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월드줌人] "내가 '불가촉천민'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우릴 죽이려 했다"

김동환 2018. 1. 2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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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촉천민(달리트·Dalit) 남편을 갱단에 잃고 2년 가까이 홀로 슬픔을 삭이며 카스트(신분제) 철폐를 주장해온 인도 여성의 사연이 공개됐다.

갱단에 살인을 사주한 여성의 아버지는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어머니는 무죄로 풀려났다. 부모를 선처하지 말라며 법정에서 목소리 높인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BBC 인도판에 따르면 카우살야와 그의 남편 샨카르는 2016년 3월의 어느날, 타밀나두 주(州)에 있는 옷가게를 다녀오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든 갱단이 휘두른 칼에 몸 수십곳을 찔렸다.

카우살야에게 칼을 휘두른 남성은 “왜 그를 사랑했어! 왜!”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카우살야와 그의 남편 샨카르는 2016년 3월의 어느날, 타밀나두 주(州)에 있는 옷가게를 다녀오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든 갱단이 휘두른 칼에 몸 수십곳을 찔렸다. 카우살야에게 칼을 휘두른 남성은 “왜 그를 사랑했어! 왜!”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카우살야의 아버지는 전과가 있는 남성 5명을 끌어들여 5만루피(약 84만원)를 주고 두 사람을 죽이라고 요청했다.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샨카르는 결국 숨졌다. 카우살야는 수십곳에 상처를 입고 20일 동안 치료받았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이 그를 휘감았다. 나중에 수사에 나선 경찰로부터 살인을 청부한 이들이 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카우살야는 분노가 치밀었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샨카르는 불가촉천민이었다. 카우살야는 그보다 상위인 테바르(Thevar·고대 남인도 왕조의 후예)였다. 그의 집은 부유했고, 부모는 애초 딸과 결혼시킬 사람까지 정해뒀다. 하지만 카우살야는 운명을 거부했다. 카우살야와 샨카르의 교제는 인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언젠가 비극으로 끝날 여정이었던 셈이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샨카르는 결국 숨졌다. 카우살야는 수십곳에 상처를 입고 20일 동안 치료받았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이 그를 휘감았다. 나중에 수사에 나선 경찰로부터 살인을 청부한 이들이 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카우살야는 분노가 치밀었다.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학교를 그만두고 샨카르의 고향으로 달아난 카우살야. 그를 찾아온 카우살야의 부모가 계속해서 딸을 설득했지만 말을 듣지 않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를 탓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2015년 7월에 결혼한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신혼생활은 8개월 만에 비극을 맞이했다.

현장 인근 CCTV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 이들에게 칼을 휘두른 갱단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경찰 조사 결과 카우살야의 아버지는 전과가 있는 남성 5명을 끌어들여 5만루피(약 84만원)를 주고 두 사람을 죽이라고 요청했다.

특히 ‘대낮’에 일을 저지르라고 주문했는데, 신분제를 망각하고 자기보다 낮은 계급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안겼다.

 

샨카르와 카우살야의 한때.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증인들이 재판을 오가는 사이 카우살야는 부모의 보석을 명령하지 말라고 법원에 무려 58차례나 요청했다. 그는 “엄마는 날 죽이겠다고 수시로 말했다”며 “그 남자와 결혼하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게 더 낫다는 말을 했다”고 판사 앞에서 주장했다.

재판부는 카우살야의 아버지와 범행을 저지른 남성 등 총 6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만, 그의 어머니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카우살야는 판결에 저항했다. 그는 어머니도 범행에 가담했다며 죄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생이 조각난 카우살야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무술을 배우고, 신분제와 관련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신분제가 얼마나 나쁜가를 주장했다. 달리트가 연주하는 악기에도 손을 댔다. 그의 사연을 접한 이들이 페이스북 등에서 각종 비난메시지를 보내고 심지어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했지만 카우살야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카우살야는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는 “필요하다면 신분제를 엎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생이 조각난 카우살야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무술을 배우고, 신분제와 관련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신분제가 얼마나 나쁜가를 주장했다. 달리트가 연주하는 악기에도 손을 댔다. 그의 사연을 접한 이들이 페이스북 등에서 각종 비난메시지를 보내고 심지어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했지만 카우살야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샨카르가 죽고 나서 의료진은 카우살야에게 남편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전화에는 많은 문자메시지가 보관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교제하던 시절, 남의 눈을 피해 메시지를 교환하던 그때 작성한 글도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난 네가 무척 그리워.”

샨카르가 2015년 여름의 어느날 쓴 글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우살야는 “나도 네가 그리워”라고 답장했다. 하지만 남편은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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