받는 계기가 됐다.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감독님께선 코치만큼이나 선수단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등 승격 문턱에서 좌절했다. 어떤 게 부족했다고 보나.
“재작년과 작년에 우리가 좋은 위치에 있다가 하락세를 탔는데 지나고 나서 왜 그랬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다수가 신인이라 스쿼드는 물론 경험면에서도 많이 부족해 막바지엔 다급한 경기를 했다. (리그) 끝으로 갈수록 경험과 담대함이 힘을 발휘하는데, 우리는 중요한 경기에 가면 해야 할 것들을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지난 2년의 경험이 이번 시즌을 도전하는 또 다른 배움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그렇다. 선수단 전체적으로 큰 교훈과 경험을 얻었다. 올해만큼은 분위기가 좋다. 기존 선수들을 지키면서 부족한 부분을 영입했고 신인들 능력도 좋다. 그래서 지난해보다 신인 가용폭도 늘어날 것 같다. 그만큼 실력 좋은 친구들이 보인다. 대학 졸업하고 프로에 오면 미흡해질 수 있는 열정과 간절함이 충만한 선수들이 있다. 신인 후배들에게 프로 의식을 갖게 해주고 싶다. 아마추어 때는 선배들 눈치 보고 주눅 든 플레이도 하지만 여기선 그러지 마라고 얘기한다. ‘너희가 한 만큼 얻어가는 곳’이라고 말을 해준다. 운동장에선 형이라고도 부를 필요가 없다. 세대가 변하면서 그런 게 무너지고 있다. 권위 의식이 무너져야 어린 선수들이 당돌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우린 감독님부터가 권위적이지 않다. 선수들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밥이나 커피도 자주 사신다(웃음). 그런 게 선진 축구로 가는 방향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축구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1989년생)인데 어려운 선택을 했다. 어떤 점이 문기한을 부천에 남게 했나.
“내가 확실히 자리를 잡고 중추 역할을 해본 팀은 부천이 처음이다. FC 서울에서는 입지가 불안정했고 군대에서 경험을 쌓아 대구 FC 임대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부천에선 많은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다른 팀에 가기보다는 나를 사랑해주는 이 팀에 남아 간판으로 커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선수로서 더 높은 꿈을 꾸고 열정을 갖는 건 당연하다. 나 또한 고민이 적지는 않았다. 일본과 동남아, K리그 클래식 팀에서 이적 제의가 왔다. 그러나 (오퍼가 온) 다른 구단에선 부천만큼 나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 부천은 지난 2년 동안 내가 했던 플레이를 잘 알아봐 주셨다. 모든 스포츠맨들이 1등만을 바라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부천에서만큼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부천 팬과 구단이 주는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

더 높은 팀에서 제안이 와도 유효한 다짐인가.
“서울 소속일 때부터 ‘내 꿈은 원 클럽 맨’이라는 인터뷰를 자주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스콜스나 바르셀로나의 사비 에르난데스 같은 원 클럽 맨이 되고 싶다. 그들은 클럽의 문화나 역사를 만든 위대한 선수들이다. 매 시즌 노력을 통해 클럽의 아이덴티티를 정착시키는데 일조했다. 부천이 그런 내 꿈을 이루는데 적합한 팀이라는 생각을 한다. 구단 사무국장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다른 팀에 가서 좋은 선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팀’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선수가 되는 것 또한 큰 도전이라 생각한다. 우선은 좋은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야 한다.”

이 시대에 보기 힘든 로맨티스트 같다.
“이 팀을 이끌고 클래식에 올라가는 꿈을 항상 꾼다. 미래에 전용구장이 생기고 헤르메스(부천 서포터)의 열정적인 응원을 받으면서 클래식에서 뛴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뛴다. (부천이) 빠르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변화하려는 팀의 모습에 좋은 방향성을 느꼈다. 재계약을 선택했던 데에는 그런 부분도 작용했다. 선수로서 가족도 돈도 생각해야 되지만 축구 선수는 그래도 일반적으로 적지 않게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팀이 (돈을) 많이 준다고 떠나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상징적 선수로 남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여기고 있다. 내가 만약 국가대표급 활약을 해서 대표팀에 뽑힌다면 다른 팀 보다는 부천에서 대표가 나오는 그림이 좋을 것 같다(웃음). 여자친구가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사람 초콜릿 사줄 돈만 있으면 된다(웃음). 나폴리의 함식이 왁스 바를 돈만 있으면 된다고 했듯이 말이다(웃음).”

근래 인터뷰를 다니면서 듣기 어려운 감동적 이야기다. 그렇게만 된다면 후배들, 나아가 한국 축구에 좋은 롤 모델이 되리라 믿는다.
“사실 프로의 가치는 돈이 맞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일등을 꿈꿔도 그걸 이루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나도 현실적일 수 있다. 내겐 클래식 리거이냐 챌린지 리거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경기장에 서 있다는 자체에 감사한다.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선수가 나오는 것도 축구판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몇 년 잘해서 이적해야지 하는 선수도 적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프로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구단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알려주고 도와주고 싶다. 최근 한국 U-19 대표팀에 뽑힌 (추)민열이에게도 ‘너는 부천 선수니까 어딜 가든 주눅 들지 말고 거기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라. 바깥에서 식당 이모님이라도 인사를 잘 하고 다녀라’고 했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들이다. 다만 저 친구가 어디 소속이지라고 사람들이 궁금해 했을 때 (선수와 구단에) 좋은 이미지가 심어졌으면 해서 하는 얘기들이다.”

이번 시즌 목표는 승격이 될 것 같은데 개인적 목표와 팀 목표를 말해 달라.
“감독님께선 항상 져도 팬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축구를 하자고 하신다. 지난 시즌 나왔던 무기력한 경기를 되짚어 주시면서 ‘그렇게는 하지말자’고 하시더라. 누가 봐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바그닝요 등이 이적했지만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왔고 그들과 조합을 맞춘다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재작년 공격 포인트 12개를, 작년에 13개를 해서 올해는 14개를 하고 싶다. 시즌 개막 전에 항상 다이어리를 사는데 이번에는 ‘공격 포인트 하나 더 하기’를 위시리스트로 적었다. 작년에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개인상(챌린지 베스트 11 미드필더)를 받았는데, 도움상이나 MVP 등 적어놓은 건 많다(웃음). 동기부여를 위해서다(웃음).”

글·사진=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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