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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다르빗슈, 구종 노출의 전략적 활용

조회수 2018. 1. 23. 09: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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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투수가 왼발을 들었다. 세트 모션 투구가 시작됐다. 그 때였다. 2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도루였다. 포수가 공을 잡고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던질 엄두도 못냈다. 타이밍을 완전히 뺏긴 상태였다. 약간 과장하면, 포수가 잡았을 때 주자는 이미 3루에서 옷을 털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런 짐작이 든다. 센스 있는 주자인가 보다. 또는 발이 엄청 빠른가? 아니면 배터리가 넋놓고 있었구만.

그런데 아니다. 몇가지 요소를 대입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1회 초였다. 투구수 7개째였으니, 경기 시작 5분도 안 된 셈이다. 주자가 소름 끼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다. 빅리그 2년차다. 아직은 23살짜리 신출내기다(알렉스 브레그먼). 1년내내 도루 숫자도 17개에 불과하다. 타석에는 최고의 타자 호세 알투베가 버티고 있었다(무사 2루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이 있다. 이게 월드시리즈 7차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반대로 하면 이런 얘기다. ▶ 월드시리즈 7차전에 ▶ 경기 시작 5분도 안 돼서 ▶ 아직 신인 티도 못 벗은 주자가 3루 단독 도루를 감행했다. 과연 가능할까? 천만에.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있는 일’이 됐다. 이건 도대체 뭘까….

공을 쥐는 동작에서 구종이 노출됐다는 의혹.        중계화면 캡처

월드시리즈 난타는 구종 노출 때문이었다?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던 시리즈였다. 매 경기 엄청난 반전이 이뤄졌다. 결국 우승컵은 우주인들의 차지가 됐다. 덕분에 허리케인에 상처 입은 휴스턴 시민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한 달이 지났다. 12월 11일이었다. 묘한 기사가 나왔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톰 버두치였다. 익명을 요구한 휴스턴 타자로부터 들은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휴스턴 타자들은 다르빗슈가 세트 모션에서 오른손으로 공을 잡는 순간에 어떤 구질을 던질 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다르빗슈는 세트 모션에서 포수와 사인 교환 후 공 잡는 그립을 살짝 바꾸는 동작으로 슬라이더(또는 커터)인지 패스트볼인지 구별했다고 한다.’

기사는 추가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3차전에 처음 다르빗슈를 상대했을 때부터 이 버릇을 알고 있었다. 7차전에서도 거의 같았다. 덕분에 좋은 게임 플랜을 가져갈 수 있었다. 슬라이더를 던지려 할 때 이를 알고 준비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의문은 7차전 직후에도 제기됐다.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Fox TV가 카를로스 벨트란과 인터뷰할 때도 여기에 대한 언급이 (간단하게) 이뤄졌다. 이어서 다음날에도 ESPN의 마이크&마이크 쇼에 출연한 에두아르도 페레스가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WS 직후 ESPN 마이크&마이크 쇼에서 티핑을 설명하는 에두아르도 페레스.

그러니까 그가 두 번(3, 7차전)의 월시에서 폭망한 것은 구종 노출(tipping pitches) 때문이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마찬가지로 신출내기의 겁없는 3루 도루도 그렇다. 이미 변화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있게 스타트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7월에도 한번 있었던 일

여기에 대한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대꾸도 화제였다. 그는 이렇게 밝혔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었다. 고치기 위해 본인과 많이 대화했다.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팬들은 한마디씩 했다. ‘어이가 없다’는 말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알면서도 그냥 놔뒀다는 말이냐.’ ‘감독 맞냐?’

하지만 <…구라다>는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구종 노출이 이뤄졌냐, 아니냐. 또는 그게 경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냐. 그런 부분이 아니다.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본인의 반응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는 묵묵부답이다. 아직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그렇다, 아니다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그의 투구 습관(일명 くせㆍ쿠세)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은 전에도 있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정확하게는 텍사스에서 LA로 이사가기 직전이었다. 고별전 상대는 마이애미 말린스였다. 1회 선두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다. 상대는 ‘똑딱이’ 디 고든이었다. 그게 시즌 1호였다. 이후로 탈탈 털렸다. 3.2이닝 동안 9안타를 얻어맞으며 10점을 잃었다. 자칫하면 오래된 기록 하나가 깨질뻔 했다. (텍사스 선발 인터리그 최고실점. 2002년 박찬호 1.1이닝 9실점.)

다음 날 야후 스포츠의 제프 파산 기자가 SNS를 날렸다. ‘마이애미 타자들이 투구폼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공략에 성공했다.’ 놀라운 것은 피해자의 반응 속도다. 즉각적인 리플이 달렸다. ‘동영상으로 확인했다.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알려줘서 감사하다.’

당시도 비슷했다. 직구와 슬라이더를 던질 때 표시가 난다는 것이었다. 다만 글러브 안에서의 ‘꼼지락거림’이 WS 때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 던지는 오른팔의 스윙 동작에서 약간의 멈춤 동작이 발견된다는 지적이었다. 다저스로 간 뒤로는 수정했다고 밝혔다. 덕분에 남은 경기에서는 괜찮았다.

7월 마이애미전 모습. 오른팔의 모양에서 구질이 구분됐다는 주장이었다. 

티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티핑(tipping), 그러니까 투구 버릇의 노출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 물론 (공략에) 유리하다고 보는 게 옳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결정적일까하는 부분에는 회의적인 의견도 많다.

일단은 명확한 구분이라는 게 어렵다. 애매한 경우는 의도치 않게 속임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아주 눈썰미가 좋은 선수가 아니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는 뜻이다.

<…구라다>가 이전 글에서 한번 제시했던 사례가 있다. 옥타비오 도텔의 케이스였다. 그는 슬라이더를 던질 때 혀를 내미는 습관이 있었다. 양키스 타자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걸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데릭 지터였다. 그런데 상대 성적은 참혹했다. 13타수 1안타(5삼진)였다. 마쓰이 히데키도 마찬가지였다. “그거 골치 아파요. 괜히 집중력만 떨어지죠. 타석에서 투수 입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나는 아예 신경 안 쓰는 편이예요.”

랜디 존슨은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헛점도 많다는 뜻이다. 공을 잡을 때도 글러브를 너무 벌린다는 지적이었다. 남들은 안보여주려고 잔뜩 오무린다. 하지만 그는 반대였던 것이다. 때문에 직구인지, 슬라이더인지 알아채기 쉽다는 말이었다. 샌디 쿠팩스 역시 마찬가지다. 유일한 변화구인 슬라이더를 던질 때면 팔의 각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도 아무도 못쳤다.

묘한 시점이면 유통되는 뉴스 ‘티핑 논란’

눈을 조금 더 가늘게 떠보자. 의심을 확장시키자는 말이다. 뉴스란 늘 사실일까? 유명한 기자는 언제나 정답을 얘기할까? 물론 대개는 그렇다. 그러나 어찌 매일 그럴 수 있겠나. 가끔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워보자. 그리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팩트를 재구성해보자.

우선은 당사자인 투수의 반응이다. 묵묵부답이다.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긍하기도 한다. 지난 7월 첫번째 노출 때 그랬다. “명확하게 그렇다”고 인정했다. “알려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남겼다.

하긴 뭐, 당연하다. 부진한 투수 입장에서는 가장 반가운 원인이다. ‘구위가 떨어졌다’, ‘컨트롤이 좋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골치 아프다. 능력치와 관계된 요소다. 또 단기간에 고치기 어려운 것들이다. 반면 버릇이 노출됐다는 건 수긍하기 좋다. 수정 작업을 통해서 얼마든 지 보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00% 개선될 여지를 포함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있다. 바로 얘기가 흘러나오는 시점들이다. 7월 말의 난타 때는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코 앞에 두고였다. 우승에 몸 단 팀들의 구애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저스틴 벌랜더와 달빛 중에 누가 더 나은가를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을 살피던 때였다. ‘급격한 부진’은 ‘구종 노출’로 희석(물타기) 됐다.

다르빗슈의 에이전트인 와서맨 미디어 그룹의 부사장 조엘 울프.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결국 이 뉴스는 다시 한 번 시장에 유통됐다. 그로부터 한달도 훨씬 넘은 시점이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톰 버두치라는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서였다. ‘휴스턴의 한 선수에 따르면(According to a Houston player)…’으로 시작되는 그의 보도가 나온 날짜를 주목하시라. 12월 11일이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리는 윈터미팅 첫 날이었다. FA들이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 때부터 그의 구직 기사에는 주로 이런 설명이 따라붙는다. ‘월드시리즈에서는 투구폼 노출로 부진했지만….’ 마치 구매자를 안심시키려는 친절한 사용설명서 처럼.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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